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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호선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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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 줄여서 보도연맹이다. 더 줄이면 보련.

국가보안법에 근거하여 좌익이었던 자들을 전향시키고 이들을 선도하고 보호한다는 설립 취지를 가졌다.

머한민국 헬조선의 끔찍한 역사로서, 정부 주도로 자국 민간인을 초법적이고 불법적으로 단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라는 이유로 재판 없이 처형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당시 극우들은 빨갱이들을 인간 이외의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고는 했으니 (자국민을 상대로 한) 진정한 의미의 제노사이드다.

설명[편집]

보도방과 아무 상관이 업다. 보도를 업으로 삼는 기레기 등도 하등 상관이 ㅇ벗다. 이거야.

헬조선을 진정한 헬조선으로 만든 건국 대통령 이승만간도 특설대 대원을 지냈던 CIC(현 기무사의 전신) 대장 김창룡의 업적이 되시겠다.

일단 학계에선 저 두 사람을 범인으로 확실히 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물증이 없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정신없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내려진 명령이었거나 증거를 알아서 다 소각하고 인멸했거나.

소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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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에에에에에에-발 좀.

오재도와 선우종원 같은 소위 공안 검사들이 일제의 대화숙(하는 역할은 보도연맹 일제시대 버전이다)을 본떠서 만든 일종의 관제 민간단체다.

참고로 주도했던 오재도 검사는 양심이 있는지 훗날 1공화국의 뻘짓이자 당연히 나라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해 위령제를 해야 한다고 인정했다고 한다.

본디 1920년대에 창설된 고려공산당 → 조선 공산당은 해방 후 남조선로동당이 되는데 독립운동 시기에 국외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하곤 국내에 남아있던 우익 독립운동 세력들이 친일파로 전향할 때도 좌익 계열은 끈질기게 투쟁하다가 때려 잡힌 전력이 있다. 즉, 냉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공산당과 공산주의자가 독립운동가들이었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살게 해준다니 매력적이었고 한마디로 듣기엔 킹왕짱이었다. 특히 대구에서 그 세가 강력하여 당시 별명은 조선의 모스크바.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다름 아닌 또 다른 반인반신.

ㄴ 게다가 레닌은 공산주의 전파 차원에서 식민지 독립세력 중 공산주의 계열 쪽에 활동 자금을 꽤 뿌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 김구의 김립 암살 사건이다.

그러나 미군정이 남한에 들어섰고 아직 냉전이 시작되기 전이라서 공산당은 합법이었으며 당시 공산당과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도 좋았기에 세를 불려나갔다.(설문조사에서 "새 나라는 어떤 체제로?"라는 질문에 사회주의 국가라는 응답이 다수였을 정도.) 특히 심영처럼 친일파였다가 당시 세를 불리던 공산당에 전향하는 기회주의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1948년 국공내전에서 중공군이 승리하고 냉전이 격화되자 공산당이 불법화되었고 이후 4.3 사건, 여순사건을 거치면서 남조선 내에서 남로당 세력은 씨가 말라버렸다. 그리고 그 수괴 박헌영을 비롯한 일부가 빨치산이 되거나 월북한다.

원래 남한 내 좌익이었다가 혹은 월남 후 전향한 사람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다.(당시 언론엔 연일 공개 전향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이때 기회주의자들이거나 그냥 월북하기 싫은 사람이든 단순 동조자 등 경범죄자나 그냥 우익인데 정부에 반감 가진 사람들까지 빨갱이라면서 그냥 가입 시켰다고 한다. 그다지 좌익과 관련 없어 보이는 사회 인사들도 가입했는데 양주동 박사, 정지용 시인, 황순원 작가도 가입했다. 그리고 효과는 있어서 확실히 남로당 세력 약화에 기여했다.(물론 그전에 공산당을 착실히 때려잡아 씨를 말려 놓은 것도 있겠지만)

여기에 가입하면 좌익 전력을 세탁해주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다는 취지였고 그렇게 선전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그리고 교육을 받는데 그 교육이란 게 뭔 삼청교육대 할애비쯤 된다. 도망치면 더 가혹한 벌이 기다리고 있었고 연대 책임으로 나머지 사람들에게 더 큰 형벌이 부과되는 시궁창 같은 곳이었다.

