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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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세월호 참사의 타임라인. 사고 이전 청해진해운의 병신짓거리를 볼 수 있다. 그 이후도 발암이니 주의하자. 정치적 발언은 되도록이면 삼갈 것. 타임라인인데 그게 왜 들어가냐? 다만 ㄹ혜의 행적은 예외일 듯하다.

볼드체는 시간단위로 끊어서...

2014년[편집]

4월[편집]

14일 이전[편집]

신○○ 선장. 휴가 내다. 그리고 그 선장자리엔 이준석이 앉았다.

신○○ 선장의 휴가 이유는 바로 즉 배가 처음 일본에서 들여왔을 당시에는 괜찮았으나 이후 배의 균형을 무시한 채 개조를 감행해 회사 측에 개조하지 말라고 계속 항의했으나 그때마다 묵살 당했던것. 거기다가 이 사고도 예상.

결국은 그그실이 되버렸다.

14일[편집]

15일[편집]

  • 18시 30분: 출발 예정 시각. 그러나 짙은 안개로 출항이 지연되었다.
  • 21시 경: 2시간 30분의 지연 이후 인천항에서 출항했다.

원래대로 라면 18시 30분 출항하기로 했던 배가 안개로 인해 짧아진 가시거리(당시 가시거리는 800 m. 가시거리 1 km 이하는 출항불가다.)로 인해 출항은 23시의 가시거리로 결정하기로 했으며 학생들은 버스를 통해 일단 학교로 돌려보낸 후 수학여행을 재계획하기로 했다. 그러나 300여명 규모의 큰 수입을 놓칠 수 없었던 청해진해운이 21시에 출항을 강행.

선장 이준석은 뇌물을 받았다고 하는데 뇌물을 받는 순간 자신의 뇌가 사라졌는지 평형수도 방수해 버리고 출항했다.

16일[편집]

청해진해운의 병신짓 덕에 원래 세월호 선장이었던 신○○의 예상대로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흑마법이 처음으로 튀어나왔다하더라.

시간이 된다면 침몰까지의 94분간 영상 기록이 있으니 이걸 볼 수 있도록 하자. 이게 조회수가 가장 많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슨 잠수함이 충돌했니 앵카로 침몰 시켰니 하는 영상만 100만 찍고 이건 생각보다 조회수가 없더라.


  • 7시경: 현지 어민이 사고해역에 정박해 있는 세월호를 목격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아 마을로 돌아갔다고 추후 증언.
  • 7시 50분경: 이 쯤부터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있다.
  • 8시 49분: 세월호가 49분 37초부터 49분 56초까지 19초간 오른쪽으로 45° 변침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 구간에서 외방경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 8시 52분: 탑승한 학생의 신고가 전남소방본부로 최초로 접수되었다.
  • 8시 55분: 세월호에서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구조요청을 하였다.
  • 8시 58분: 해경에서 탑승한 학생의 신고를 접수하였다.
  • 9시 7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세월호와의 교신 이후 세월호 근처 항해중인 중국 상선 1척과 한국 상선 2척에게 세월호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해상교통관제센터들은 세월호의 상태가 어떤지 주변 선박에게 물어보는 등 세월호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 9시 10분: 해양경찰청의 구조본부가 가동되었고, 직후 해경은 목포항공대 소속 헬기와 인근 전 경비함정 16척을 구조작업을 위해 현장에 출동시켰다.
  • 9시 18분: 세월호가 좌현으로 50° 정도 기울어졌다.
  • 9시 23분: 세월호가 선내 방송 불가로 승객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어떻게 해서든 승객들을 탈출시킬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 9시 30분: 헬기가 도착하여 6명의 승객을 구조한 뒤로 본격적인 구조가 시작되었다. 구조에는 SSU, 해군 UDT/SEAL, 육군 특전사의 잠수요원들과 미 해군 와스프급 상륙모함 6번함 본홈리처드(LHD-6)가 수색, 구조 작업을 위해 투입되었다.민간에서는 인근 라배도나 대마도(그 쓰시마 섬이 아니다.)등의 어민들이 생업을 미뤄둔 채 어선 40여척을 동원해 구조하러 왔고 근처에 있던 식수공급선, 어업지도선, 자치단체 행정선, 낚싯배 등 구조활동이 가능한 배는 모두 사고해역으로 달려갔다.
  • 9시 57분경 교신에서 서장이 어선과 123정에서 우현으로 뛰어내리라고 방송, 고함을 치는게 어떻냐고 하는데 사실 오자마자 했었어야할 행동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정장은 좌현으로 뛰어내릴 수 없어 항공구조를 해야한다는다른 이야기를 하며 뛰어내리라는 방송을 하지 않았다. 특히 이 교신 당시 좌현은 이미 침수되어 좌현으로는 탈출할 수 없었고 서장은 우현을 언급했는데도 이런걸 보면 의도적으로 탈출을 방해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여기서 서장이 이를 지적하며 방송을 통해 우현으로 탈출시킬것을 강하게 지시 했었으면 그래도 좀 더 많은 인원이 살았을 것이다.
  • 10시경: 구조 헬기를 본 선사 여직원 박○○(23) 씨가 승객들에게 탈출하라고 외쳤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 때부터 대피하기 시작했다.
  • 10시 5분경: [2] 서장이 간단명료하게 탈출 방송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정장은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많이 늦긴 했지만 이 때라도 했다면 탈출가능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살았을 것 같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현장을 잘 알것이고 지시이행에 어려운 점이 있을수도 있기에 현장에 없는 서장이 강하게 지휘하기가 조심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다.
근혜의 7시간[편집]

