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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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가타리에 나오는 절벽 보추를 찾아왔다면 여기로.
ㄴ 오우기는 좀 억지인거 같았었는데 너가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으니 예쁘게 칸 만들어서 붙여봥 ㅇㅇ
너무 웅장할 수 있으니까 글 읽을 때 주의하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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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병법을 쓴 그 오자다. 오자서랑은 다른 사람이다. 헷갈리지 말자.
남간 오기 문서가 너무 개판이다. 적어도 개인적인 생각을 사실인 양 적지는 말아야 하는거 아니냐?
어릴적[편집]
오기의 고향은 위(衛)나라이다. 좌씨골(左氏邑)이란 마을에서 금수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주변의 주목을 받으며 살았다. 언행이 애늙은이 같은가 하면 한 번 마음먹은 것은 포기하는 법이 없을 만큼 고집이 세고 남한테 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등 일반인과는 다른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통솔력도 있어서 항상 동네 꼬마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이런 오기를 눈여겨 본 그의 아버지는 공부를 시키고 관심도 많이 주었다. 그의 성격과 관련한 어릴 적 이야기가 있다.
마을에 새로 이사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초딩일진마냥 등빨도 있고 성격도 더러웠다. 이런 녀석이 겉으로 별 볼일 없는 오기의 말을 잘 들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항상 오기의 포지션을 뺏을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오기도 한 성깔 하는지라 순순히 자리를 내줄 생각은 없었나보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싸움이 붙었다. 초딩일진은 오기를 줘팸했고 다행히 지나가던 어른들이 말려주어서 승부가 가려지진 않았지만 초딩일진은 멀쩡했고 오기는 여기저기 얻어맞아서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초딩싸움은 먼저 코피가 나면 지는 법. 사실상 오기가 진 거나 다름 없었다.
주변에서 팝콘을 먹던 아이들은 새로운 머튽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오기는 초딩일진의 집 앞에서 캠핑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딩일진도 오기를 마구 팼으나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오기는 꿋꿋하게 초딩일진의 집 앞에서 캠핑을 하고 싸움을 걸었다. 이렇게 닷새가 지나자 녀석은 집 밖에 나오지를 못했다. 오기의 지독한 끈기에 결국 기가 눌린 것이다. 열흘이 지나자 초딩일진은 결국 오기에게 무릎을 꿇었다.
메테다시 메테다시.
청년 시절의 흑역사[편집]
오기는 20세가 넘어서 병학(兵學)에 심취했다. 우연히 읽은 병서의 내용이 흥미로웠을까나? 아마 오기의 성격으로 봐선 장군이 되어 입신양명 하고 싶었던 듯 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했고 열심히 칼질도 연습했다. 2년 가량의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모든 병서의 내용을 줄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장군이 되려면 주변에서 재능을 인정해 주고 제후(諸侯)에게 천거되어야 하는데 금수저 집안이라고 해 봐야 평민 농사꾼 혈통이고 주변에 빽을 대줄 친구도 없었다. 조급해진 나머지 그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출세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벼슬자리만 얻으면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부터 오기는 주변의 유명한 가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접대와 여타 선물등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돈을 엄청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날이 갈수록 주변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그가 멈추지 않은 것은 곧 목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뇌피셜에 그쳤다. 오늘까지만 내일까지만 하던 것이 1년을 넘기면서 집안은 기울었고 아버지는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오기는 마을 어귀를 걷고 있었다. 이때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오기를 보고 곁눈질을 하며 막 뭐라고 속닥속닥 얘기를 했다.
분명 자기를 욕한다고 생각한 오기는 기분이 나빴지만 참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남자가 오기를 불러 세우더니 막 뭐라고 디시인들 기억폭력 하듯 마구 나쁜 말을 했다.
결국 참고 참던 오기는 폭발해서 칼을 들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을 다 죽여버렸다. 이제 그의 미래는 두가지였다. 살인죄로 참수당하던지 다른 나라로 도망치던지.
