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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적? == {{미스터리}} {{비밀}} 30년 넘게 전쟁터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패한적이 없던 불패의 맹장이었으나 단 한번 [[조사의의 난]]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패전의 치욕을 경험한다. 그것도 자신의 모든것을 전부 몰빵한 전투에서 아군 궤멸이라는 비참한 패전으로. 당시 진압군의 총 지휘관은 당연히 평양까지 올라온 [[태종]]에게 있었지만 청천강에서 진압군을 이끌고 이성계의 군대와 싸운 이는 당연히 [[태종]]이 아니다. 태종은 어디까지나 전시행정 목적으로 진압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평양까지만 올라온 것이었지 청천강에서 이성계의 군대와 싸운 진압군의 장수는 따로 있다. 문제는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수가 없단 말이지...그 이유야 당연하게 [[조선]]사관들이 의도적으로 기록을 누락시켰기 때문이고. (칼방원의 평소 행태로 볼 때 능력만 빨리고 소리소문없이 제거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여하튼 이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5만의 진압군과 1만의 반란군, 양군이 청천강에서 맞붙었고 그 결과 1만의 반란군이 완전히 궤멸되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진압군이 반란군을 포위한채 일방적으로 팼다고 보는것이 맞다. 반란군은 제대로 퇴각 조차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줘 털렸는데 이때 [[고려]]말 최강군이었던 이성계의 사병들 또한 그 명줄을 다했다. 이성계의 사병들이 씹창이 날 정도로 털렸다는 걸 보면 이성계가 반란군을 지휘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전투 현장에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병들이 몽땅 줘 털렸다는 걸 보면 이성계도 이때 진압군에게 체포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뭐 [[조선왕조실록]]의 공식적인 기록은 이성계는 난이 진압된 후 한양을 돌아온 것이지만 여하튼 아무리 진압군이 요동정벌을 목적으로 훈련된 정예병이고 그 수가 5만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이성계의 군대 또한 정예병력임은 확실했고 이성계가 쪽수에서 밀린다고 그대로 털릴 정도로 평범한 장수는 절대 아니라는 점에서 이때 이성계의 군대를 털어먹은 진압군의 장수는 이성계 입장에선 늘그막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천적이라고 봐도 무방할것이다. ㄴ물론 태종이 지 애비인 이성계의 원래 직속 병력과 신하들을 꽤나 가져간 것도 있어서 완전 천적은 아니다. 더구나 이때는 이성계한테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던 베테랑들도 늙었거나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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