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조무위키

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이 문서는 성인(聖人)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그 누구도 깔 수 없는 인물을 묘사합니다.
성인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주의! 이 대상은 개좆병신 정자/난자를 가졌습니다.
이 대상은 자식농사를 망쳤습니다.

생애:1915.12.2~ 2016. 10.27(무려 100년이나 사신 분이다!) 왕실 직위: 친왕 직업:동양사학자 경력: 2차세계대전 일본군 육군 소좌

일본 극우파들에게 배신자라 불리는 왕족으로 아주 개념있는 분.

-일화- 1950년대 후반부터 기원절의 부활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학자적 입장에서 진무 덴노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여 반대하며 <일본의 새벽>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빨깽이, 배신자 왕자님 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이때, 주로 극우파인 이들은 다카히토 친왕을 극력히 비난하면서 그를 황적에서 파낼 것을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으며, 우익 단체는 미카사노미야 저택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서 일제감정기 당시 일본의 행위에 대해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 한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2차례 가량 하였다. 이 발언으로 극우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군복무 시절에 지나파견군에 재직하고 있었음에도 1972년 중일수교 직전에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일제감정기 당시 731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곳이 포로를 통한 생체실험을 진행하는 부대임을 알고 구출을 계획하였다. 그는 731부대의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에게 야외실험을 하기 위해 포로를 데려가겠다고 한 뒤 공항으로 군인 포로와 민간인을 인도해 비자를 발급하고 탈출시켰다. 이때 그가 구출된 이들에게 한 말은,

"오늘 실험은 귀관들이 중립국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비록 이미 실험체로 쓰인 피실험자는 구출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포로로 끌려온 군인과 민간인들은 그 덕분에 살아남아 중립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

ㄴ이거 말고도 무타구치 렌야와도 관련이 있다 카더라. 솔직히 둘 다 진실인지는 의문이지만.

-가족관계-

부인 유리코 친왕비와의 사이에서 아들 3명을 두었으며, 이중 장남 토모히토는 가쿠슈인 다닐때 등굣길에 재일교포 한국인을 막 패고 다녔고, 그걸 나중에 방송에서 자랑스럽다고 떠들 정도로 상당한 어그로를 끈 사람이다. 차남 요시히토는 그냥 존재감 없는 공기 신세고(그나마 눈 한쪽이 완전히 가라앉은 사시 증세가 있었다), 막내 노리히토는 현직 덴노인 나루히토와 상당히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며(나루히토의 당숙이지만 고작 6살 위), 일본 왕족 중 유일하게 제대로 한국을 방문했다(방문한 해는 2002년). 다만 노리히토는 안타깝게도 형제들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솔직히 큰형과 비교하면 꽤나 개념인이기도 했다.

생년의 경우 토모히토는 1946년생, 2012년 사망, 요시히토는 1948년생, 2014년 사망, 노리히토는 1954년생, 2002년 사망. 모두 아버지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따로 결혼해서 둔 자식들은 모두 딸이었다. 그나마 요시히토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