쓰치다 조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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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土田譲亮(?~1896년 2월). 쓰치다 조료라고도 읽힌다.
을미사변의 보복으로 일어난 치하포 사건에서 김구에게 살해당한 일본인.
백범일지가 사실 어린이들이 읽으면 안되는 제일 가는 이유 중 하나. 김구의 자뻑으로 가득하기 때문.
그는 누구인가[편집]
김구는 자신의 자서전인 백범일지에 을미사변에 관여한 일본 육군 중위라고 써놨지만 그의 주장 외에는 증거나 증언이 전무하다.
사실 쓰치다 조스케라는 이름마저 김구 본인의 발언이기 때문에 살해당한 사람의 이름이 전혀 다를 확률도 존재한다.[1]
일본 측의 기록에는 그냥 약장수라고 기록되어있고 조선 측 조서에서도 그냥 상인으로 기록되어있다.
즉, 쓰치다 조스케가 육군 중위라고 주장하는 기록은 백범일지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민간인이라고 보면 되느냐? 그것도 모른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정세를 봤을때 기록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고 정말로 비밀결사대 같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의문점[편집]
- 김구는 치하포 사건 이전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적이 있다. 근데 최소한 동학군 출신이면 민자영 씨발련을 범죄까지 저질러가며 원수를 갚을 이유가 있었을까? 동학군 진압하려고 청나라 일본 다 끌어들여서 동학군을 대량학살하던게 민비년인데?
- 뭐 김구가 민비년의 실체를 잘 몰랐다고 치자. 김구는 그냥 일본도를 차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낭인으로 추측하였고 일본 낭인=미우라 고로와 한패=을미사변 가담자라는 기적의 논리로 때려죽였다. 당연하게도 쓰치다가 을미사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미우라 고로와 같은 을미사변 패거리들은 당시 일본이 국제사회로부터 질타를 받자 수습한다고 히로시마 감옥에 갇혀있었다. 물론 이후 석방되었지만.
- 일부 학계에서는 "일본 상인이 일본도를 차고 조선인으로 위장해있었던 것을 보면 틀림없는 일본 첩자이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증명할 사료 자체가 없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을미사변으로 국모가 일본 깡패들한테 암살당했는데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곱게 볼 리가 없었고 실제로 일본 정부에서 상인들에게 가급적 몸을 숨기라고 조서까지 내린 상태였고 일본 상인들도 자위적 차원에서 칼을 차고 다녔다. 단지 조선인 행세를 하고 칼을 차고 다녔다는 이유로 일본 간첩으로 만들어버리는건 너무 비약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