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미야이치 료

조무위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좆퇴물입니다!!

오래 전 퇴물이 됐거나 진행 중인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딴 새끼들은 고민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갖다 버립시다!!
다만 대상이 각성하여 예토전생 할 수도 있습니다.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되는 인물은 너무 약합니다.
이 문서는 허구한 날 뚜까맞던 같은 찐따조차 새끼손가락 하나만으로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씹좆밥인 새끼에 대해 다룹니다.
이 좆밥 새끼가 당신에게 시비를 턴다면 당장 부랄을 걷어 찰 것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쌍푸랄잘게잘게 터져 전치 53주가 나온다면 디시위키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아이고 내 이빨 ㅠㅠ
경고! 이 문서는 내구성이 존나게 약하거나 유리몸인 대상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내구성이 씨발 존나게 약한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존나게 살살 다루지 않는 이상 부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부상을 당해 먹튀를 해도 디시위키는 치료해 주지 않습니다.
주의!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망했습니다.
이 문서와 상관있는 분들은 벌써 망했거나 곧 망합니다.
벌써 망해서 더럽게 재미없거나 매우 혐오스러운 내용을 담습니다.
이 문서와 관련되어 인생 망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이 문서는 축구를 못하는 대상이나 축알못이며 축구계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것들을 다룹니다!
제아무리 역풍이 분다 한들 극혐의 냄새는 온누리에 퍼져나가느니라.
말해 보아라, 이적료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냐 이거야!

일본의 축구선수이다. 주 포지션은 윙포워드 인데 특히 오른쪽 윙포워드를 주로 맡는다.

초등학생 시절 때는 나름 재능을 인정받으며 유스 레벨을 꾸준히 다니면서 실력을 쌓았고, 쥬코 대학의 부속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전국 대회에서 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활약하고 이 때 U-17 월드컵에도 뽑히는 등 슬슬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ㄴ 근데 문제는 당시 미야이치가 소속했던 고등학교는 전국대회에서 미야이치가 소속되었던 당시에 모두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음에도 미야이치만 어째 우수선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고교에서 활약했던 미야이치는 당시 아스날 FC의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의 눈에 들어서 아스날 FC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워크 퍼밋은 그 당시에도 엄청 빡셌기 때문에 결국 미야이치는 임대부터 다니게 된다.

첫번째 임대 팀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명문 팀 중 하나인 페예노르트였다. 여기서 미야이치는 12경기 출장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유럽무대에서의 첫 시즌 치곤 준수한 활약을 했다. 그리고 임대 종료 후 복귀했는데 아스날 FC의 신청으로 취업 비자를 특례로 받아서 아스날에서도 이제 뛸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이 당시 일본 언론의 설레발은 극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아스날에 입단했던 이나모토 준이치가 유니폼 팔이 역할만 하고 폭망했던 경력이 있었으니 미야이치는 좀 잘 되겠지 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언론사들이 많았을테니까.

그러나 미야이치는 첫 시즌 부터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시즌아웃행 열차를 탔고 성적도 리그 컵에서 2경기 출장, 리저브 팀에서도 8경기 1골 2도움으로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활약만 했다.

결국 그 다음 시즌 볼턴 원더러스 FC로 임대를 가게 된다. 그러나 볼턴에는 이미 쟁쟁한 경쟁자였던 이청용과 크리스 이글스가 있었고 미야이치는 FA 컵 2경기 1골, 리그에서는 12경기 출장 2도움 만을 기록하면서 전혀 활약하지 못하였다.

당연히 그 다음 시즌도 임대행이었다. 이번엔 위건 애슬래틱 FC 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스널 초기에 당했던 발목 부상이 도지면서 리그 4경기 출장에 그쳤고 FA 컵에서도 2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였다. 그나마 리그 컵에선 2경기 1골을 기록하긴 한 것이 위안이었다.

일단 다음 시즌은 임대를 가지 않고 아스날로 복귀하였지만 미야이치의 자리는 있을리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야이치는 이번엔 늑골 타박상에 햄스트링 부상까지 입으면서 챔스 예선과 챔스에선 1경기 씩 밖에 나오지 못하였고, 리그컵도 2경기, 프리미어리그에선 딱 1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다. U-21팀에서는 그나마 6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하긴 했지만 미야이치가 보여줘야 할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는가?

결국 그 다음 시즌에 네덜란드 리그의 FC 트벤테로 또 임대를 가게 된다. 그 와중에도 미야이치는 이번엔 허벅지 문제가 도지면서 실로 눈썩을 모습만 보여주었다. 리저브 리그였던 주필러 리그에서도 14경기 3골 1도움 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에레디비시에선 10경기 출장해서 어떤 활약도 보이지 못했다. 컵대회도 달랑 1경기 밖에 나서지 못하면서 아주 망할대로 망하였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에 또 발목 부상이 도지면서 결국 더 이상 미야이치를 봐줄 수 없었던 아스날은 미야이치를 방출시키고 만다.

연이은 부상으로 유리몸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미야이치는 이대로 유럽 생활을 접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국 독일 2부리그의 FC 장크트 파울리에 입단하면서 유럽 생활을 연장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팀에서 맞은 첫 시즌. 5경기 출장 2골 1도움으로 어느 정도 부활하나 싶었던 미야이치는 이번에는 십자 인대 파열을 당하고 무릎 문제가 도지면서 남은 시즌을 통으로 날려버렸다. 이쯤되면 운도 아주 지지리 없는 미야이치 되시겠다.

덕분에 그 다음 시즌도 일부 날려먹고 포칼 컵 2경기 출장, 리그에서도 17경기 출장 1도움에 그치고야 말았다. 당시부터 미야이치는 이미 한국인 선수였던 최경록한테도 밀리는 막장 실력을 보이면서 방출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한다.

한 술 더떠서 결국 부상이 심했던 미야이치는 재활훈련및 인대 문제로 그 다음 시즌은 진짜로 통째로 날려먹고야 말았다. 독일 1부도 아니고 2부리그에서도 아주 아작이 제대로 나고 있었던 미야이치 되시겠다.

그러나 기적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고 했나? 자신의 입지를 밀어버리다 못해 아예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던 최경록이 카를스루에로 이적하면서 미야이치한테도 드디어 기회가 온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미야이치는 4부의 리저브 팀에서 4경기 1도움을 기록하다가 콜업되어 리그 25경기 5골을 기록하고 드디어 못다한 활약을 하면서 이제야 좀 유리몸 이미지를 어느 정도 타파시킬 수 있었다. 팀도 다음 시즌 미야이치의 활약을 내심 기대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되자 미야이치는 잠깐 다시 무릎 문제로 삐걱대기는 했지만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 리그 29경기 출장 1골 7도움을 기록한다. 다만 포칼은 1경기 밖에 나서지 못한 건 안습인 점이다.

그러나 시즌 중 당했던 무릎 부상의 여파로 이번 20-21시즌은 1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쯤되면 조만간 소속팀인 장크트 파울리에서도 방출될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미야이치는 한 때 우사미 다카시와 함께 손흥민의 라이벌로 불리면서 각광받았으나 그 망할 유리몸이 문제를 일으켜 거의 몇 년을 부상으로 날려먹으며 폭삭 망해버린 케이스이다.

유리몸[편집]

  • 지독한 유리몸과 비운의 사나이로 유명했다. 부상으로 날린 경기수가 무려 131경기나 될 정도로 말이다. 일 수로 세면 거의 3년 가까이를 부상으로만 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