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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국=== {{진실}} {{강대국}} {{제국}} {{제국주의}} {{나치}} [[파일:고구려 지도.jpg]] 고구려의 속국은 대부분 광개토태왕~장수왕 시기를 거쳐서 생겼다. 한반도 역사에서 유일하게 다른나라에게 책봉을 행하고 조공을 받던 지역 종주국이었다. 그래서 고구려의 국왕은 광개토태왕때부터 태왕(太王)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광개토태왕릉비,중원고구려비) [[세종]]의 경우는 일개 평범한 왕(王)이었지만 한글 창제등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세들이 대왕이라고 부르는 경우라 고구려와 큰 차이점이 있다. :ㄴ 세종은 조선시대 당대부터 세종대왕이라 불렀는데? 조선왕조실록부터 뒤져보고 와라. 또한 독자연호인 영락(永樂)을 사용하였다. 광개토태왕 임기 1년은 영락 1년이다. 좆본의 헤이세이 1년 명나라 만력 1년 같은거다. 조선은 참고로 명나라 연호썼다. 유목민족들은 대부분 고구려인 휘하에 전쟁에 동원되었고 일부 중,소형국가(북연,신라)등은 속국으로서 왕위를 계승할때도 고구려 의견을 물어야하는등 상당한 내정간섭을 받았다. 학계에서 인정받은 관점에서의 고구려의 조공국 혹은 속국들. 1.[[북연]](北燕, 407년 ~ 436년) [[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C%97%B0]] 선비족이 세운 중국 왕조 [[전연]]의 후신이던 [[후연]]의 마지막 황제 모용희가 폭군으로서 민심을 잃자 한족인 풍발이 당시 후연에 귀화했던 고구려인 출신 모용운(고운)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이름만 바꾼 중국 왕조이다. 모용운은 제1대 혜의황제에 오른후 고구려의 광개토태왕과 친화정책을 하면서 점차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다. 모용운의 측근인 이반,도인이 권력에 눈이멀어 모용운을 암살하자 한족인 풍발은 이를 진압하고 본인 스스로 문성황제자리에 올랐다. 풍발의 즉위후 고구려의 상당한 내정간섭이 있었으며 조공은 물론 황제가 바뀌면 제일 먼저 고구려에 보고해야만 했다. 풍발이 죽자 풍홍은 소성황제로 3대 황제가 되었는데 당시 북위가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연은 고구려가 북위를 압박하는 전략적 속국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내정간섭은 더 심해저서 풍홍은 435년에 사실상 '''종주국'''(宗主國)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북연이 망하면 고구려로 망명하겠다고 하였으며 실제로 망명하였다. 2.[[말갈]] 연해주와 북만주 유역에 살다가 고구려가 세워지고 고구려 밑으로 편입되었다. 고구려가 전쟁을 일으킬 때 이이제이로 쓰던 졸병들이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백신말갈의 부족장 걸사비우와 속말말갈의 부족장 대중상([[걸걸중상]])과 [[대조영]]등이 고구려를 계승하여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일본으로 조공보낼 때 "고려국왕"이라는 명칭으로 사신을 보냈다. 이들 중 흑수말갈은 발해 멸망후 팽창하여 여진족으로 [[금나라]]를 세우고 나중에는 급기야 [[청나라]]를 세우며 중국을 정복한다. 3.[[몽골|실위]] 한국사와의 연관성으로는 고구려 북쪽에 접경하여 철을 고구려에 의지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황두실위의 경우에는 고구려가 도독을 두어 통제하였다.즉 고구려에게 경제적,정치적으로 복속된 속국이었다. (李玟洙, 「高句麗 遺民 李他仁의 族源과 柵城 褥薩 授與 배경에 대한 고찰」『大丘史學』,2017) 후에 실위의 일파인 몽올실위가 카마그 몽골로 이어지고 [[사기캐|징키스칸]]이 태어나 [[몽골제국|전 세계를 정복한다.]] 4.[[거란]] 고구려의 제2중심지였던 요동지역에 살던 부족들로 이들의 부속 부족인 비려족은 [[광개토대왕|킹갓제네럴광개토태왕]]에 의해 정복당하고 조공이나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말갈족과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대외전쟁에 자주 동원되었다. 후에 거란은 [[야율아보기]]를 중심으로 [[발해]]를 멸망시키고 [[요나라]]를 건국하며 중원 패권국이 된다. 5.[[신라]] 신라왕이 백제와 가야+왜의 연합공격을 받자 [[광개토대왕|킹갓제네럴광개토태왕]]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구원을 요청하였다. [[광개토대왕|킹갓제네럴광개토태왕]]는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제,가야,왜를 격파하였다. 이를 계기로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하며 고구려는 향후 20년간 신라를 내정간섭하는 속국으로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신라의 제18대 실성 마립간은 고구려에 인질로 잡혀있었으며 고구려의 상당한 입김이 들어가 즉위한 왕이다. 신라는 이 시기 왕이 직접 고구려에 와서 조공을 바치는 등 굴욕적인 외교를 보였다. 6.[[백제]] [[광개토대왕|킹갓제네럴광개토태왕]]이 신라 구원을 명분으로 침공하여 속국으로 삼았다. 이때 백제 아신왕에게서 '영원한 노객(奴客)이 되겠다.'는 [[병자호란]]이 데쟈뷰되는 항복을 받았다. 아신왕의 동생과 백제의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았다. 장수왕때도 또 다시 백제를 침략하여 개로왕을 죽이고 수도인 위례성을 함락시켰다. 한마디로 부자가 백제 왕을 하나씩 죽이고 백제의 중심지를 다 없애버렸다. 이때 백제 국민들이 고구려의 침략이 무서워 일본으로 많이 이민갔다. 이를 유즈키노키미(弓月君, ゆづきのきみ)라고 한다. 7.[[동부여]] [[광개토대왕|킹갓제네럴광개토태왕]]이 동부여를 완전 멸망시키기 전까지 고구려의 속국으로 잔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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