문제는 헬조선 공무원들의 일 처리가 다 그렇듯이 실제로 가입된 사람은 전향이고 북한이고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들이 대다수였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이장, 통장이 인감을 걷어다가 동네 사람들을 일괄 가입시키는가 하면 경찰서에서도 위에서 내려온 강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저거 평소에 불평 불만 많이 하고 다녔으니 빨갱이 ㅇㅇ 라면서 가입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중고딩, 오늘날의 급식충들까지 저거 좌익 범죄자임 내가 봤음! 이러면서 막 가입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쌀 보급해준다고 가입하라고 부추겼다는 얘기도 있음. 얼마나 마구잡이로 가입시켰냐면 그 명단엔 심지어 그 시절의 극우 단체 멤버까지 가입되어 있었다.(정지용 시인은 우익 성향이었는데도 회원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확실히 박헌영이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면 200만 남로당이 궐기한다~! 고 했지만 실제로 기어 나온 놈들은 얼마 없을 정도로 남로당은 약화되었고 덤으로 불평불만 분자들도 여기다가 잡아넣고 굴렸고 씽먼 리 정권의 안정화에도 기여했으니 이대로만 갔다면 제1공화국은 빨갱이도 없고 불평불만 분자도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로 오래 오래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라며 행복한 결말로 끝났을 것이다.

ㄴ 사실 농지개혁법 이후 지주들은 대부분 업종전환을 했고, 토지값이 남긴 했지만 자기땅이 생긴 농민들의 불만은 크게 감소하여 굳이 북한편에 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북쪽의 웬 혹부리 똥돼지가 미쳤는지 쳐들어왔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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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골수 빨갱이들도 있었지만 무고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저 서명만으로 자신도 모르게 강제가입 당했거나 좌익, 우익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양민들이 대부분 희생당했다. 건국 대통령 각하께서 만든 헬조선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결국 한국전쟁이 터지자 헬조선 정부는 관리해준다는 당초의 목적은 내던져버리고 북괴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며 가입자들을 전부 죽여버릴 것을 지시했다. 근데 상술했듯이 이게 언제 어디서 누가 했는지 아몰랑 ㅋ

이때 예비 검속으로 덤으로 서울 구치소 서대문 형무소 대전 형무소 에서 미결수 형수는 물론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은 정치범들까지 모조리 총살 시켜버렸다.

자기들에게 총을 들이댈 가능성이 있다면서 점령지 주민들 죽이고 마을 불태우던 나치들과 뭐가 다른지?

ㄴ 시간이나 벌라고 한강 철교 끊고 도망간 다음 돌아와서 부역자라고 죽여대던 거 보면 나치보다 악질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전후에 생긴 혼혈 아동들 단체 입양도 인종 청소 차원인 거 보면 ㄹㅇ 나치급이다.

공식으로 약 5000명, 비공식적으로는 보통 20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한다. 이것도 그나마 경산 코발트 광산(흔히 안경 공장으로 알려진 호러스팟이다.) 학살 때는 유일한 생존자가 증언해서 어느 정도 밝혀진 건데 그는 당시 중고등학생이 강제 가입된 케이스로 학살 실무자들이 토론 끝에 애가 좌익이 뭔지는 알겠느냐고 판단해서 귀가시켰기 때문이다. 그 외엔 그날 그 산에 올라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 외엔 동행한 미군이 당시 학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게 유일한 증거다.

또한 남부 해안 지역에서 처형 당한 보도연맹원들은 그대로 바다에 시신이 버려졌는데 일부가 일본 해안으로 떠밀려와 일본에 시신이 합장되어있고 당시 이러한 무연고 시신에 대한 일본 신문 기사도 남아있다.

그 외의 지역은? 목격자가 없는데 어떻게 찾냐? 학살 가담자들이 입을 열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들마저도 이젠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죽어가고 있다. 희생자들은 아직도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도무지 모르는데 학살 가해자들은 편하게 눈을 감는 현실이다.

죽인 이유는 구 좌익이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고 본 건데 정작 대부분의 진짜 전향자 보도연맹원은 북괴 입장에선 죽여도 할 말이 없는 배신자이므로 이들은 목숨 걸고 대한민국을 사수하는 것만이 살 길이었고 실제로 그랬다. 보도연맹 입안자 중 한 명인 오재도 검사가 이를 증언하였다.

ㄴ 유사 사례로 제주 4.3 사건 이후 제주도 출신 해병대가 유독 많았다고 하던데 빨갱이로 몰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한 것 아니었나 싶다.

