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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평가== 지나가다가 첨언해본다. 스포일러가 다수 있다. 아직 안 본 사람은 거르는 게 좋겠다. 분명 《동주》보다 완성도가 떨어짐은 인정한다. 하지만 독립영화 수준의 자금력으로 만든 영화가 소재와 시대적 배경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준익 감독의 인생작이라고까지 불리는 《동주》나 세기의 명작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교되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모금해서 만든 영화가 그 정도 퀄리티가 나온다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은가. 내용 면에서 아쉬웠던 점은(본지 꽤 되어서 기억이 정화하진 않을 거다) 굿이나 무당 등의 무속 관련 소재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나왔던 점은 다들 초반에 의아했을 것이다. 나도 잠깐 상영관 잘못 찾은 듯했다. 하지만 《귀향》의 '귀'는 '귀신 귀'자다. 영제는 Spirits' Return인가 그렇다.(어퍼스트로피가 어디에 붙었나 잘 모르겠다.) 흔히 생각하는 '귀향'은 아니다. 물론 이중적인 의미겠지만 감독이 더 중점을 둔 것은 당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한 피해자들의 원혼이 조선 땅(그러니까 현재의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 사용된 장치가 마지막 굿이고, 굿을 하려면 당연히 무당이 있어야 한다. 즉, 굿과 무당은 영화의 아이덴티티이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근데 그걸 잇는 액자식 구성이 조금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앞부분을 살짝 쳐내든지... 모르겠다. 영화는 볼 줄만 안다. 또 한 인물의 심리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는 부분은 일부 동의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액자 안의 과거 시점은 그러지 못했고, 액자 겉의 현재 시점에서는 꽤 괜찮게 표현한 것 같다. 영화 본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할 동사무소 씬이나, 마지막 굿 장면이나, 곳곳에서 나오는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나. 아마 과거 시점은 실제 위안부 사건이 나오니까 인물보다는 사건 위주로 극이 진행됐으며, 현재 시점은 이미 사건이 끝나고 수십 년이 흐른 뒤니까 자연히 인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사건도 다루면서 인물의 심리까지 잘 표현하는 게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물론 그렇다고 과거 시점에서 심리 묘사가 꽝인 건 아니다. 드물게 착한 일본군 병사와 일본어로 얘기하다가 진짜 이름을 물어보자 조선어로 몰라요... 하는 장면이라든지. 뭐 아무튼 현재 시점에서 많이 나온 할머니의 심리 묘사 덕분에 할머니가 된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된 것 같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울었던 부분도 굿을 통해 언니의 영혼과 만났을 때 할머니가 같이 집에 가자며 우는 장면이고.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훌륭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통해 한 인물의 과거 시점 감정과 현재 시점의 감정을 일치시켰다. 이로 인해 현재 시점 인물에 치중된 감정이입이 과거 시점의 인물들에게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내가 글을 못쓴다. 이해하길 바란다. 할머니는 굿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다시 보는 중이었고, 할머니에게 감정을 이입한 관객들은 그 할머니가 과거 시점의 인물들에게 가지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단순히 위안부 영화라고 불쌍해서 펑펑 운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감성팔이라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 하고 싶은데, 도대체 뭘 감성팔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 견해로는 별로 슬프지도 않거나 슬플 필요가 없는 장면에서 BGM, 혹은 억지 울음 연기, 개연성 없는 장치들(예를 들면 《부산행》의 후반에서 공유가 애를 안고 있는 과거 회상과 터널 지나면서 뜬금없이 노래 부르기)을 통해 억지로 슬픔을 쥐어짜는 것이 감성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슬픈 영화지, 슬픔을 쥐어 짜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제가 그건데 뭐.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는 일본군 개새끼가 아니다. 기승전은 일본군 개새끼일지도 모르나(정확히는 발단-전개-위기-절정까지) 결은 아닌 듯하다. 이미 희생된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더 맞겠지 싶다. 물론 영화를 보고 일본군 개새끼를 안 외칠 사람은 없겠다만 관객들이 느낀 건 분노보다는 슬픔 쪽이 더 크지 않았을까. 착한 일본군 캐릭터가 등장한 걸로 보아서 일본제국군 전체를 매도하진 않았다. 물론 그 대장 새끼는 용서가 안 된다. 여기까지다. 긴 글 봐줘서 고맙다. ㄴ 위에 글 쓴 새낀데 몇 가지 더 추가하고자 한다. 일단 모금 방식으로 찍은 영화라서 비교가 가혹하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대차게 까이던 《연평해전》도 모금해서 찍은 영화다. 그리고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관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결과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어떻게 찍혔는지 전혀 모르며, 설사 수많은 고난 끝에 영화를 만들었더라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건 그냥 재미가 없는 거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런 부분에서 쉴드치는 건 아니라고 봄. 그리고 확실히 액자 밖 구성의 심리 묘사는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았느냐면 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 정도라도 그 정도 심리의 흐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액자 속 심리 묘사가 잘 되지 않은 건 이 영화 최대의 약점이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일부러 액자 구성을 취한 건 나름대로 그 당시와 지금의 두 가지 시점에서 위안부를 보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원론적으로 액자 구성 자체가 바깥은 어디까지나 액자 속 구성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즉 액자 속 내용이 튼실해야 이야기도 매끄럽게 흘러가게 된다. 이러면 그 당시보다 지금의 시점을 중요시하는 구성을 취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액자 밖 구성에 정성을 들였다고 보긴 힘들다. 뭐 이게 자금 부족이나 기타 외부 여건들 때문에라면 할 말은 없다. 나름대로 분발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받은 명성은 분명히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를 넘어섰다. 이런 점이 《귀향》에 논란의 여지가 생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분류:2016년 영화]] [[분류:영화]]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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