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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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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

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82년 4월 22일
출생지 브라질리아
국적 브라질
신장 186cm
체중 82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백넘버 NO.10
유스팀
상파울루 FC (1994~2000)
클럽
AC 밀란 (2003~2009, 2013~2014)

레알 마드리드 (2009~2013) 올랜도 시티 SC (2014~2018)

국가대표
브라질 92경기 29골

소개[편집]

브라질의 축구선수이다.

전성기 시절(AC 밀란시절)에 그는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써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이후에는 부상으로 인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현재는 미국 MLS의 올랜도 시티에서 활약하다 얼마전 은퇴를 선언했다.

상파울루[편집]

그가 처음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곳은 브라질 리그의 상파울루였다.8살에 나이로 상파울루 유스에 입단한 그는 2001년에 데뷔시즌에 상파울루에서 27경기 12골을 넣었고 이후 2002월드컵에서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비록 코스타리카전에서 교체출전 한 것을 제외하면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 했지만 생애 첫번째이자 유일한 월드컵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2003년까지 상파울루에서 활약했던 카카는 자신이 원했던 유럽 명문팀으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그 팀은 이탈리아 세리에A인 AC밀란이었다.

AC밀란 그리고 전성기[편집]

AC 밀란으로 이적했을 무렵 밀란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출중한 플레이 메이커인 마누엘 후이 코스타가 자리잡고 있었고, 카카는 사실상 그와 포지션 경쟁을 해야했다. 이제 막 유럽에 왔기 때문에 당시 애송이 취급을 받던 카카는 첫 시즌을 교체멤버로 보낼거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코스타보다 카카를 중용했고 그는 데뷔시즌부터 활약하며 리그우승을 차지한다. 사실 이 때 카카가 순수 실력으로 후이 코스타를 밀어내었다기 보단 안첼로티의 전술 특성상 코스타보다 더 어울리는 미드필더였기 때문이다.

다음 시즌인 4/5시즌에는 스쿠데토를 지키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로 지난 시즌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기대했는데, 상대는 전력이 한 수 아래라고 평가 받았던 리버풀이었기 때문이였다. AC밀란팬들은 선수들이 7번째 빅이어를 들어 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승전, 전반전까지의 카카의 활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그는 리버풀 수비진들을 자신의 뛰어난 테크닉과 패스로 초토화 시키며 카카의 뛰어난 패스 덕분에 전반전에만 AC밀란은 3골을 넣어 3대0으로 대승을 거두는 듯했다.하지만 리버풀에는 젊은 나이에도 출중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던 주장인 스티븐 제라드가 있었고 그의 리더쉽이 발휘되어 리버풀의 선수들은 후반전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AC밀란을 밀어 붙이게 된다.결국 연장전을 넘어 승부는 승부차기에서 결정나게 되었다.이때 카카는 4번째 키커로 나와 패널티킥을 신중하게 성공시켰지만 5번째 키커로 나온 셰브첸코가 실축 하면서 결국 아쉬운 준우승을 경험하게 된다.사람들은 훗날 이 경기를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부르게 되지만 AC밀란팬들에게는 기적이 아니라 잊고싶은 악몽 그 자체였다.

5/6시즌에도 카카는 준수한 활약을 펼첬지만 이번에도 스쿠데토를 가져오는데 실패했고 챔피언스 리그 또한 4강전에서 fc바르셀로나에 패해 탈락했다.

2006월드컵에서는 주전선수로 출전하게 된다.그 당시 브라질 대표팀은 카카를 비롯해 호나우두,호나우지뉴,아드리아누를 포함해 황금4중주라고 불리며 사람들은 그들의 우승을 예상했으나 결국8강전에서는 카카를 비롯해 브라질 공격진들이 프랑스 수비진들을 돌파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탈락하고 만다.

6/7시즌에는 AC밀란의 사정이 더욱 탁해지고 말았다.팀의 주축공격수인 셰브첸코가 팀을 떠났고 팀은 카치오폴레에 대한 징계로 리그에서 승점삭감을 받아 리그우승 또한 매우 힘들어 지게 된 상황이다.이럴때에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을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형태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화를 주어서 챔피언스 리그에서 많은 골을 넣게 된다. 특히 4강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시합에서는 수많은 축구팬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카카는 1,2차전 대활약했고 특히 1차전에서의 2번째 골은 거의 혼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비진들을 농락하고 만든 최고의 골이었다.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난 호날두는 카카의 활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2년전 악몽을 선사해준 리버풀이었다. 결승전에서의 카카는 인자기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2년 전의 악몽을 씻는데 성공하고 이 활약으로 인해 발롱도르까지 수상해 세계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7/8시즌에서는 리그를 5위로 마감했고 챔피언스 리그 또한 16강에서 탈락해 팀이 몰락하고 말았다.8/9시즌에는 자신의 리그 최다 득점인 15골을 넣어 파투와 함께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지만 이는 곧 공격형 미드필더인 카카가 골까지 책임질 수 밖에없는 밀란의 안타까운 사정을 증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리그는 3위를 차지해서 팀이 어느정도 회복하는데는 성공한다. 그러나 맨시티가 카카를 영입하겠다는 말이 나와서 밀란팬들은 카카에게 팀을 나가지 말아 달라고 끊임없이 부탁하게 된다.카카는 그러 팬들에게 자신의 등버호22번이 적힌 AC밀란의 유니폼을 보여주며 이적하지 않을것이라고 밝혓다.이렇게 맨시티는 카카의 영입을 실패하게 되었지만,얼마 가지 않아 다시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 되었던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은 두번째 갈락티코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본보기로 카카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기에 이른다.AC 밀란팬들은 카카가 떠났다는 사실의 절망했고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최고의 득점력을 가진 윙어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이 시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카카의 호흡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들이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숙원인 챔피언스 리그의 10번째 우승을 이루어 주고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fc바르셀로나로 부터 라리가 우승트로피를 다시 가져다 줄 것이고 생각했다.