  • 11시 01분: MBC, 학생 전원 구조 오보. 그리고 다른 방송국에서도 잇따라 오보 행렬.
  • 11시 18분경: 세월호는 좌현으로 기운채 2시간 20분 만에 완전히 전복되어 선수 일부만 남겨둔 채 침몰하고 말았다.
  • 11시 30분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는 161명의 구조 소식을 알렸다. 현장 바다에서 승객 안내를 맡았던 박○○(23)씨가 사망자로 발견되었다.
  • 12시 30분: 171명이 구조되었음이 발표되었다. 구조 후 병원으로 호송되었던 남성 1명이 사망했는데, 단원고 2학년 학생인 정○○군으로 밝혀졌다.
  • 13시 3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68명이 구조되었다고 발표했다.
  • 14시경: 1차 구조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이 때부터 생존자들의 증언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침몰하기 직전에야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선내방송은 계속 "위험하므로 선내에서 그대로 대기하라"라고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 15시경: 해경은 기존에 집계되어있던 구조자수의 집계가 중복집계로 인해 오류가 발생했음을 중대본에 통보한다.
  • 16시 3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탑승자를 458명으로, 구조자를 164명으로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어설픈 대처에 대해 언론과 네티즌의 질타가 이어졌다.
  • 17시: 해군과 해경이 수심이 낮은 부분의 선실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수색대는 선실 3곳에 진입했으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선실에는 물만 차있었다고 전했다. 수색은 시계불량과 조류가 다시 빨라짐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 17시 15분: 사라졌던 ㄹ혜가 다시 등장한 시간.
  • 18시 30분경: 사망자 1명이 추가로 발견 단원고 2학년 학생 권○○군으로 확인되었다. 환경공단 소속의 인양능력 2,000 t급 해상크레인이 진해에서 출발. 18일 20시 30분경 도착 예정.
  • 18시 40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구조 수색 계획을 브리핑하고, 수색활동의 모든 상황을 해경에서 지휘, 브리핑하기로 하였다.
  • 19시 20분경: 사망자 1명이 추가로 발견
  • 19시 40분: 대우조선해양 소속의 인양능력 3,200 t급 해상크레인이 거제도에서 출발. 18일 05시 40분경 도착 예정.
  • 20시 30분: 삼성중공업 소속의 인양능력 3,350 t급 해상크레인이 거제도에서 출발. 18일 20시 20분경 도착 예정.


