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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산림통제정책은 훌륭해! === {{youtube|Q5B86TjQeuo}} 이 역사 강연 동영상에서 이영훈의 주장에는 커다란 오류를 두 가지 찾을 수 있는데, 하나는 조선은 국가에 의한 산림벌채 금지령이라는 후진적 방법을 써서 산림 파괴를 막지 못했고, 일본은 산림에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산림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주장은 [http://blog.sizen-kankyo.com/blog/wp-content/uploads/inou310.gif 이 그래프] 하나로 반박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도 광범위한 산림 파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산림면적이 거의 50%선으로 떨어진다.) 에도 막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에 의한 산림 파괴는 막을 수가 없었고, 이러한 경향은 통제력이 약화되는 말기가 될수록 더 심해졌다. 게다가 일본의 산림통제정책은 조선보다도 더 강력해서 막부, 번(지방정부)에서 지정한 산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베면 모가지 하나가 날아갈 정도였다. 오히려 조선이 금지령을 강력하게 하지 않은 탓에 조선의 삼림 파괴가 더 심각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또한 한반도와 일본의 수목의 차이가 존재하고(조선에서 주로 자라는 수종은 단단하지만 생육 기간이 긴 종이고, 일본에선 조선보다 단단함은 떨어지지만 생육 기간이 더 짧은 종이라고 한다.) 해양성 기후 성격이 강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도 있고 해서 훨씬 춥다. 이해가 안 된다면, 도코와 부산이 거의 같은 위도에 있고 서울은 바르셀로나나 아테네보다 남쪽에 있음을 생각해보라. 그 와중에 조선 후기는 그놈의 소빙하기까지 걸쳐서 어떻게든 연료를 때워서 추위를 극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근대 시절 가장 흔한 연료감은 어디 있겠는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삼림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삼림을 보존하기 위해 도끼가 아닌 조선 낫으로 삭정, 볏짚 같은 것들을 긁어모아 땔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를 대체할 석탄이 있겠지만 한반도의 석탄은 땅속 깊숙이 박혀있는 무연탄이라는 거... 당시 기술로는 채굴 및 이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일본은? 그 동네는 겨울 추위보다는 여름 더위와 습도에 더 신경 써야 할 판국이었다. 게다가 화산과 지진의 여파로 땔감없이 자동적으로 데워지는 온천이 조선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했다. 에도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 정부가 황폐화된 산림을 회복하기 위해 쓴 정책도 바로 벌채금지정책이었다.(사유림에서 나무를 베는 것도 관청의 허가가 필요했다.) 이영훈의 논리대로면 조선에서 실패한 금지령 정책을 메이지 정부도 똑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해당 강연에서는 조선 말기의 사진을 가져와서 조선의 삼림 파괴가 심각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런 식이면 일본의 민둥산 사진들도 얼마든지 웹 상에서 구할 수 있다. 물론 민둥산 천지가 되도록 방치한 조선도 잘난 게 없지만, 조선의 삼림 파괴가 조선의 특수한 후진성 때문이라는 것은 에도 막부의 예로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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