북괴의 서울 점령 전후에 오히려 보도연맹원들은 각각의 담당 검사들의 소집에 응하여 반공 구호 활동과 의무 지원(주로 전향 의사, 간호사) 등 국군과 대한민국 정부에 협조하고 아직 탈출하지 못한 군경 가족들의 서울 탈출을 도와주고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에서 탈출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며 민간인들의 피난을 도왔고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위치를 사수했기 때문에 그들이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전쟁을 독려하기도 했고 그 자신들이 국군에 지원 입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작 소수의 보도연맹의 중진으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배반하여 북괴의 편에 붙어 인민 재판 등에 나섰던 인물들은 두 번 배신한 놈이 세 번을 배신 못 할 리가 없을 거라는 이유로 북괴군 측에 의해 반동 배반자로 몰려 처형 당했다. 즉 대한민국에 끝까지 충성을 바친 보도연맹원들이 옳았던 것.

학살 이후[편집]

제1공화국[편집]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인정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박정희 같은 전향 빨갱이 몇몇은 용케 살아남았다

ㄴ 김일성 덕분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군이 말소 당한 그의 군적을 되살렸다. 이른바 김일성이 살린 사람이 세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대만의 장개석(한국전 터지면서 짱깨의 대만 상륙작전 무기한 연기), 한 명은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한국전 터졌단 소식 듣고 요시를 외쳤단 썰이 있을 정도로 다 죽어가던 일본이 살아났다), 마지막 한 명이 박정희란 말이 있을 정도.

ㄴㄴ 싱먼 리도 포함일 거다. 전쟁이 없었으면 좀 더 일찍 하와이에서 지냈을 거다.

문제는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남북한 어느 쪽이든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빠져나갔고 살아남았다. 일례로 보련회원은 아니었지만 위에 누가 언급한 박정희는 남로당 숙군 작업 중에 걸렸을 때 같은 만주쪽 출신인 백선엽, 정일권, 김창룡 등이 도와주어 살아남았다. 일찍 죽은 김창룡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보답으로 3, 4공화국 기간 내내 잘나갔었다. 즉 힘없고 빽 없고 돈 없는 사람들만 걸려들어 죽어버린 셈이다.

개전과 동시에 런하는 추태를 보였던 주제에 이승만 정권은 서울에 돌아온 뒤 뻔뻔스럽게 그 이후로 유족들을 연좌제를 적용했다. 참고로 연좌제는 1894년 일제가 개좆같다고 갑오개혁 때 앞장서서 폐지하라고 했고 조선 내각도 이에 동의해서 없앴다. 그리고 그 천하의 일제도 연좌제는 되살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뛰는 일제 위에 나는 헬조선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것도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80년대 말에 폐지된다.

제2공화국[편집]

런승만의 문민독재 정권을 4.19 혁명으로 무너뜨리고 수립된 제2공화국은 국회 차원에서 보도연맹 진상조사위원회가 설립되어 조사 활동에 나선다. 또한 보련 피해자 유족들도 싱먼 리의 탄압이 사라지자 양지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제3~5공화국[편집]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전향 빨갱이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뒤로 군사 정권이 이들을 모조리 재판에 회부해서 처벌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리고 유족회는 해산되고 유족들은 다시금 연좌제가 적용되어 빨갱이의 가족이란 딱지가 붙어 말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탄압을 받았으며, 위령비는 땅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ㅉㅉㅉ

정작 저런 양반이 첫 대통령 선거 때 윤보선 캠프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거론하며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하자 메카시즘적 선동 자제요 ㅠㅠ를 외쳤다니 통탄하지 않을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여기엔 배경이 있는데 남로당 전력 때문에 미국마저 그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와중이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용공분자 같은 발언이나 행위를 했다가는 미국이 친히 카운터 쿠데타를 먹여 인실좆을 시전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저렇게 미국 눈밖에 났다가 좆된 케이스가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칠레의 아옌데 등 수없이 많다. 즉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과 북한 특사 황태성과 같은 저시점의 희생자인 셈.

민주화 이후[편집]

근데 03, DJ는 뭐한 거냐? 03은 자유당 출신이라서 그런 거냐?

국민의 정부[편집]

진실화해위가 2007년대 들어서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했는데 이때 조사 결과로 10대 청소년까지 학살했음이 드러났다. 2008년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서 책임지고 사과했다. 비록 보련건은 아니지만 전 정부의 양민학살에 대한 정부의 배상 책임 회피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경과되었음을 근거로 들 수 없다는 역사적인 판결이 났다.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는 한도 내에선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소급 적용을 할 수가 있다는 것.

이명박근혜 정부[편집]

정권이 보수로 바뀌자 다시 수면 아래로 묻혔다. 경산 코발트 광산도 결국 발굴이 잠정 중단되었고 유골들 또한 현장의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며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이 공포 체험을 한다고 들락거리지 않나, 심지어 유골을 훔쳐가지 않나 가관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편집]

2020년 진실화해법이 통과됨에 따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20년 12월에 출범했다. 뭐했는지는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