일단 집으로 돌아간 오기는 어머니 앞에서 자기 팔뚝을 물어뜯으며 "어머니, 저는 반드시 한 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는 고향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27세였다
증신에게서 파문당하다[편집]
노(魯)나라로 도망친 오기는 옛날에 열심히 공부한 덕에 운좋게도 공자(孔子)의 열 제자중 한 사람인 증삼(曾參)의 아들인 증신(曾申)의 문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기는 이곳에서 유학(儒學)으로 뜻을 펴 보리라 결심하고 공부에만 정진했다.
증신도 머리 좋고 열심히 하는 오기를 좋아했다.
5년이 흐르는 동안 오기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내적 갈등이 해소됐고 머리가 좋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유명인사들하고도 만났다. 그리고 제(齊)나라의 대부(大夫)인 전거(田居)의 딸과도 결혼했다. 그런데 이 시대에 30대 결혼이면 망한거 아니냐?
이 결혼이 가능했던 이유는 스승인 증신이 평소 친분이 있던 전거에게 오기를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오기는 빛나는 리즈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다시 나쁜 일이 닥친다. 인편으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어머니께 달려가고 싶었지만 살인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면 목이 잘릴 신분이었기 때문에 고향을 향해 절하며 눈물로 사죄했다.
몇 일이 지난 저녁 무렵에 증신이 급히 오기를 불렀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는 레퍼토리대로 증신은 모친상을 당하고도 고향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캐물었다. 더 심각한 사실은 누가 꼰질렀는지 증신은 오기의 과거 흑역사까지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 길로 증신은 오기를 쫒아냈다.
아내의 목과 대장군의 자리를 바꾸다[편집]
증신에게서 쫓겨난 오기는 옛날에 토론을 하며 오기의 재능을 알아봤던 재상 공의휴(公儀休)의 빽으로 노나라 변방의 국경수비대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
그가 본 노나라 군대는 도저히 군대라고 할 수 없었다. 사기도 바닥이고 질서도 개판이고 훈련상태도 수준 이하였다.
오기는 이 원인을 강력한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계속 지기만 해서 그런 것이라고 판단하고 즉시 행동에 나섰다.
우선 병사 중에서 그나마 나은 병사들만 따로 뽑아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은 물론이고 삽질과 제초같은 노동도 병사들과 같이 했다.
처음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병사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기의 태도에 차츰 호감을 보였다. 상태가 조금 나아지자 오기는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얼마 후 오기는 장군에게 자신이 훈련시킨 부대를 데리고 제나라를 공격하겠다고 의견을 냈다. 말도 안 되는 건의에 장군은 굉장히 의아했지만 오기는 자신의 목을 걸고 결국 허락을 받아내서 한밤중에 제나라의 기지를 공격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오기는 한 명의 부대원도 잃지 않고 포로와 뺏은 무기들을 가득 가지고 돌아왔다.
장군도 병사들도 믿기지 않는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제나라와 싸워서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승리의 효과는 아주 컸다.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병사들은 사기가 높아졌고 다른 병사들도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오기가 노렸던 것은 바로 이런 패배의식을 없에는 것이었다. 이후 제나라를 공격할 때마다 병사들의 참여는 계속 많아져 갔다. 여기에 오기의 명성은 노나라와 제나라 뿐만 아니라 근처 다른 나라들에게까지 퍼졌다.
얼마 후 제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노나라를 공격해 왔다. 오기 때문에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소식을 들은 노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쫄보인 노나라 목공(穆公)은 어쩔 줄을 몰랐다. 긴급회의가 열리고 이런 엄청난 사태에서 누구를 머튽으로 임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참을 논의하고 있는데 아까 빽을 대준 공의휴가 오기를 추천했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 반론이 나왔다. 오기의 아내는 제나라 사람인데 만일 그를 장군에 임명했다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오기는 자신의 야망인지 가정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지만 그는 가차없이 아내의 목을 싹둑했다. 잠시 후 회의장에 나타난 오기는 아내의 목을 보이며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모든 사람이 충격먹었지만 결국 총사령관은 오기로 결정이 났다. 자기 아내의 목숨과 대장군의 자리를 바꿔버린 것이다.
