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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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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이 문서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역사 속의 네임드 급 인물들입니다. 이 틀은 고인이 된 대상에게 사용하십시오.

王逢規

후삼국시대의 호족.

본래 의령군태수로 있었다가 신라말 군웅할거의 시대가 시작되니까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고 후당에 사신을 보냈다. 그리고 후당은 이미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였던 그를 회화장군(懷化將軍)으로 봉하였다. 이후에도 927년 왕건소격달에게 뚜까쳐맞고 멸망해 종범하기 전까지 계속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사실상 김순식처럼 독립국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소송, 차윤웅이 죽은뒤부터 멸망할 때까지 강주도독으로 있으면서 경상남도서부지역의 머튽이 되었다.

차윤웅과 함께 자기 상관이었던 강주도독 소송을 죽인뒤 그가 반란군 토벌중에 사고사했다고 구라치고 임신했던 소송의 부인 정효부인을 그의 부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 소격달도 자기 아들로 쳐줬고 격달은 나중에 차윤웅의 명령으로 증산산성을 쌓고 하동태수가 됬을때 엄마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자살하기 전까진 왕봉규를 자기 애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출생의 비밀 알고나선 그딴거 없이 계속 왕봉규를 때리다가 927년 왕건과 함께 복수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