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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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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의식[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73106&cid=42621&categoryId=44436] == '"나의 고스트가 속삭이고 있어"' '"자신의 고스트를 따라라"' 주인공인 소령, 즉 쿠사나기 모토코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 하나. 공각기동대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공안 9과가 국가단위/초국가단위의 범죄를 박진감 넘치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보여줄 뿐 만 아니라, 주제의식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신체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억까지 일명 '전뇌'로 상징되는 네트워크와 테크놀러지에 지배되는 세상에서 모종의 이유로 전신 사이보그(Cyborg)가 된 주인공 '소령'(쿠사나기 모토코)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가 만들어낸 유사자아를 자신의 자아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결정이 과연 전뇌에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낸 결정인지, 자신의 인격이 수 많은 네트워크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혼합 인격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고뇌하는 존재이다. 고스트는 자기 자신이 생명으로서 갖는 고유의 의지, 자아의 총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라이즈 시리즈가 혹평을 많이 받긴 했어도.. 이런 면에서 카리스마 있는 소령의 모습 뿐만 아니라, 연약하고 때론 조종받기도 하는 소령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만 한듯.. 한편으로 공각기동대는 고도로 네트워크화되고 전뇌화된 세계에 도래하게 될 디스토피아를 경고하기도 하는데 1995년 극장판의 경우가 그렇다. 소령은 작전 수행 과정에서 인형사를 만남으로서, 인형사의 자아 및 인격과 융합해 거대한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인형사와 융합한 소령의 인격과 자아는 방대한 네트워크 속을 떠돌게 된다. 2번째 극장판 이노센스에서는 아예 작품의 주인공인 소령은 등장하지도 않고 과거 소령의 동료이자 부하였던 바토와 토구사, 이시카와만 등장하는데, 바토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때 소령은 로봇인형에 액세스하여 바토를 구한 후 다시 네트워크 속으로 사라진다. 아니, 위 평을 적은 위키러는 공각기동대 극장판을 헛봤다. 극장판의 주제의식은 고도로 발달된 네트워크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철학이 말해온 생명 혹은 존재의 정의를 새 시대에 맞게 다시 정의하며, 네트워크를 통한 존재의 진화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단적으로, 마지막 격투씬에서 전차가 기관포를 갈기는 곳이 세피로스의 나무를 새긴 벽화인데, 세피로스의 나무는 생명 진화의 양상을 도식화한 것으로 곧잘 비유된다. 총알은 뿌리에서 가지 끝으로 튀어오르게 되며, 관객의 시선도 그것을 따라 세피로스의 나무 뿌리에서 가지 끝으로 옮겨 간다. 즉, 세피로스의 나무에 총알이 갈겨짐으로서 기존에 정의된 생명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에 대한 작품의 메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피로스의 나무를 통한 생명에 대한 작품의 연출은 곧바로 존재에 대한 메세지로 이어진다. 상징적인 장면 연출 이후, 소령은 전차를 상대하며 육체의 극한을 관객에게 보인 후에 인형사를 따라서 육체를 버리고 네트워크로 향해 간다. 만약 소령이 전뇌화와 네트워크로 인해 고스트마저 해킹될 수 있는 자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뇌하는 것이 감독이 메세지로서 의도한 것이었다면, 다시 말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이상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의 위치를 찾는 것에 작품이 메달려 있었다면, 마지막에 소령은 인형사를 따라 가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인형사를 따라가는 것은 고정된 것이 없는 방대한 네트워크 안에 자신을 두는 것이며, 이는 동일성을 전제로 한 존재-근대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극장판 공각기동대의 핵심 메세지는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근대 철학이 말해온 존재를 포기하고, 네트워크로 상징되는 군중과 익명이야 말로 현대의 새로운 존재 양상이라는 메세지 말이다. 이런 접근에서 극장판을 본다면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메세지일 수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존재양상의 가능성을 여는 일종의 구원의 계시로도 볼 수 있다. "모든 액세스 가능한 DB는 나의 영혼이요, 모든 액세스 가능한 디바이스는 내 육체로다" 또한 전투용 로봇으로서 개발되어, 어린아이 수준의 AI를 지닌 '타치코마'라는 소형전차가 경험을 통해 지능을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로봇 또한 생명체일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도 주요 주제의식 중 하나이다. 타치코마는 인간 꼬마아이와 하루종일 산책을 하는 등 점점 인간과 닮은 행동을 하게 된다. 거기다가 1대의 타치코마가 경험한 것들은 네트워크 병렬화를 통해 모든 타치코마 기체에 흡수된다. 부대 리더인 소령은 처음에 타치코마의 정신적 성장에 대해서 전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타치코마가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죽을 뻔한 바토를 구하자 마음을 바꾸고 부대 일원으로서 타치코마를 인정하게 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애니메이션이 이미 앞서 던진 질문의 답을 스스로 내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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