지는 법을 까먹다[편집]
제나라의 총사령관은 전화(田和)로 머리는 좋지만 아주 거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노나라와 대치한 상태에서 오기가 보이지 않자 간첩을 보내서 오기가 뭘 하는지 살펴보라고 시켰다.
쫄따구가 돌아와서는 오기가 병사들과 국을 떠먹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전화가 코웃음을 쳤다.
"장수가 존엄해야 병사들이 두려워하고 병사들이 두려워해야 힘써 싸우는 법이다. 오기의 행동이 그리 경박하다면 그 군대의 위력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전화는 그래도 의심이 남아서 장축(張丑)이라는 부하를 사신으로 가장해서 노나라 진영을 염탐하라고 보냈다. 오기는 정예병들은 숨겨놓고 특급 관심병사들만 보이게 해놓고서 매우 공손한 태도로 사신을 맞았다.
군대의 상태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 장축이 물었다.
"장군께선 아내를 죽이고 머장군이 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내가 아무리 불초하기로 그런 인간말종짓을 하겠소? 아내는 병으로 죽었소이다."
"장군은 전씨 집안과 결혼도 했는데 정전협정을 하는 건 어떠신지요?"
"나는 원래 싸움같은건 모르는 문과충이오. 어찌 처가와 싸우겠소?"
오기는 장축을 잘 먹인 뒤 우리의 입장을 잘 전해달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장축이 가자마자 오기는 정예병을 데리고 몰래 그의 뒤를 밟았다. 잠시 매복을 하고 있으니 장축의 보고를 받은 전화가 안심했는지 제나라는 아무런 방어준비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기의 명령에 따라 노나라의 공격이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제나라는 우왕좌왕 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전화가 간신히 군대를 수습하자 이번엔 양쪽에서 노나라의 기병이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기의 계략에 걸려든 제나라 군대는 손 쓸 틈도 없이 전멸하고 말았다.
전투가 끝난 들판에는 제나라 군대의 시체들만 한가득 쌓여 있었다. 약소국 노나라의 군대가 머륙최강 제나라의 군대를 격파한 것이다.
중국에선 이미 기원전 6세기에 재철이 가능했지만 전국시대까지는 청동기가 주 무장이었다. 즉 그 말은 이 시기에도 돌칼, 돌도끼 들고 싸웠다는거다.
노나라를 떠나다[편집]
오기가 제나라를 격파하고 입지가 커지자 노나라의 신하들 중에는 그를 질투하고 싫어하는 그룹이 생겼다. 이들은 대부분이 나중에 재상이 되려고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일단 눈 앞의 오기부터 처리하고 보자는 일시적인 연합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오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목공을 이용해서 한시바삐 오기의 목을 따버리기로 결정했다.
어느날 아침조회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던 목공에게 한 신하가 오기의 뒷담을 깠다.
"저는 오늘 오기 장군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혹시 주군께선 오장군의 과거사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아니오. 그 소문이 무엇이오?"
"오장군은 원래 금수저였는데 벼슬자리 하나 하겠다고 돈을 흥청망청 써서 재산이 거덜났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이를 비웃자 앙심을 품고 이웃을 수십명이나 죽이고는 우리 나라로 야반도주해서 들어왔다는 겁니다."
목공은 언짢았다. 지난 번 자기 아내의 모가지를 들고 와서 결백을 주장한 사건도 그렇고. 화목할 목(穆)자를 쓰는 목공 눈에 오기의 이미지가 더 나빠진 것이 분명하다.
"그 후에 증자의 문하로 들어가 공부하던 중에 모친상을 당하고도 고향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어머니께 재상이 되기 전까진 찾아오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증자께서 아시곤 그를 내쳤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오?"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인 것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제나라는 복수를 위해 또 쳐들어올 것이며, 노나라와 위나라는 옛날부터 친했는데 연쇄살인범을 대장군에 임명했으니 위나라와의 친분을 해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경은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소?"
"그것은 주군께서 결정하실 문제이지만, 만약 일을 하시려거든 최대한 빨리 해야 합니다."
