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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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류 작가다.
활동한 시대는 후지와라씨의 섭관 정치가 이뤄지던 때.
다시 말하면 중고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뇨보의 의미는 위에서 서술한대로지만, 뇨보(女房)를 넓은 의미로 두고 본다면 일반적인 여성 시종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뇨보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한건 뇨보 문학을 만들어낸 뇨보 출신의 여류 작가들이다. 그러므로 뇨보 작가를 위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후지와라씨가 자신의 딸을 입궐시킬때 같이 데려가게 한 것이 뇨보라는 여성들이기 때문에, 뇨보 작가든 뭐든 간에 시종과 유사한 위치였다는건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고귀한 이들을 모셨기 때문에 중급 귀족 가문에서 많이 배출되는 편이었다. 뇨보의 처지는 고용인이기 때문에 아주 높은 신분의 가문은 뇨보와 관련이 없다.
뇨보는 가나 문자로 궁 안의 여자들이 읽을 문학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뛰어난 문장력이나 지식,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특징은 방구석에만 있던 당시 여성들과는 약간 다른 점으로 비춰진다. 물론 여성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거주지를 떠나는 일이 적었던 당시 일본사회의 특징과도 상반된다.
이것은 아마도 중급귀족의 딸인 뇨보가 지방 수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데서 기인한 차별성으로 보인다. 더불어서 황후의 고용인으로 들어가는데 좋은 머리와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후보자의 기준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 궁의 여자는 곧 모두가 왕의 여자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궁의 모든 여자가 왕의 여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뇨보는 궁 안에서 연애도 가능했다.
대표적인 뇨보는 세이쇼나곤, 무라사키시키부, 이즈미시키부가 있다.
에도시대에 모토오리 노리나가에 의해 국학이 대두되면서, 일본 순수의 문자인 가나로 쓰여진 가나문학- 즉, 여성문학이 국학의 범위에 들어가면서 뇨보의 창작품이었던 마쿠라노소시나 겐지 모노가타리는 크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
훗날, 뇨보의 의미는 변질되어서 단순한 아내, 처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