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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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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국정책 === 역사 교과서에서는 쇄국정책이 조선을 후퇴시켰다고 적혀있지만 흥선대원군이 집권했을 때는 이미 조선과 서구 열강들의 문화, 문물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 수준으로 벌어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개항을 했다면 그냥 열강에게 따먹히고 식민지 혹은 온갖 이득을 내주는 호구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개항을 하면 외국 문물이 들어와서 조선이 발전했겠지?'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낭만적인 생각이다. 유럽 열강들이 당시 어떤 만행들을 저질렀는지 생각하면 개항을 적극적으로 했을 경우 더 나라가 개판이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럼 메이지 유신은 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메이지 유신은 정말로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다. 1860년대엔 미국과 유렵의 열강들이 국내 정황 때문에 일본에게 신경 쓰기 힘들 정도로 정말 바빴던 시기여서 일본이 별 간섭 없이 여태까지 유럽이 전해준 것들로 지들끼리 개화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일본은 해양세력이라 조선에 비해 서양과 접촉할 기회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개화에 대한 노하우도 많았고 개화를 하겠다 맘 먹은 세력들이 막부를 누르고 정국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멀리갈 거 없이 일본에는 존 만지로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임진왜란 때 한반도의 도공, 기술자, 돈 될 만한 것들을 싸그리 가져가고 그걸로 서양과 장사를 해 왔던 일본조차 흑선(쿠로후네)사건 때 개방을 하자 서양의 상공업력에 밀려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사회적인 혼란 동요가 있었고, 일본 본섬(혼슈)를 다 처먹고있었던 절대정권 막부가 망하게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아무리 꼬우면 썰어버리던 일본 무사 사회였다지만, 사회 전반의 경제적 충격과 상류층의 생활까지 지장을 받은 동요는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물론 너무 나대는게 서양 입장에서는 등신같기는 했지만 일본도 페리 제독이 "느그덜 문 안열면 후장 개통시킴ㅇㅇ"이라고 하기 전에는 자기들 영역에 들어오는 이양선을 격침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꽤나 강경했다. 즉 어느 정도 동아시아 정세를 따랐을 뿐이다. 거기에 흥선대원군이 아예 서양 문물을 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미 조선이 명이 다해가서 국가의 돈이 없었고 무엇보다 흥선대원군과 척을 진 지배층 양반/유생들이 개화를 극도로 배척하고 있었다. 이미 비변사도 치워버리고 양반한테 군포도 걷게한데다 서원까지 철거시킨 대원군 입장에선 개화를 적극적으로 시도 했다가는 정국이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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