오기가 궁궐에 있는 측근으로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과 궁궐에서 파티가 있다는 소식을 받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닥쳐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밤이 다가왔을 무렵 오기는 파티에 참석하는 척 하면서 말을 타고 성을 빠져나갔다.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위문후[편집]
오기는 위(魏)나라의 도읍인 안읍(安邑)에 다다랐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문후(文侯)가 엄청 뛰어난 군주이며 특히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위나라의 실정을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불쑥 꽤 높은 자리에 있던 적황(翟璜)이란 신하를 찾아갔다. 오기는 적황을 만나는 것이 위왕을 최대한 빨리 만나는 데에 이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적황은 똑똑하고 일을 미루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보고서 반드시 위왕에게 델고 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빠르게 입궁허가가 났다.
유교탈레반 차림을 한 오기가 적황의 뒤를 따라 대전(大殿)에 들어가자 실내는 온갖 황금 장식과 등불이 환해서 대낮같았다. 정면 계단 위로는 이쁘게 꾸며진 의자에 문후가 비스듬히 앉아 있고 좌우로 엄근진한 호위무사들이 서있었다. 오기가 인사를 마치자마자 문후가 대뜸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나를 만나려 한 것이오?"
"제가 주군을 만나고자 한 것은 부국강병의 비결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돌아가시오. 과인은 부국에는 관심이 있으나 전쟁은 별로 좋아하지 않소."
문후가 기분 나빠했지만 오기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당연히 전쟁을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전쟁을 좋아한 사람 치고 천하를 가진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불가피한 전쟁을 피하려 한다면 그것은 의롭지 못합니다. 저는 위나라에 와서 이곳 저곳을 둘러봤는데, 대장간에선 무기를 만들고 있고 화공(畵工)들은 가죽에 색을 입혀 갑옷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사시를 대비한 것이 아닙니까?"
오기는 말을 이었다.
"위나라는 국고가 충실하고 민생이 안정되어서 헬반도의 어느 나라와는 다릅니다. 또한 병사가 수십만이고 기병이 오천이나 되는 막강한 군사력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인 전력입니다. 군인이 많아도 장군이 없으면 모두 무용지물이니까요. 주군께선 전부터 이 병사들을 지휘할 장군을 찾고 계시진 않았습니까?"
오기의 말이 끝나자 문후가 의자를 탁! 치더니 허허허 웃었다.
"잘 보시었소. 도무지 그대의 눈을 속일 수가 없구려. 그 비결을 앞으로 틈틈히 내게 들려주시오."
그러고는 적황과 재상인 이극(李克)이 서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보시오 재상. 내 오늘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재를 얻게 되어 기쁘오. 오늘밤 우리 통쾌하게 술 한잔 합시다."
머리가 하얀 가스통 할배 이극은 대답 대신 가벼운 목례로 화답했다.
서하태수가 되다.[편집]
오기의 출현은 문후에게 정말 중요한 사건이었다. 30년 동안 여러 탁월한 문신들은 많이 만나 정치는 잘 했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키울 장군은 악양(樂羊)을 빼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사방이 제후국들에게 둘려쌓여 있고 특히 서쪽에 엄청 짱짱쌘 진(秦)나라가 있어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오기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이거야 말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문후는 즉시 오기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임명했다.
서하는 황하를 사이에 두고 진나라와 맞닿은 지역이다. 중원의 깡패 진(晉)나라가 3개로 쪼개지기 전 강성하던 시절 아직 서쪽 찐따였던 진(秦)나라를 줘패고 억지로 자기네 땅으로 만든 곳이라, 진(秦)나라 입장에서는 늘 벼르고 있던 땅이었으며 이곳은 지형이 험해서 위나라에겐 중요한 방어 요충지였다. 게다가 위나라 입장에서는 뒤가 황하라 자동 배수진. 그러나 지형의 이점만 믿고 안심하기엔 이곳의 전략적 가치가 너무 컸다. 서하땅 뺏기고 황하 건너면 바로 위나라 수도 안읍이라 답도 없었다. 무조건 지켜내야 할 요지중에 요지였던것이다.
