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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무신정권]]? == [[무신정권]]의 번외편으로 이성계도 무신집정으로 꼽기도 한다. 사실 이성계의 권력은 수 많은 무신집정들 보다도 훨씬 강했는데 위화도 회군 이후 [[공양왕]]에게 [[선양]] 받기 직전 이성계의 권력과 동급의 권력을 가진 사람은 고려 역사 500년 가운데 단 한사람. '''바로 [[최충헌]] 뿐이다.''' 한편으로는 [[최충헌]]의 권력이 얼마나 거대하고 비정상적인지 알수 있기도 한데 [[고려]]를 멸망시키고 [[선양]]을 받아 국왕이 된 자와 권세가 동급일 정도였으니... 이성계의 권력이 이렇게 강해질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국가 시스템이 돌아가던 [[무신정권]], [[최씨정권]] 시절과는 달리 당시 [[고려]]는 그냥 껍질만 남아있을 뿐이었고 고려 정규군 또한 없던 상황에서 이성계는 본인을 중심으로 한 사병집단이 있었으며 그 사병집단의 전투력은 당시 고려군을 구성하고 있던 여러 가문들의 사병들 가운데서도 최강을 자랑했다. 또한 이성계의 사병집단은 단순히 전투력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엄청났는데 [[공민왕]] 시절 홍건적에게 개경이 털리자 개경 탈환 전투가 벌어졌고 여기서 이성계는 자신의 사병 2천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이 2천의 규모가 당연히 이성계가 가진 사병의 전부가 아니었으므로 '''최소 2천'''이라는 말인데 훗날 [[조사의의 난]]에 동원된 반란군 1만의 군세 대부분이 이성계의 사병이라는 점에서 '''최대 1만'''이라고 추정도 가능하다. 이는 [[최씨정권]]의 정점에 있던 [[최충헌]], [[최우]] 부자가 즉각 동원 가능한 병력인 도방과 [[삼별초]]의 병력을 뛰어 넘는 수준이다. 이는 [[무신정권]]까지만 해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고려군 자체가 붕괴한 탓으로 원나라 간섭기를 지나면서 고려군 유지에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고려정부가 정규군을 거의 방치해 버렸고 이 상태로 80년이 지나고 보니 남아있는 거라곤 간신히 개경을 방어할 만할 병력만 남아있던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홍건적, 왜구전쟁이 발발하자 급한 불이라도 잡자는 식으로 고려정부는 각 지방의 유력 가문들에게 이런저런 벼슬을 주며 이들이 보유하던 사병들을 동원해 이에 대응했는데 이는 한발만 삐끗해도 바로 후삼국시대의 재판이 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고려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나라가 쪼개지는 것은 막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이기니 자연히 이성계 자신의 인지도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올라갔으며 이성계 본인 또한 정치적으로 완전히 쑥맥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처인 한씨를 동북면에 놔두고 개경의 유력 가문 출신인 강씨를 부인으로 삼은 것과 당대의 거물 정치가였던 경복흥과의 친분을 유지한 걸 보면 사극에서 나오는대로 [[신진사대부]]가 시키는대로 한 정치와는 무관한 군인이 아닌 '''정치군인'''의 성향이 짙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잘 나가는 정치군인 이성계였다면 [[우왕]]이 [[이인임]] 정권을 실각시키기 위해 [[최영]]과 이성계를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를 [[최영]]과 이성계의 신군부 집권이라고 정의가 가능한데 문제는 [[최영]]의 그늘 아래 있긴 했지만 이성계 또한 전공에서는 최영보다 더 앞서는 전쟁영웅이었고 그 자신 또한 어느정도의 야심이 있는데다가 [[정도전]]을 위시한 엘리트 집단들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 판 같은 정국의 안정이 유지되고 있었다. [[최영]]이 비록 나이가 많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긴 했으나 그래도 어쨌거나 신군부의 수장이었고 이런상황에서 [[우왕]]이 [[최영]]의 딸과 혼인을 하여 두 사람이 사돈관계가 되어버리자 당연히 이성계는 차츰 소외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 [[명나라]]에서 땅 내놓으라고 지랄을 하자 바로 [[우왕]]은 풀발기 하여 요동정벌을 구상했고 그 결과가 [[위화도 회군]]... 이 [[위화도 회군]]을 통해 이성계의 [[무신정권]]이 출범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후 [[최영]]을 죽이고 [[우왕]]도 폐한데다가 이성계의 무신정권의 또다른 한축인 조민수도 나가리 시켜버리고 보너스로 [[창왕]]까지 날려버린다. [[최충헌]]못지 않게 고려국왕을 자기 맘대로 휙휙 날려댄 것인데 하지만 결국 그는 역사의 승리자인데다가 그 주변에는 [[정도전]]을 위시한, 새 왕조 개창을 바라는 [[신진사대부]]가 있었던 관계로 [[고려]] 무신집정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로 불리지. 다만 실권만 가져가고 그래도 허수아비로나마 왕으로 살려준 무신정권들과 비교하면 [[전주이씨]] [[이성계]]의 [[통수]]의 세기는 뒷통수가 더 알알하도록 셌다고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이성계의 정치적 재산이었던 이성계의 사병들은 이성계 최후의 전투이자 최초의 패전인 [[조사의의 난]]때 [[이방원]]이 이끄는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궤멸된다. 그것도 [[태종]] 편성한 진압군은 다름아닌 [[정도전]]과 자신이 요동정벌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군대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개창하는데 기반이 된 자신의 사병들이 [[이방원|국왕이 된 자신의 아들]]이 지휘한, '''자기가 만든 나라의 군대'''에게 패해 궤멸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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