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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왕조와 전쟁=== 한반도 역사상 중국 왕조와 일대일 맞짱이 가능했던 나라였다. 총 4번의 맞짱이 있었으며 4개 나라 모두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강력한 나라로 분류된다. 1.'''[[신나라]]-고구려 전쟁''' 왕망이란 자가 나타나 한나라를 무너트리고 신나라라는 사이비국가를 세웠다. 이때 고구려는 아직 초기라 힘이 약하여 왕망이 오랑캐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라고하자 고분고분 군사를 보냈다 그러나 오히려 징발된 고구려군인들이 왕망의 통수를 쳐서 현도군을 습격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왕망은 이를 명분삼아 고구려를 쳤다. 결국 왕망은 고구려군에게 승리하여 승리에 심취한 나머지 고구려왕을 깎아 하구려후라고 비하하였다. 2차전쟁때는 태조 [[주몽]] 동명성왕의 개국공신 오이,마리가 2만의 군사로 신나라의 현도군을 공격하여 승리하고 몰아내었다 [[파일:위나라-고구려.jpg]] 2.'''[[위나라]]-고구려 전쟁'''(曹魏与高句丽的战争) 고구려 동천왕때 일로 우리가 아는 [[조조]] 맹덕의 [[위나라]]와 요동반도를 놓고 전쟁을 붙었다. [[공손찬]]의 후손 공손연이 죽자 요동반도가 비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위나라]]는 [[사마의]]를 요동정벌의 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선비족을 동원하였다. {{인용문|十六年 王遣將襲破遼東西安平 16년(242) 왕께서 장수를 보내시어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쳐서 깨뜨렸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동천왕 16년(242)}} 강심장 고구려답게 먼저 선빵을 때려 서안평을 점령하였다. 이에 조조는 유주 자사였던 [[관구검]]을 고구려에 보냈다. {{인용문|正始中,儉以高句驪數侵叛,督諸軍步騎萬人出玄菟,從諸道討之. 정시 중 관구검이 고구려(高句驪)가 수차례 침범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지휘해 현도(玄菟)를 나가 여러 길로 고구려를 쳤다. -《정사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당시 고구려 왕 동천왕은 전쟁 초기 관구검에게 대승을 거두며 승리에 도취해 방심하다 전사자 1만 8천명을 내고 대패해버렸다. 관구검은 쭉쭉밀고 들어가 환도성까지 털어버리는 등 의기양양하였다. 246년에 고구려는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여 위나라 추격부대를 털어버리고 마침내 방어에 성공하였다. 이 전쟁이 일어난지 불과 3년후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켜 [[위나라]]를 먹어버렸다. [[파일:살수대첩.jpg]] 3.'''[[고구려-수 전쟁|수나라-고구려 전쟁]]'''(隋与高句丽的战争) '''한국사 역사상 최대규모의 전쟁'''이면서 '''전근대 동아시아사 역사상 최대규모의 전쟁'''이다. 위의 신나라,위나라 전쟁은 고구려가 지고 이기고 엎치락 뒤치락이었으나 이 전쟁은 말그대로 고구려의 완벽한 승리였다. [[수문제]]는 분열되었던 중국을 수습하고 통일하여 역사상 유래가 없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문제 당시 수나라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으며 백성들의 삶 만족도 또한 매우 높았다. 고구려의 평원왕은 [[선조|누]][[인조|구]]와 다르게 수나라가 건국되자마자 첩보할동을하여 동태를 살피고 예의주시하였다. 또한 간첩들을 보내서 수나라의 무기기술을 훔쳐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전쟁준비를 철저히 하던 평원왕은 죽고 영양왕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수문제는 영양왕이 줄곧 자신들에 대한 조공과 책봉을 거부하는 듯한 늬앙스를 보이자 수륙군 30만명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정작 선빵을 때린 것은 역시나 고구려였다. 영양왕은 속국인 거란과 말갈의 군사들을 모아 수나라의 요서지역 조양을 공격하였다. 이에 화난 수문제가 마침내 고구려를 정벌하였다. 1차 고구려-수 전쟁이었다. 그러나 장마와 태풍등 요동 지역의 척박한 자연지리로 수나라의 군대는 전쟁을 하기도 전에 궤멸위기에 빠져 다행히 전면전 없이 전쟁은 종료되었다. 