희대의 명장 오기가 부임한다는 소식에 군사들과 백성들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오기가 도착하자 그 기대가 산산히 부서졌는데 얼굴은 평범하고 행색도 일반 백성과 다를 바 없는 데다가 어느 한 곳도 한 나라의 머장군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다는 일이 가끔씩 부대를 돌아보는 정도였다. 관례대로라면 새로 부임한 장군은 부대를 사열하고 파티를 열어 부하들을 격려해야 했다.
휘하의 한 장군이 참다 못해 오기를 찾아가 물었다.
"장군께선 왜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습니까? 부대사열은 왜 안 하는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부대사열은 이미 했다네. 도착하던 날 입구에 서 있던 병사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눈빛이 살아있더군. 한 명을 보면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요즘 부대의 물자를 점검하고 지형을 살피고 있다네."
이 말을 듣고 장군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날 이후 오기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날 적의 침입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성안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오기가 성루에서 적들을 보니 진나라 군대가 강의 얕은 곳에서 도하중인데 규모도 작고 속도도 느렸다. 공격할 의도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위나라 병사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오기는 장군들을 진정시키고 적이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부하들에게 알렸다.
그 말대로 진나라 군사들은 잠시 후 슥 되돌아갔다. 오기는 즉시 장군들을 따로 소집하여 크게 꾸짖었다.
"장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장수가 불안하면 병사들은 싸울 의욕을 잃고 장수가 침착하지 못하면 상황판단을 못 하기 때문이다. 제장들은 오늘 이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 명심하여 다음엔 이런 실수가 없었으면 한다."
부하의 종기를 빨다[편집]
오기는 장군이라 해서 병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병사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따로 침대를 쓰거나 하지 않았으며 병사들이 입는 옷을 입었다. 행군 중에는 말을 타지 않고 걸었고 자신도 병사들처럼 군장을 메고 걸었다.
게다가 부하들을 끔찍이 아끼기도 했다. 언제나 병사들이 먼저 먹기 시작한 후에 밥을 먹었고 잘 때도 병사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병이 난 병사가 있으면 직접 군의관을 불러주기도 했다. 전투가 끝난 후엔 부상병들을 직접 치료해 주었고 전사자가 생기면 항상 본가로 부하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이에 병사들은 오기를 엄청나게 따르고 그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한 병사가 종기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오기가 자기 입으로 고름을 빨아서 병사를 치료한 적이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친구 병사가 휴가를 가서 그의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셨다. 어리둥절한 병사가 이유를 물었다.
"장군이 직접 병사의 종기를 빨아 주셨으면 감사할 일이죠. 왜 그러시나요?"
그 애의 어머니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그 애의 아버지도 장군님의 수하에 있었는데 등창이 났을 때, 그때도 장군님이 직접 고름을 빨아 주셨단다. 그래서 장군님을 위해 열심히 싸우다 죽었는데 그 아들놈도 그랬다니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느냐?"
이 무렵 진나라는 혜공(惠公)이 죽고 후계자 문제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결국 태자인 출자(出子)를 죽이고 헌공(獻公)을 옹립했지만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다. 오기는 이 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기는 날랜 정예병[1]들로 편성된 3개의 부대를 이끌고 은밀하게 강을 건넜다. 그 지점에 1개의 부대를 숨긴 다음 나머지 부대를 데리고 강변에 있는 소량성(少梁城)을 지나 두 번째 번성(繁城)아래에 도착했다. 그곳에 다시 1개의 부대를 남긴 후에 남은 하나의 부대를 데리고 세 번째 방성(龐城)에 도착했다. 내지에 있는 성이라 그런지 방어가 허술했다. 오기는 먼저 날랜 병사 몇 명을 보내 보초를 제거하고 성문을 열게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오기의 부대는 재빠르게 성 안으로 들어가 공격지점을 정한 다음 봉화를 피웠다. 잠을 자던 진나라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 봉화를 신호로 번성과 소량성에서도 공격을 시작해서 날이 밝을 무렵엔 진나라의 세 성에는 위나라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오기의 작전으로 3개의 성이 동시에 함락된 것이다. 오기는 기세를 몰아 낙음(洛陰)과 합양(郃陽)의 두 성을 공격해서 함락시켰다. 이 소식에 진나라 정부는 발칵 뒤집혔는데 위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해서 성을 뺏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계속 탈환을 위해 노력했지만 오기가 있는 동안은 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기원전 389년에는 진나라가 10배 되는 병력으로 하서에 몰빵 어택땅을 했는데, 오기는 그것도 박살을 내버리니 이것이 후세에 음진 전투라 불리게 된다.
