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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수와 죽음 == 하지만 메리는 잉글랜드의 왕위를 줄기차게 주장한 전적이 있었고, 가톨릭 빠순이인 메리의 존재 자체가 프랑스나 에스파냐 같은 국가들에게 잉글랜드로 쳐들어올 좋은 빌미거리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의 입장에선 시한폭탄과 다를 게 없었다. 여기에 메리는 망명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수 차례 모반을 꾀했다가 적발되어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 되었고 잉글랜드의 왕위를 노린다는 게 분명해지자 엘리자베스 1세의 측근들 사이에서 메리를 처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걸 미루는 우유부단함이 있던 엘리자베스는 점차 대우를 낮추긴 했어도 18년 동안 셰필드 성으로 메리를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사형을 미루었다. 그러나 또 왕위를 찬탈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자 더는 버틸 수가 없던 엘리자베스 1세는 재판에 회부한 후 사형판결을 언도받아 집행시켰다. 어린 시절을 화려한 프랑스 궁정에서 보낸 메리는 죽는 그 날에도 패션에 신경을 썼는데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그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차림으로 사형장에 당도했고 사형대에 머리를 올린 후 목이 떨어질 때까지 주여, 당신께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고 기도문을 되내였다고 한다. 친아들인 제임스 6세가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요청을 하긴 했지만 시늉만 하고 실제로는 방관했는데, 메리가 없어야 엘리자베스 1세의 추정상속자가 자신이 되어 잉글랜드 왕위를 받을 수 있다는 정치적인 판단도 있었고 제임스 6세가 메리를 만난 건 기억도 안 나는 갓난 아기 시절이 전부였고 어머니란 작자는 한 달 밖에 안 된 자기를 내팽게치고 놀러나가는 등 어머니 노릇을 전혀 안 했고, 어머니에 적대적인 귀족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니 어미가 아비를 죽였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모자 간의 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이 완료되자 즉시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피가 튄 자국을 전부 닦아 성지순례를 예방한 뒤에 알코올로 방부처리하여 납관에 안치한 후 피터버러 성장에 매장했다. 훗날 통합 왕국의 첫 군주가 된 제임스 1세가 메리 1세의 묘를 개장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재매장했는데 엘리자베스 1세의 바로 옆자리였다. [[분류:스코틀랜드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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