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공융

조무위키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 존나 똑똑합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호구가 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이 문서는 성인(聖人)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그 누구도 깔 수 없는 인물을 묘사합니다.
성인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공자의 직계후손이다.

조조빠들이 공융이 조조한테 개겼다고 삼국전투기처럼 유교 탈레반으로 만들거나 청담 사상(유교+도교 혼종)에 젖어 있어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정신에 문제가 많은 위인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정작 공융은 당시의 효가 형식에 치우쳐 제대로 된 효가 아니라는 식으로 유교 탈레반들을 존나게 깐데다 청담사상에 빠진건 조조의 양자 하안이고 조조 역시 도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기록되었다. 조조가 도교에 엄청나게 심취했기 때문에 도교사 좌자를 초빙한 것이다.

ㄴ 그러려니 하자. 최훈 새끼가 보통 위빠겠냐? 악질위빠지. 아무도 인정안하는데 혼자 삼국지의 주인공은 장료 이 지랄을 떨 정도로 위빠이니 말 다했지.

뭣도 모르고 공융까는 정알못 새끼들에게 공융의 일화를 소개한다.

공융의 형 공포(孔褒)의 친구 장검이 어느날 십상시 비리를 고발했다가 역으로 자기가 곤경에 처해 공포를 찾았는데 공포가 외출을 하고 없었고 대신 공융이 있었다. 장검은 공융이 16세의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곤경에 처한 것을 공융에게 알리지 않았는데 공융 쪽에서 먼저 장검이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형님이 지금 집에 계시지 않으니, 제가 혼자서 군을 위해 주인 노릇을 하며 대접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장검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다. 나중에 그 사실이 드러나자 국상(國相)은 몰래 명을 내려 잡아들이라고 했다. 장검이 도주하자 공융과 공포가 대신 감옥에 갇혔다. 공융은 말했다.

“집안으로 받아들여 숨겨 준 것은 저이니 제가 벌을 받겠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바라고 왔으니 죄는 나에게 있지 아우의 잘못은 아니다. 당연히 내가 벌을 받아야지.”


형제가 서로 죽으려고 다투자, 군현에서는 어떻게 처리를 할지 몰라서 상부로 보고했다. 상부에서는 공포에게 죄를 물으라는 조서가 내려왔다. 아쉽게도 형 공포는 처형됐지만 당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상시 좆병신 새끼들을 미워했으니 공융을 옹호했다.

평원(平原) 출신인 도구홍(陶丘洪), 진류(陳留) 출신인 변양(邊讓)은 공융과 더불어 인재로 이름을 날렸으며, 나중에 함께 관직으로 진출했다. 공융은 논리를 전개하거나 이치를 따지는 측면에서는 변양 등에 비해 부족했지만, 창의성과 박학에서는 그들보다 뛰어났다. 사도대장군(司徒大將軍)이 그의 재능을 보고 불렀고, 북군중후(北軍中候)가 되었으며,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 북해상(北海相)이 되었는데 이때가 28살이었다.


황건의 잔당이 모두 격파되고 성읍이 수복되자 학교와 상서(庠序)를 세우고 현명한 인재를 천거하여 유학자들이 세상에 진출하도록 했다.


팽구(彭璆)를 방정(方正)으로, 병원(邴原)을 유도(有道)로, 왕수(王修)를 효렴(孝廉)으로 추천했다. 고밀현(高密縣)에 고하여 특별히 정현(鄭玄)을 위한 마을을 하나 세워서 정공향(鄭公鄕)이라 부르기로 했다.


또 후손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나, 사방을 떠돌다가 죽은 사족들을 모두 나무로 만든 관에 넣어서 장례를 올려 주었다. 군민들 가운데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졌다가 일찍 죽은 사람이 있으면 공융은 자신이 그를 돌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곧 현에서 사당을 지어주도록 했다. 현자에 대한 그의 예는 이와 같았다

다만 순욱이 안량, 문추가 뇌까지 근육인 바보들이라고 평가한 반면 공융은 이들을 천하용장이라고 했는데 결국 순욱이 맞는 바람에 조조빠들이 얘를 좆병신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나중에 조정 최고 권력자인 조조를 까댔는데(예를 들어 조비가 원소 며느리를 뺏었고 이를 묵인한 조조를 조롱했다.) 그게 조조의 분노를 사서 조조에게 죽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공융이 조조한테 뒤지자 공자 후손의 대가 완전히 끊겨졌다고 조조 씨발새끼라고 했지만, 공융은 공자가문의 완전한 직계 후손은 아니었다 만약 공융이 정말 직계 후손이었다면 아무리 조조라도 치려를 시켜 죽이는 그런 짓도 못했을것이다. 지금까지 공자의 후손들이 전세계 방방곡곡에 살아남아 잘 살고 있다. 애초에 공자의 후손 들 중 한명이었을 뿐이니 다른 후손들의 후손들은 잘 살아남고 있다.

공자의 77대손 공덕성이 대만에 살고 있다.

참고로 조조가 공융을 죽일 때 불효죄로 죽였다. 구현령 내리면서 '불인불효 유재시거(어질지 않아도, 효도하지 않아도 재능만 있으면 쓰겠다)'란 소리를 짖었던 조조의 인성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웃긴건 공융은 세상이 알아주는 효자였다는 것.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존나 후진 문관으로 나온다. 통솔 30, 무력 5, 지력 72, 정치 76, 매력 65 이러니 바람 불면 날아가는 놈이다.

삼탈워에 플레이어블 군주로 출연했다. 서양쪽에서도 공자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후손인 이 사람도 메이져 군웅으로 생각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