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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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송나라 시대의 장수, 전 세대엔 악비, 한세충이 있다면 뒷 세대엔 맹공이 있었다고 할 만하다.
본인을 스스로 무암거사(無庵居士)라고 칭하고 군사 진영을 갖추었다가 이를 거둘 때는 늘 그 자리를 치우고 향을 피웠다.재물도 싫어했고 여자도 멀리했고, 심지어 식사 마저도 정말 간소하게 먹던, 무슨 재미로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인간.
하여간 1235년부터 송은 사천도 털리고 양양도 털리는 그야말로 망하기 일부직전의 침공을 받았는데 거의 몽골-송 1차 전쟁은 이 양반이 캐리함 1236년 강릉 전투에서는 허장성세와 기습을 동원해 몽골군을 물리쳤으며, 1237년 황주 방어전에서는 우주방어 기습으로 몽골을 물리쳤다.
1238년부터 송나라 군대를 총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었는데 1239년 몽골군이 중시하지 않고 내버려둔 양양을 탈환하여 우주방어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형주를 비롯한 중부 전선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맹공은 서쪽으로 가서 사천 탈환과 방위에 진력했다. 역시 이번에도 우주방어를 펼치며 몽골군의 취약점을 찔러서 또다시 대승을 거둔다. 결국 송나라 상대로 영 전황이 심상치 않은데다가 대칸인 오고타이 칸이 1241년 술을 너무 많이 마시다가 골로 가서 1차 전쟁은 이렇게 종결, 맹공은 이 사이에 몽골이 신경을 못 쓰는 틈을 타서 일부 지역을 추가로 되찾고 유민들을 받아들이며 방어선을 탄탄히 다졌다. 이게 남송 정권이 40여년 간 더 갈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후엔 너무 세력이 커지면 위험하다고 쑥덕거리는 조정신료들의 모습을 보고 쿨하게 사령관 직 내려놓고 은퇴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존나 신기한게 당대 최정예 몽골군 상대로 이만큼 잘싸운 인간이 거의 없다. 이 양반이 활약하기 전까지 사천하고 양양을 잃어서 풍전등화 상황이었던 남송을 40년이나 더 이어가게 만들었다. 우주방어만 한 게 아니라 공격해서 사천하고 양양까지 빼앗았으니, 사실상 당대 최강 장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고려처럼 백성 다 버리면서 억지로 버틴게 아니라 더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