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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추노]] - 농담이 아니라 조선의 리얼한 현실이었다. 임진왜란때 경복궁 방화 소실 사태도 노비 추쇄(추노관)를 관할하는 장례원에 노비들이 지른 불이 궐로 옮겨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ㄴ 노비들이 불태웠으면, 왜놈들이 리얼 [[경복궁]] 관람한 기록은? 왜놈들이 노비들 잡아와서 불 놓은 거냐? : 도성의 궁성(宮省)009) 에 불이 났다. 거가가 떠나려 할 즈음 도성 안의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內帑庫)에 들어가 보물(寶物)을 다투어 가졌는데, 이윽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亂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掌隷院)과 형조(刑曹)를 불태웠으니 이는 두 곳의 관서에 공사 노비(公私奴婢)의 문적(文籍)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하고 인하여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 경복궁(景福宮)·창덕궁(昌德宮)·창경궁(昌慶宮)의 세 궁궐이 일시에 모두 타버렸는데, 창경궁은 바로 순회 세자빈(順懷世子嬪)의 찬궁(欑宮)010) 이 있는 곳이었다. 역대의 보완(寶玩)과 문무루(文武樓)·홍문관에 간직해 둔 서적(書籍), 춘추관의 각조 실록(各朝實錄), 다른 창고에 보관된 전조(前朝)의 사초(史草), 【《고려사(高麗史)》를 수찬할 때의 초고(草稿)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모두 남김없이 타버렸고 내외 창고와 각 관서에 보관된 것도 모두 도둑을 맞아 먼저 불탔다. 임해군의 집과 병조 판서 홍여순(洪汝諄)의 집도 불에 탔는데, 이 두 집은 평상시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유도 대장(留都大將)이 몇 사람을 참(斬)하여 군중을 경계시켰으나 난민(亂民)이 떼로 일어나서 금지할 수가 없었다 :선조실록 25년 4월 14일 기사인데 선조실록이 미쳣다고 쪽본애들이 불지른걸 자기들 백성들이 질렀다고하냐? 것도 공가노비의 문적 운운하면서? 만약 니말대로면 조선왕조가 더 악랄해서 쪽본놈들이 불지른걸 노비복구할 구실쌓으려고 백성들이 공가노비 문적 불지른거라 한거네? ::ㄴ 경복궁 문서 보면 일본 측 사료하고 "왕이 피난갈 때 사관들도 같이 피난갔는데 어떻게 백성들이 불질럿는지 알 수 있냐"며 반박하던데? *[[티거]] - 어떤 전차작명가에 의해 종종 노비라고 불린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orldoftanks&no=2111029&page=1&exception_mode=recommend]]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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