갈등[편집]
오기가 서하에서 14년을 맞던 해에 문후가 서거했다. 그는 50년을 다스리면서 위나라를 세우고 전국칠웅중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기 역시 도성을 바라보며 사흘 밤낮을 슬퍼했다.
문후의 뒤를 이어 무후(武侯)가 즉위했다. 무후는 똑똑하고 경험도 많아서 엘리트긴 했지만 성품이 과격하고 덕(德)이 모자랐다. 게다가 이극과 적황 등 훌륭한 신하들도 세상을 떠난 뒤였다. 따라서 무후는 폭군이 될 수도 있었다.
가을 어느날, 무후가 서하로 순행(巡幸)을 왔다. 강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무후가 흥에 겨워 중얼거렸다.
"이 험준한 지형과 아름다운 경치는 정말 일품이구려. 이것이 위나라의 보배가 아니겠소?"
그러자 따라온 왕착(王錯)이란 신하가 맞창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이 서하가 있는 한 위나라는 안전할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오기가 왕착에게 소리쳤다. 그러고 무후에게 돌아 공손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이지 산하(山河)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는 왼쪽으로 동정호(洞庭湖), 오른쪽으로 팽려호(彭蠡湖)를 가졌지만 정치를 하지 않아 우(禹)에게 멸망당했고 하(夏)의 걸왕(桀王)도 사방으로 황하(黃河)와 제수(濟水), 태산(泰山)과 화산(華山), 이궐(伊闕)[2]과 양장(羊腸)등의 지세를 가졌지만 폭정으로 탕(walter)에게 쫒겨났습니다. 또한 은(殷)의 주왕(紂王)역시 맹문산(孟門山)과 태항산(太行山), 상산(常山)과 황하를 끼고도 부덕했기 때문에 주(周)의 무왕(武王)에게 피살된 것입니다. 이런 전례를 보더라도 주군이 덕정을 펼치지 않으면 이 배에 탄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아오 한자쓰기 힘들어
이 말을 들은 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돌아가 버렸다.
재상은 저 멀리[편집]
이극이 죽은 이후로 재상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계속 비워놓을 수는 없었기에 가까운 시일 내로 뽑아야 했다. 고향을 떠나는 날 어머니께 맹세한 오기인 지라 재상에 대한 집착도 엄청났다. 또한 나라를 위해 노력한 공로나 서열로 보아도 자신이 재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기는 적극적으로 재상이 되어보려고 수도로 들어갔다. 그러나 도착하고 보니 전문(田文)이 이미 재상이 된 뒤였다. 재상은 모든 중신들과 회의해서 뽑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중신회의에서 상석(上席)인 자신도 모르게 재상이 날치기로 임명된 것이었다.
몇몇 신하들을 탐문해 보니 이 사건은 무후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오기는 화가 나서 무작정 전문의 집에 쳐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전문은 예의를 다해서 오기를 맞아주었다. 오기는 격식이고 뭐고 없이 다짜고짜 전문에게 따졌다.
"그대가 뉴 재상이라고 하는데 과연 나보다 뭐가 나은지 따져 보려고 왔소."
전문은 차분하게 말했다."앉아서 천천히 말씀하시지요. 경청하겠습니다."
"삼군을 통솔하고 죽기를 각오하며 나라에 공을 세운 면에서 내가 그대보다 못한가?"