17일[편집]

  • 0시 30분: 선체 수색작업을 예정보다 30분 앞당겨 해경 특공대 및 해군 잠수부 8명을 투입해 시작했다.
    선내 수색 작업은 정조 시간이 끝나는 새벽 1시 반에서 두 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아침의 기상 악화를 우려하였는지 새벽 2시 반이 넘었음에도 수색을 계속 진행했다.
  • 1시 50분: 한 학부모의 핸드폰에 16일 오후 10시 50분에 발송된 '식당에 많은 이들이 갇혀있다. 살려달라' 라는 문자가 도착하였다. 생존 주장 문자를 믿고 진위여부 가리기보다 잠수부를 투입해 산소를 주입하겠다고 해수부 관계자는 전했다.
  • 4시 15분: 정조 시각(간조)
  • 6시 30분: 밤 사이 사망자가 2명 늘어 총 6명. 이후 단원고 교사 최○○씨와 학생 박○○양으로 확인되었다. 아침 수색 재개.
  • 8시 20분: 신원미상의 사망자 여성 2명이 단원고 교사 최○○씨와 박○○양으로 확인되었으나, 박 양 부모님과 작년 담임선생님의 확인 결과 박 양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 9시 30분: 민간잠수부 555명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 9시 50분: 추가 사망자가 발견되었으며, 몇 시간 뒤에 단원고 2학년 박○○군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오후 9시에 DNA 검사를 통해 이○○군인 걸로 확인.
    인근 해역에서 29세 김○○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 10시 23분: 정조 시각(만조)
  • 10시 50분: 해경이 선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여 사고 원인과 지침 이행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 11시 18분경: 세월호가 침몰한 지 24시간이 경과하였다.
  • 14시 20분: 구조활동을 돕던 민간다이버 3명이 복귀도중 높은 파도에 휩쓸려 한 때 실종되었다가 5분여 만에 근처 민간어선에 의해 발견,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종된 게 아니라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무사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 15시경: 객실에 산소를 주입하려는 계획이 강한 해류로 인해 실패.
    민간 잠수부가 선내에서 사람을 목격했다는 이야기 역시 오보로 밝혀졌다.
  • 16시 17분: 정조 시각(간조)
  • 20시 25분: 해양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생존자 179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추가 구조자가 확인되는 대로 게재한다고. 17일 0시 30분 기준 생존자 명단.
  • 20시 39분: 신원 불명의 여성 사망자 한 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20시 45분: 신원 불명의 남성 사망자 한 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21시 05분: 신원 불명의 여성 사망자 한 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21시 20분: 신원 불명의 남성 사망자 한 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22시 51분: 정조 시각(만조)
  • 23시 11분: 신원 불명의 남성 사망자 두 명과 여성 사망자 두 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발견 장소는 사고 인근 해역이다.

18일[편집]

  • 0시 17분: 신원 불명의 여성 시신 2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 0시 54분: 신원 불명의 남성 시신 1구, 여성 시신 2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 4시 51분: 정조 시각(간조)
  • 7시 30분: 17일 저녁부터 18일 새벽까지 발견된 시신 중 10구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8명의 단원고 학생과 1명의 직원, 1명의 일반인이라고 한다.
  • 8시 32분: 크레인선 3척이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중앙안전대책본부는 실종자 가족들의 동의가 나오기 전까진 인양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으며 도착한 크레인선들은 인양 준비작업만 실시하고 있다.
  • 10시 05분: 사고발생 49시간만에 세월호 선체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가 확보되었다.
  • 10시 20분: 정조 시각(만조)
  • 10시 50분: 해경 잠수부들이 선내에 공기주입 시작.
  • 11시 27분: 침몰한지 약 48시간만에 수면 밖으로 조금 나와있던 뱃머리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 11시 29분: 신원 불명의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 12시: 조금씩 가라앉는 배의 부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선체 곳곳에 대형 공기주머니를 설치하기로 했다.
  • 12시 33분: 신원 불명의 남성 사망자 두 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13시 03분: 삼성 중공업 소속 크레인선(삼성2호, 3,350 t급)이 도착해 인양준비작업에 들어갔다.
  • 13시 30분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사망자 명단을 비공개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로는 실명 전체가 아니라 성씨만 언급할 거라고 한다.
  • 15시 38분: 해경 잠수부들이 화물칸을 통해 선내에 진입했다.
  • 16시 05분: 구조됐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교감이 자살하여 진도체육관 뒷편 야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유서는 20시 경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 16시 29분: 정조 시각(간조)
  • 16시 36분: 선내에 진입했던 잠수부들이 유도선의 절단으로 진입 14분만에 철수하고 말았다.
  • 16시 42분: 세월호에서 기름이 유출돼 주변바다에 유막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 18시 28분: 해군 특수구조단 20여명이 3층 선실에 진입을 시도했다.
  • 19시 20분: 3층 레크레이션실에서 공기가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해 작업이 잠시 중단되었다.
  • 19시 31분: 선장 이준석씨를 비롯 핵심 승무원 3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 22시경: 구조 현황의 인원수 조정이 있었다. 해양경찰청이 구조자수는 5명이 줄어든 174명, 실종자수는 6명이 늘어난 274명으로 정정했다.
  • 22시 25분: 정조 시각(만조)
  • 23시 08분: 해경잠수요원 2명이 선수 3층 격실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각종 수중 장애물 등으로 추가 진입이 어려워 퇴수.
  • 23시 54분: 추가 사망자가 발견되었으며, 해경 발표에 따르면 정○○씨로 확인되었다.