글쓴놈 조선족도 아니고 뭐이리 글을 못쓰냐? 외국글 번역기돌린건가? 일일이 다 수정하다 지쳐서 관뒀다.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몰락[편집]

레알 마드리드로 오고 난 뒤 전반기 까지는 카카는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 주었다.그의 첫 엘클라시코에서도 침묵한 호날두에 비해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푸욜의 환상적인 수비에 공격진들이 카카가 만들어준 여러번의 기회를 살리못했고 결국 이브라히모비치의 골로 인해서 1대0으로 패하고 만다.비록 엘클라시코에서 지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팬들은 카카에게 신뢰를 더욱 두텁게 쌓고 있었다.하지만 시즌 도중 부상을 당한 뒤로는 카카답지 못한 조용한 플레이가 나왔고 이 것은 곧 팬들의 환호에서 야유로 바뀌었다.결국 첫 시즌은 팬들이 기대했던 챔피언스 리그도 16강에서 일찍이 탈락하는 등 첫 시즌부터 26골로 활약한 호날두에 비해 초라한 활약을 했다. 첫 시즌에 그는 기대이하의 활약을 했지만 그래도 부상 이전에는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것에서 부상에서 회복한 다음 시즌 만큼은 팬들의 기대에 보답해 줄 것 같았지만 팀에게 부상 사실을 숨기고 무리하게 월드컵에 출장해서 오히려 부상은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이후부터는 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카카는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 축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가 되고 만다.같이 들어온 호날두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큰 경기에 약하다는 오명을 벗고 꾸준히 활약한 반면 카카는 10/11시즌 이후로 약팀을 상대로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강팀을 상대로는 언제나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우승길목을 언제나 가로막는 팀의 마이너스가 되고말았다. 결국 몇 시즌이 지나도 그가 받는 주급과 이적료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활약을 하자 레알 마드리드는 심지어 AC밀란에게 다시 그를 아무 이적료도 받지 않고 내주었다. 카카가 이렇게 된 것에는 AC밀란에서 카카를 혹사시킨 것도 있지만 팀에게 부상사실을 숨기고 월드컵 출전을 감행해서 부상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라서 아무도 그를 옹호해 줄수가 없다. 결국 한 시대를 대표한 최고의 미드필더가 허무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다시 AC밀란으로[편집]

결국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악의 시기를 보낸뒤 AC밀란으로 다시 돌아온 카카는 심리적으로 어느정도 안정됐는지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비하면 꽤나 활약하게 된다. 13/14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팀의 주축선수였던 치아구 시우바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당시 신흥강호 팀이였던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시킨 AC밀란이었기 때문에 카카는 비록 과거의 비해 실력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무너져 가는 팀을 호비뉴와 호흡을 이루어 어느정도 지탱했지만 리그 순위는 최악을 달리게 된다.결국 리그8위로 시즌을 끝내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미국 MLS의 올랜도 시티SC로 이적하게 된다.

이 시즌 자신의 100호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랜도 시티 SC[편집]

시즌 시작전에 경기력 유지를 위해 잠시 자신이 예전에 뛰었던 상파울루로 임대를 갔다.그리고 시즌시작 이후에는 팀의 에이스로써 매우 준수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이로 인해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잘 끝낼수는 있을 것 같다

국가대표[편집]

2002년 월드컵때는 가만히 서있다가 우승했다.

2006년 이후에는 자기가 직접 뛰었는데 8강뿐이 못갔다. 특히 네덜란드 앞에서는 완벽한 고양이 앞의 쥐다.

이 녀석과 토레스, 슈바인슈타이거를 보면 인생이 참 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플레이스타일[편집]

뛰어난 패스능력에 피지컬,결정력,슈팅,볼 컨트롤,개인기를 비롯해 그 이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로써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주었고 수비가담이 부족하다는 점을 빼면 완벽한 미드필더였다.무엇보다도 그의 최대 장점은 우월한 주력을 이용한 간결한 치고달리기로 이 능력을 이용해 상대 수비진들을 몇 번이고 농락하기도 했었다.이 것은 전성기까지의 플레이스타일이고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저하한 지금은 활동량과 패스의 중점을 두는 스타일로 바꾸어 전성기시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