"제가 장군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며 국고를 가득하게 한 면에선 어떤가?"
"장군이 월등하지요."
"진(秦)나라를 줘패고 한(韓)나라와 조(趙)나라를 빵셔틀로 만든 것은 어떻소?"
"그것도 장군의 공이지요."
"그렇다면 이 세가지 모두 내가 월등한데 어째서 그대가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가?"
"장군의 심정은 잘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차라리 제가 재상인 것이 낫습니다. 그 까닭은 주군이 회의를 열지 않은 데에서 찾아보십시오. 장군께선 자중하시며 훗날을 기약하시기 바랍니다."
오기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서하로 돌아갔다.
함정[편집]
전문이 죽고 후임 재상에 왕착(아까 그놈)이 임명되었다. 이번에도 중신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오기도 화내지 않았다. 무후가 자신을 경계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데다 때를 기다리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왕착은 학식적인 정치적인 능력도 없었지만 무후를 어릴 때무터 가까이 모신 것이 계기가 되어 세도를 부리고 결국 재상이 되었다.
그는 인성이 시꺼매서 자기와 친한 사람에겐 엄청 친하고 자신에게 나쁘게 대한 사람에겐 꾹꾹 가슴에 눌러두다가 결국 복수하는 찌질이중의 상찌질이였다.
오기에게는 옛날에 서하에서 모욕당한 적이 있었으므로 재상이 되자마자 오기를 족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오기가 만만한 인물도 아니고 서열1위였기 때문에 자칫하면 낭패를 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하루는 왕착이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한다는 명목으로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평소 왕착하고 별로 친하지 않은 오기는 사양했지만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결국 가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다른 대신들도 많이 와있었다.
분위기가 한창 올라왔을 무렵 갑자기 한쪽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는데 이상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후의 여동생이자 왕착의 부인이 자신 남편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깔깔거리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찼다.
얼마 후 왕착이 무후를 찾아와 말했다.
"소문을 듣자하니 요즘 오기 장군의 능력을 탐낸 제후국들이 서로 모셔가려고 온갖 조건을 다 건다고 합니다. 저는 이러다가 오기 장군이 다른 나라로 갈까 무섭습니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속내를 어떻게 아나?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텐데."
"오장군에게 공주와의 결혼을 제안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마음이 없다면 찬성할 것이고 마음에 작정이 있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까?"
며칠 후에 무후가 오기를 따로 불러 공주와의 혼인을 제안했다. 그런데 오기가 그 자리에서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이었다. (아마 수염 사건도 그렇고 집안 가정교육이 그지같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듯 하다.)
그 순간 무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했던 소문이 사실이 됐으니까. 그는 냉소를 지으며 빈정거렸다.
"그대의 집에는 이곳저곳에서 보낸 금은보화가 가득하다며? 선왕께서 베푸신 은혜를 이리 쉽게 저버리는 것이오? 썩 나가시오!"
무후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까 오기는 당황했다. 집으로 돌아온 오기는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미련이 많이 남았겠지만 그 미련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언제 개죽음 당할지 모르니까. 간단하게 짐을 싼 오기는 남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의 나이 56살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편집]
오기는 초(楚)나라의 관문에 도착해서 수문장에게 자신이 오기라는 사실을 알렸다. 수문장은 그를 아주 극진하게 대접해 주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궁에서 그를 모셔가려고 사람이 나왔다. 초나라 궁궐에 도착하자 초나라 도왕(悼王)은 문앞까지 나와 그를 맞아 주었다.
오기는 나라를 살펴본 뒤 도왕을 찾아가 진언(進言)했다.
"저는 초나라를 강대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임을 맡겨 주신다면 효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곤 막 자기 PR을 했다. 오기의 말을 들어본 도왕은 만족하며 승낙했다. 그리고 여기에 오기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의 방법이 성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대왕의 약조가 필요합니다. 누구의 반대가 있더라도 저를 믿어 주십시요."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도왕은 문무백관들 앞에서 오기를 재상인 상국(相國)에 임명했다. 30년 만에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오기는 즉각 대대적인 나라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먼저 흐트러진 기강을 잡기 위해 법을 정비하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 도둑질한 사람은 손모가지를 자르고 거짓말을 하면 혀를 자르고 뇌물을 주고받은 자는 머중 앞에서 매를 때렸다.
