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4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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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명과 선언서의 인쇄 및 배포, 탑골공원 만세 시위 등 초기 3.1 운동의 전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인물 17명을 가리킨다. 다 더하면 50명이어야 정상이겠지만 3.1 운동의 본격적인 전개 당시 상하이로 망명한 김병조와 옥사한 양한묵은 48인에서 제외된다. 물론 이렇게 따지면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편의상 33 + 15 = 48이라고 보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의 국부를 이 사람들로 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몇몇 사람은 친일 인사로 변절하거나 광복 후 북조선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능성은 영원히 없다고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최린, 박희도, 정춘수 이 세 사람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박아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없다. (하나회 멤버의 박희도와 동명이인이다.)
명단[편집]
민족대표 33인[편집]
박희도, 이갑성, 김창준 선생은 당시 23세로 최연소자였다. 훗날 변절하는 3인을 제외한 모두에게 대한민국장 or 대통령장 or 독립장이 수훈된다.
천도교[편집]
동네 이름은 이 사람들의 출생지이다. 당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이할 수 있다. (이를테면 홍기조는 남포 출신이라고 적었지만 당시에는 용강군이었다.)
- 손병희(청원)
- 권동진(괴산)
- 오세창(한성)
- 임예환(평양)
- 나인협(성천)
- 홍기조(남포)
- 박준승(임실)
- 양한묵(해남)
- 권병덕(청원)
- 김완규(한성)
- 나용환(성천)
- 이종훈(경기 광주)
- 홍병기(여주)
- 이종일(태안)
- 최린(함흥):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다.
불교[편집]
- 한정옥(홍성, 법명 용운)
- 백용성(장수, 법명 진종)
개신교[편집]
- 이승훈(정주)
- 박희도(해주):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다.
- 이갑성(대구)
- 오화영(평산)
- 최성모(해주)
- 이필주(한성)
- 김창준(강서)
- 신석구(청원)
- 박동완(포천)
- 신홍식(청주)
- 양전백(선천)
- 이명룡(철산)
- 길선주(안주): 거사 날 태화관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변절 같은 건 안 하고 목회활동에 전념하였다.
- 유여대(의주): 거사 날 결석했다. 목회활동에 전념하였다.
- 김병조(정주): 거사 날 결석했다. 훗날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정에서 활동한다.
- 정춘수(청원): 거사 날 결석했다.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다.
핵심인물 17인[편집]
이후 독립운동 활동이 애매하거나 변절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독립장 or 애국장이 수훈되었다. (제외된 사람은 노헌용, 한병익, 현상윤, 최남선, 정노식 다섯 사람이다.)
천도교[편집]
- 박인호(예산)
- 김홍규(김제)
- 노헌용(곡산)
- 한병익(수안)
기독교[편집]
- 김도태(정주):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논설을 기고한 행적이 좀 있어서 사상 전향자(변절자)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광복 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문영여자중학교, 휘문중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 안세환(평원)
- 함태영(무산)
- 김원벽(은율)
- 김세환(수원)
일반인(무종교)[편집]
- 임규(익산)
- 송진우(담양)
- 현상윤(정주):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다.
- 최남선(한성):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다.
- 강기덕(원산): 6.25 전쟁 중에 입북했다.
- 정노식(김제): 당시 일본 유학생 신분이었다. 8.15 광복 후 월북했다.
- 김지환(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