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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구에 대한 불교적 접근 == 불교가 욕구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불교는 시종일관 고통에 대해서 떠든다. 고통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그것이 항상 욕구 불만dukkha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다. 불교 심리학은 어딘가 조잡스러워 보인다. 불교는 욕구 자체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집착이라는 불교에서의 제일 부정적 개념이 부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 특성상 그로 인해 '제대로 하지 못함'이 있게 되는 때문이다. 그리고 집착이란 '과거'를 대상으로 하니, 결국 집착이 가리키는 바란 '과거의 것 때문에 현재의 것을 원만히 못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집착을 궁극의 적으로 삼는 불교는 오히려 '당장 닥친 욕구에 최대한 집중하라'는 학문인 셈이다. 이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로 유명한 임제 선사의 "임제어록"에서 확실해진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특별히 공부할 곳이 없으니, 다만 평상시에 일없이 똥을 누고 소변을 보며,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것일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다. 옛사람은 '외부로 치달아서 공부하는 자들은 모두 멍청한 놈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대들이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면 자신이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될 것이다." [[석가모니]] 본인의 깨달음 이야기에서도 금욕의 고행은 인간을 깨닫게 하지 않는다고 실토하니, 욕구를 부정하면 불교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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