국고를 넉넉하게 하게 위해 필요없는 관직은 없에고 왕실의 먼 친척들에게까지 지급되는 녹봉을 국방비로 돌렸다. 또한 귀족들의 사치를 막고 이런저런 행동들을 제한했다. 사실 오기의 개혁은 일반 백성들 보다는 귀족들을 저격한 것이었다. 당연히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다.
하루는 서열이 좀 높은 한 대신이 왕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요즘 오기라는 자가 왕실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데 왕께선 어찌 이방인에게 중대사를 모두 맡기십니까?"
"상국은 우리 나라의 환부(患部)를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고 있소. 이미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소?"
그 신하는 항의하러 갔다가 왕의 신임만 확인하고 온 셈이 되었다. 오기의 개혁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군비를 늘려 군사를 기른 결과 초나라의 군사력은 중원을 넘볼 정도가 되었다. 3년째 되던 해에 오기는 마침대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진하여 진(晉)과 채(蔡)를 합병하여 삼진(三晉)을 모두 물리쳤으며 서쪽의 진(秦)에게 수십년만에 다시 참교육의 맛을 보여줬다.
그는 처음 도왕에게 약속한 부국강병을 3년만에 이룩해 보였다.
마지막 병법[편집]
오기가 성공을 거듭하고 왕의 총애가 두터워질수록 귀족들의 시기와 질투는 날로 깊어져만갔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있으면 자신들이 위축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기로 인해 죽창을 맞고 기득권에서 끌어내려진 여러 금수저들은 이를 갈았다.
저주를 받았는지 더위를 먹었는지 한여름에 갑자기 도왕이 죽었다. 안타깝게도 태자인 웅장(熊藏)은 잠깐 멀리 나가있었다. 그래서 왕의 시신을 지킬 사람은 오기밖에 없었다. 오기는 부하에게 명하여 태자에게 즉시 왕의 부고를 전하게 하고 군대에게도 재빨리 도성 안으로 들어오게 시켰다.
잠시 후 근처에서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왕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귀족들이 궁궐 안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다들 손에 창칼을 들고 오기를 도륙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둘이면 몰라도 워낙에 숫자가 많아서 오기는 일단 시신이 안치된 빈전(殯殿)으로 피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 오기 연합군이 빈전에 들이닥쳤다.
무리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오기가 저기 있다!"
오기는 칼을 뽑아들고 도왕의 시신 옆에 서 있었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진 못했다. 상대가 천하를 호령한 오기라서 그런지 무서웠던듯.
양측이 대치하고 있는데 무리 중 누군가가 활로 쏘라고 말했다.
그 순간 오기는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렸다. 이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화살이 오기에게 쏟아졌다. 그는 고슴도치가 되었고 도왕의 시신도 고슴도치가 되었다. 그렇게 오기는 파란만장한 60년의 인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기의 마지막 작전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장례가 끝나고 왕위에 오른 숙왕(肅王)은 부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역적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전부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3]
메테다시 메테...다시?
- ↑ 오기가 양성한 이 정예병들은 무졸(武卒)이라고 불렸는데, 군장메고 산악구보, 돌던지기, 활 멀리쏘기 등등으로 가려뽑아서 양성하였으며, 전역하면 연금까지 줬다고 한다.
- ↑ 낙양 남쪽에 있는 협곡인데, 나중에 여기서 백기가 한 위 연합군 24만명을 상대로 대 학살쇼를 벌인다.
- ↑ 당시 초나라 법이 '왕의 옥체에 생채기만 내도 사형'이라는 게 있었다고 하며, 이는 시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왜냐면 오자서가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정복한 다음 자기 원수였던 초나라 왕 무덤을 파서 시체에 채찍질을 해 가루로 만들었거든. 염하던 놈들 일하면서 존나 심장이 쫄깃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