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강담협회 분열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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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講談協会分裂騒動. 현대 강담사의 사건명. 강담협회가 여러갈래로 갈라져버린 사건으로, 현대 강담사를 통틀어 총 2회의 분열이 있었다.

제1차 강담협회 분열소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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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뽀르노 강담 파문이다. 1973년, 본래 타나베 잇카쿠(田辺一鶴)의 제자 타나베 유즈루(田辺夕鶴)였으나 파문당하고 선대 칸다 산요 선생에게 거두어진 여류강담사 아마노 유즈루(天の夕づる)가 당시만 해도 멀쩡하게 서있었던 강담 정석 우에노 본목정(本牧亭)에서 뽀르노 강담을 하면서 기모노를 벗고 알몸 노출행위를 해서 난리가 났다. 본목정은 강담사의 가부키자라고도 불릴 정도로 권위있던 요세였기에, 그 본목정에서 이런 개판이 벌어진 거에 격분하고 유즈루 이후의 출연예정이었던 강담사들이 스트립 스까묵은 짜가 강담사 뒷순서로는 못 나가겠다고 거부를 하는 등 대소동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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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협회는 발칵 뒤집혀서 국회공방전 못지 않은 지랄이 났다. 개빡친 강담사들이 당시 회장이었던 선대 칸다 산요에게 "씨발 사이비 조무사 새끼들 안 자르냐? 강담이 만만하냐? 만만해? 안 자를거면 그냥 협회 터트리지?"[1]라고 극딜을 했고, 선대 산요도 이에 뒤지지 않고 "니들이 뭔데 조무사냐 아니냐 판별하냐 씨팔 대가리가 확 굳어서 아직도 제국 시대인줄 아나 참내 씨팔 애 좀 혼내고 끝낼 일을 왜들 이렇게 지랄들이야?"[2]라고 응수했지만 협회 해산에 찬성하는 강담사들을 이길 수는 없었고, 결국 강담협회는 해산 투표를 거쳐 해산되고, 강담계는 두 계파로 나눠진다. 보수파는 조합체제로 돌아가고, 혁신파는 새 협회를 세운 것이다.

  • 협회해산 찬성파(보수파) : 강담조합(講談組合)
    • 3대째 칸다 로잔(神田ろ山)
    • 6대째 코가네이 로슈(小金井芦州)
    • 4대째 칸다 하쿠지(神田伯治, 훗날의 6대째 칸다 하쿠류)
    • 6대째 이치류사이 테이스이(一龍斎貞水)
    • 4대째 타카라이 킨카쿠(宝井琴鶴, 훗날의 5대째 바킨)
    • 그 외 그 일문 등
  • 협해해산 반대파(혁신파) : 일본 강담협회(日本講談協会)[3]
    • 2대째 칸다 산요(神田山陽)
    • 타나베 잇카쿠(田辺一鶴)
    • 그 외 그 일문 등

※6대째 이치류사이 테이죠(六代目一龍斎貞丈)는 협회 해산에는 반대했지만 일본 강담협회에 참가하지 않고 무소속이 된다.

익년도인 1974년. 일본 강담협회 측이 구심점을 가지고 착실히 협회를 꾸려가고 있는 반면에 강담조합 측은 뽀르노 강담에 개빡친 강담사들이 느슨한 연합 정도 되는 느낌으로 뭉친거라서 잘 안 굴러가는 와중에, 타카라이 일문이 강담조합을 탈퇴하여 무소속이던 이치류사이 테이죠 일문과 함께 도쿄 강담회(東京講談会)를 설립하여 3단체 체제가 시작된다. 이 3단체 체제 하에서 각 단체로부터의 탈퇴자도 간간히 나와줘서 무소속 강담사가 무섭게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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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0년, 라쿠고 예술협회의 5대째 슌푸테이 류쇼 선생의 중재 하에 강담계가 강담판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드니 이것이 지금의 강담협회로 이어지는 (재건) 강담협회다. 물론 위에 나온 저 난리를 치는 동안 수틀려서 끝끝내 참가 안 한 무소속 강담사들이 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어떻게든 수습이 되었다. 이 (재건) 강담협회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후술할 제2차 강담협회 분열소동이다.

제2차 강담협회 분열소동[편집]

이 문서가 설명하는 역사는 반복되고야 말았습니다.
병신같은 역사가 하필 또 반복되고야 말았습니다. 이게 다 병신새끼들이 우덜식 판단을 해서 그렇고
냄비근성명예훼손충, 형법의 악용, 적반하장, 무리한 공사, 안전불감증, 각종 비리 때문에
이 병신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고야 말았습니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해라. 아니면 반복하여 파멸을 맞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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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 강담협회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일어난 분열이다. 1993년. 2대째 칸다 산요 선생이 강담협회의 선거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일문의 대다수를 이끌고 강담협회를 탈퇴, 일본 강담협회를 설립하게 된다.[4] 현재의 일본 강담협회는 제2차 분열소동 때 생긴 협회로 제1차 분열 당시의 일본 강담협회와는 다른 단체이다. 물론 주동자는 같지만.

라쿠고협회 분열소동과의 비교[편집]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은 제1차 강담협회 분열소동과 유사하다. 라쿠고협회의 헤게모니 다툼도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는 신우치 대량승진 문제에 관한 예능관 차이로 촉발된 사건이니까 말이다. 차이점은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은 결국 보수파의 신단체가 석정들한테 두들겨맞고 좆망하여 그 후신단체인 엔라쿠일문회도 요못찐으로 전락해버렸지만 제1차 강담협회 분열소동은 꽤 성공적으로 강담계를 갈라먹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제2차 강담협회 분열소동은 라쿠고협회 분열소동보다는 라쿠고 타테카와류 설립 과정과 비슷하다.

  1. "잇카쿠 같은 기괴한 재주나, 유즈루 같은 천박한 것은 정당한 강담이라고 볼 수 없다! 회장으로서 그들을 제명하지 않는 한, 강담협회로서의 존재의의가 없다!"
  2. "정도라던가 기도(奇道)의 분간은 뭔가. 그들의 재주는 일종의 바리에이션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건가. 물론 너무 나가긴 했지만, 좀 더 융통성 있게 생각해서 상황을 봐야하지 않겠는가."
  3. 현재의 일본 강담협회와는 다른 단체이다. 현재의 일본 강담협회는 제2차 강담협회 분열소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4. 일본 강담협회의 무슨 머한애국당이나 북괴로동당 같은 강령을 보면 알겠지만 선대 산요가 노망나서 난리친거라는 평가도 있다. 1차 분열 때는 일문이 다함께 끝까지 갔는데 2차 분열에서는 조까라 하고 불참한 제자들도 적게나마 있는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