19일[편집]

  • 3시 10분: 해경은 파도와 조류로 인해 1시간 지연되었던 구조작업을 재개했다. 35명의 잠수부는 교대로 선체 진입을 재시도했다.
  • 5시 40분: 정조 시각(간조)
  • 5시 50분: 잠수부들은 선내 4층에서 사망자 3명을 발견해 수습하려 했으나, 부유물질과 잠수시간 초과로 더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내려가 창문을 깨서 시신을 수습하려 했지만, 높은 파도와 조류 때문에 선체 진입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시신 유실을 막기 위해 세월호 주변 해역에 그물망을 설치했다.
  • 10시 00분: 해양경찰청의 브리핑에 따르면, 선수부분은 이제 수면 아래 10m까지 내려간 상태라고 한다.
  • 11시 13분: 정조 시각(만조)
  • 11시 18분경: 세월호가 침몰한 지 72시간이 경과하였다.
  • 16시 55분: 세월호 침몰 사고 지점 부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의 시신 1구가 발견되었다.
  • 17시 12분: 정조 시각(간조)
  • 17시 48분: 3011함 단정이 여성 시신 1구를 발견하여 인양되었다.
  • 17시 58분: 31번째 시신 발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원 불명의 여성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 18시 00분: 유도선을 두개 설치했으나 기상상황의 악화로 수중수색에 진전이 없는 상태.
  • 19시 30분: 신원 불명의 여성 시신 1구를 발견하여 인양되었다.
  • 23시 13분: 정조 시각(만조)
  • 23시 48분: 구조팀이 선체 유리창을 깨고 4층 격실에 있던 시신 3구를 수습하였다. 선내 첫 사망자 수습으로, 수습 시신은 단원고 학생 이○○ 군, 김○○ 군, 김○○ 군으로 밝혀졌다.

이하 추가바람

2015년[편집]

2016년[편집]

2017년[편집]

  • 3월 22일: 마침내 인양작업이 시작되었다.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진작 좀 인양하지. 참고로 특이한 구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ㄴ 반대질했는데 어떻게 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세금낭비라고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관심종자 내지 지능형 어그로일 확률이 높으니 무시해라.

ㄴ 처음에 샘숭에서 공짜로 해준다했는데 유족 측에서 현장, 시체 훼손을 우려해서 무산됨. 이후 짱깨들이 돈받고 함

  • 3월 24일: 배를 수면 위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물론 배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 3월 25일: 반잠수함을 이용해 더 들어올리고 육지로 옮기기 시작했다.

  • 3월 26일: 육지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와중에 유실물 방지막은 다 뚫려있었다...
  • 3월 28일: 처음으로 미수습자의 유골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는데 조사해보니 동물뼈라고 한다.
  • 4월 8일: 내부가 존나 처참하다. 온갖 잔해와 뻘이 뒤섞여서 쓰레기장이 된 상태. 미수습자 유골 찾기에 어려움을 줄 듯 하다.
  • 5월 13일: 사람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다수 발견되었다. 자세한 신원파악을 위해서는 DNA 감식해야한다고한다.

2019[편집]

2020[편집]

2021[편집]

  • 1월 19일 - 박근혜김기춘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최종 무혐의 판결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