또한 영양왕은 30만대군이 직접 정벌을 오자 갑자기 쫄았는지 수양제에게 수나라의 요동지역 신하임을 인정한다며 수문제 똥꼬를 빨았다. 수문제는 이에 전쟁 의욕을 잃어버리고 군사를 물렀다. 수문제가 죽자 아들 [[수양제]]가 수나라의 황제로 즉위했다. 수양제는 만리장성을 영장하고 운하를 만들고 토욕혼,돌궐,베트남등 변방 국경지대의 세력을 정벌하고 속국으로 삼아 안정시켰다. 이렇게 수나라가 당대 초강대국으로서 위세를 떨치자 고구려 영양왕은 바짝 쫄았다고 한다. 수양제는 지속적으로 고구려에 탁군(요서)로 가겠다고 통첩을 날렸는데 이는 조만간 고구려를 조지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용문|總一百一十三萬三千八百,號二百萬,其餽運者倍之 (총 병력은) 113만 3800명이고, 200만이라 (과장해) 불렀으며, 식량 운반자는 그 배였다. -《수서》 권4, 제기, 제4, 양제하편}} 마침내 양제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초대군을 고구려 옆 요서 탁군에 총집합시켰다. 수 양제는 총 24군으로 나뉘어 진격하게 했으며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평양이었다. {{인용|좌 12군: 누방(鏤方), 장잠(長岑), 명해(溟海), 개마(蓋馬), 건안(建安), 남소(南蘇), 요동(遼東), 현도(玄菟), 부여(扶餘), 조선(朝鮮), 옥저(沃沮), 낙랑(樂浪)을 거쳐 평양으로 집결}} {{인용|우 12군: 점선(黏蟬)수군, 함자(含資)수군, 혼미(渾彌)수군, 임둔(臨屯)수군, 후성(候城), 제해(提奚), 답돈(踏頓), 숙신(肅愼), 갈석(碣石), 동이(東暆), 대방(蔕方), 양평(襄平)을 거쳐 평양으로 집결}} 이렇게 많은 군사를 데리고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결국 고구려 어느 [[을지문덕|사기캐]]의 30만명을 즉석으로 강물에 수장시키는 [[살수대첩|대활약]]과 고구려의 막강한 공성 방어능력과 야전투력으로 수나라는 국가의 근본이 흔들릴만한 손실을 입고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후에 수나라는 얼마안가 고구려전쟁의 휴유증과 내분으로 멸망해버렸다. [[파일:고구려-당.png]] 4.'''[[당나라]]-고구려 전쟁'''(唐与高句丽的战争) 영양왕이 죽은 뒤 고구려는 찐따끼가 있는 영류왕이 들어섰다. 영류왕은 영양왕때까지 거의 하지않던 중국왕조에 대한 조공과 사대등을 다시 부활시켜 [[조선|어떤 나라]]마냥 전쟁을 피하고 비굴하게 평화를 가져오고자 하였다. 이에 이를 못마땅하던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평화파를 모두 적폐로 몰고 숙청시켜버렸다. 그 결과 연개소문은 수나라에 이어 들어선 당나라에 대한 조공 사대를 모두 철폐해버리고 조까를 시전한다. 당시 [[정관의 치]]라고 불릴정도로 수문제 이후 아시아 역사상 초강대국을 완성한 [[당태종]] 이세민은 이러한 연개소문의 도발에 빡처 고구려 정벌을 준비하였으나 개국공신이자 대승상인 [[장손무기]]가 만류하면서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한편 연개소문은 여전히 조까라는 늬앙스로 백제와 손잡고 당나라에 조공 책봉하던 속국 신라를 연합공격한다. 이에 신라는 사대국인 당나라에 [[김춘추]]를 보내 당태종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고구려 정벌을 애원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에 앞서 [[위징]]은 고구려 기세가 만만치않고 깔볼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였다. 고구려는 다시 연개소문의 지휘로 당나라의 선빵을 처서 영주를 공격하는등 도발을 일삼았다. 당태종은 [[이세적]]을 요동도 행군 대총관으로 삼고 [[장손무기]]등 그야말로 중화 어벤저스를 구성하여 고구려 정벌에 친히 나서게 되었다. 알다시피 초반 당나라는 수나라가 뚫지못했던 요동의 핵심 요동성을 점령하는 등 기세등등하였으나 또 다른 [[안시성주|사기캐]]가 안시성에 나타나 7인용 입구막기마냥 우주방어로 당태종의 군대를 막아냈다. 이후 당태종은 요동지역의 척박한 기후등으로 몸에 이상이 생겨 군대를 후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태종은 얼마못가 고구려와의 전쟁중 생긴 질병으로 죽게되는데 다시는 요하를 건너지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 당고조 이치는 아버지 인조 복수한다고 북벌하겠다는 효종마냥 고구려 정벌을 결심하게 되었다. 첫 전쟁과 달리 연개소문이 죽고 연개소문 자식들이 트롤짓을 하면서 당나라가 별 힘안쓰고 고구려를 결국 멸망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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