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풍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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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2.12 사태로 혼란의 정국을 안정화시킨 전두환에겐 갑작스런 쿠테타에 분노한 시민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때 일뽕에 거하게 취한 전두환의 측근 허문도가 가미카제 정신을 본따서 '국풍'이라는 말을 오지게 밀어붙였다.그 정신을 상징하듯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의 행렬이나 배의 노를 합심해서 젓는 등 국뽕적인 벽화들을 많이 그려놨다.허문도는 이 병신같은 국뽕축제에 무려 1000만이라는 구경꾼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고 이건 분명히 나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었지만 걍 밀어붙였다.국가정기 회복이네 뭐네 거창한 말들을 많이 붙이지만주된 원인은 전두환의 3S정책에 의거한 '5공화국의 태평성대'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1]
국풍이라는 건 원래 헤이안 시대에 있던, 당나라 문화를 배척하고 다시 일본의 문화를 숭상하자는 운동을 말한다. 이걸 무려 1000년 만에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부활시켰다.
축제 준비와 시작[편집]
그래도 정부가 돈 쓰긴 싫었는지 이젠 정권의 따까리가 되어버린 한국신문협회와 MBC등의 방송사들과 치열한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던 KBS가 축제 관리를 도맡았다. 신군부는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여의도의 통행금지를 풀어주었고 국풍81개시 첫날에만 100만의 시민들이 운집했으며 3일 만에 1000만이라는 숫자를 채우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2]'전국대학생 민속국악 큰잔치'라는 부제 아래 이루어진 이 축제는 개막행사,민속제,전통예술제,젊은이 가요제,욘국재,국풍장사 씨름판,팔도굿,남사당놀이의 본행사와 '팔도 명물장'등을 여는 등 다양한 컨텐츠를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화려하게 막을 내린 국풍81과 그 이면[편집]
문화평론가 신현준은 이러한 국풍 81이 "상업적이고 퇴폐적인 왜래문화에 불가하다."라고 논평했다.[3]
국풍 81축제에선 현실을 가리는 신군부의 명치를 강타하는 한양대생 정오차의 <바윗돌>[4]과 같은 노래에겐 상을 안 주고 국민들을 레밍쥐로 만들어서 "독재든 뭐든 잘살면 되는겨!"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현란한 댄스풍의 노래들에게 상들을 몰아줬다.이때 이후로 대부분의 신곡들이 신나는 댄스곡으로 바뀌었으며,그 개성을 잃어버렸고 유명한 가수들을 배출해내던 대학가요제는 이제 그들만의 리그로 변모했다.
참고로 이때 상을 받은 가수는 <갤럭시>라는 팀그룹으로,<학>이라는 노래를 통해 금상을 받았다.그러나 이때 이후 서울대 축제 때 노래를 부르려던 갤럭시를 향락축제 거부운동을 벌이던 학생들이 둘러싸고 "애국가를 불러봐라!"라고 말하자 애국가를 부르지 못했고,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를 때려뿌쉈다.
엑윽보수들이 보기에 이건 '성난 빨갱이들의 반달질'로 보이겠지만,국뽕을 강요하는 현 정권의 몰지각하고 뻔뻔한 태도를 다른 방향으로 비판한 것이다.
결론[편집]
사실상 국민들에게 배부른 돼지로나 살아가라는 3S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축제였기에 정권을 비판하거나 국가를 비판하는 행위는 일절 허용되지 않았고,그렇게 한 사람들은 코렁탕을 먹어야 했다.결국 이 축제는 국뽕과 정권 찬양으로 도배된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