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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 [[파일:여운형2.jpg]] 운동광으로서, 당시 서구권의 시류였던 스포츠 숭상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조선인들도 스포츠를 통해 심신 단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0에 근접한 키와 탄탄한 근육질의 체격으로 건강식품 CF도 찍었으며, 운동 중 특히 야구를 즐겼다. 야구 경기장에서 순사들이 난입해 여러차례 붙들려가서 경기가 자주 지연되었다. 유학 시절 때 거구에 그의 카이젤 수염까지 단번에 멋있게 길러와서 그런지 주로 이분의 별명이 "터키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왔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보았을 때도 묘하게 이국적이지만 그때 당시 사진만 봐도 확실히 지금의 모습과 많이 차이가 안 난다. 그리고 수염도 줫나게 독일스러워서 중국 유학 당시에 별명이 콧수염씨였고 다른 학교까지 존재감이 알려지자 여운형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편지를 보냈는데 콧수염씨라고 이름을 적었고 동료들은 다 여운형에게 가는 편지라는 걸 알고 전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옷에 플렉스를 많이 해서 평소에도 고가의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 총독의 사위도 '내가 여자였으면 여운형과 결혼했다'라는 멘트를 쳤고 미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도 잘생겼다고 인정했다. 연설 능력도 좋아서 젊었을 적 한일 합방 직전에 연설하다가 친일파들마저 눈물을 흘렸다고 하고 잘 때도 잠꼬대로 책상을 치는 시늉을 하며 '여러분!' 하며 졸았다고 한다. 운동광 때문인지, 독립 운동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섹스|거기]]에 풀었는지는 몰라도 운동만큼 여자와 섹스를 좋아하셨는 듯하다. 본처에게서 3남 3녀를 둔걸로 모자라서 일본 여자<ref>이름이 불명인 걸로 봐서는 원나잇인 듯?</ref>와 하고서 여순구를 낳고 여대생 진옥출과의 사이에서도 애를 만들기도 했다. 1886년생 치고는 매우 개방적이고 청년들과도 소통이 잘 됐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대의 인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외향적이고 긍정적/낙관적인 성향 탓에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며 엄격 근엄 진지한 당대 정치인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건 [[김규식]]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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