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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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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려는 도중에 1929년 미국 월가 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을 직격으로 쳐맞고 독일경제는 완전 좆망하였고, 이는 결국 [[나치]]가 부상하게 되는 구실이 된다. 이유는 위에 나와있듯 도슨안에 따라 미국의 차관과 채무를 경제재건에 많이 얻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별로 경제적 연결고리가 없던 소련은 같은기간 별 피해를 안입었다고. 물론 대기근(홀로도모르)으로 우크라이나 농민 2천만명이 갈려나갔는데 머공황 탓이라기 보다는 스탈린놈의 자영농 숙청과 중공업 정책탓이다. 소련은 당시 왕따라서 독일처럼 서방사회로 부터 차관을 대량으로 도입하거나 폴란드와 무역전쟁(갑질)을 벌여대던 독일과 달리 수출 실적도 거지였다. 그리고 농업생산 공황은 이미 머공황이전에 미국에서 터지고 있었다. 농산물을 가증스런 빨갱이 소련에 수출하지 않고 땅에 파뭍고 바다에 집어던지거나 썩혀버리거나 불에 태워버렸다. 한편 사실 [[나치당]] 본진인 바이에른 사법부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은 나치에 호의적이었다. 이 덕에 맥주홀 폭동을 일으키고도 빵에서 1년도 안되서 나오게 되었다. 이 바람에 무쏠리니의 로마로의 진군을 흉내냈다 어맛 뜨거라! 하면서 크게 데인 히틀러는 폭력혁명을 포기하고 합법적인 선거전을 통해 집권한다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때 [[괴벨스]]를 얻게되었고 괴벨스의 천부적인 선전 선동능력에 힘입어, 씹망중인 독일경제탓에 넘쳐나는 실업자와 사회 불만세력들, 좌파의 득세에 겁먹은 기득권과 중산층들의 지지와 결집아래 갑툭튀 듣보잡인 히틀러와 나치는 순식간에 원내 제2정당 수준으로 부상하고 정치깡패 돌격대도 회원이 40만에 달할정도로 성장하였다. 반면 좌파들과 진퉁을 자처하는 정통 우파모두 히틀러라는 좇뉴비를 과소평가했다. *[[공산당]]은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기먹던 공산주의자들이 사민당과 우파들의 연합공격속에 극적으로 살아남아 두눈 벌겋게 뜨고 살아있었기에 나치보다 사민당을 더욱 미워했고 적의 적은 친구라고 둘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사민당 정권 까기에서는 한마음 한뜻이었으며 초창기엔 '''돌격대와 공산당이 협력하여 파업을 돕기도 했다.''' 물론 이거때문에 극우파들이 나치에 밥맛이 떨어지자 히총통께서... *한편 집권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우리 잘난 독일 국민들이 나치따위를 찍어줄리가 없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이러고 있었다. *[[가톨릭 중앙당|중앙당]]과 [[군부]]를 비롯한 비나치 우익들은 히틀러 저 ㅄ은 우리손안에 입습죠 깔깔깔 거리는 오판까지 저지르게 된다. 즉 히틀러와 나치를 자신들이 통제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정 파트너로서 집권에 이용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참고로 한웹 한정으로 후겐베르크가 히틀러의 급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건 오해다. 결정적으로 기여한건 없다. 이 소릴 들었다면 지옥에서 괴벨스가 서운해 할것이다. 후겐베르크와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극우 수꼴로 겹치는면은 많지만 서로 이용해 먹으려고 했던 경쟁자 관계였다. 문제는 히총통의 야심은 연정? 그런거 없다로 한줄 요약이 가능했고(실재로 좌파인 [[독일 공산당 (1918년)|공산당]],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물론이고 중도우파인 [[독일 중앙당|중앙당]]도 나치랑 연정은 불가능 했다) 실재로 연정문제를 놓고 몰래 협상하던 슈트라서는 나치당에서 쫓겨났다 나중에 나치한테 맞아죽었다. 이덕택에 1930년대 내내 바이마르 총선과 머선은 공화국 부정세력인 [[나치당]]과 [[독일 공산당 (1918년)|공산당]]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치달았고, 독일국민들은 은근슬쩍 재수없는 매국노들인 바이마르 공화국과 외세의 강요로 도입한 민주주의를 누가 됐던 끝장내 주기를 바랬으며 나치당도 자금과 조직력 소모에 허덕여서 더이상 선거는 안된다는의식이 팽배했고 이는 독일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저 당시 독일은 의원 내각제+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혼란이 극심한 편인데 계속되는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과 군소정당 난립으로 총선이 잦아짐+내각 구성이 파행된 것이 원인 이었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은 1930년 총선으로 이미 뇌사 상태였다. 이때 총리는 브뤼닝 이었지만 이 사람은 정상적인 의원내각제 형식으로 정치를 한게 아니다 이건 뒤에서 설명하겠다. 당시 브뤼닝은 가톨릭 중앙당이었지만, 가톨릭 중앙당은 총원 577석 중 68석 뿐이었다. 거기다 브뤼닝 본인도 전임 총리였던 사민당 출신 헤르만 뮐러[* 사실 뮐러는 해임직전 힌덴부르크한테 대통령 비상대권 시행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뮐러는 나치에 부상을 막기위해 사민당 의원들에게 브뤼닝 내각을 지지할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실각이후 1년후인 1931년 병사한다]가 대공황으로 실각하면서 힌덴부르크 권한으로 취임을 한것이었다. 뮐러가 나치를 막기위해 브뤼닝 내각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중앙당 사민당 의석으로는 과반을 넘지못했고 브뤼닝은 1932년까지 사실상 모든 법안을 대통령 비상대권으로 처리한다. 이 시점에서 의회 기능이 마비가 되었고, 독일 국민들은 의회를 무시하고 지 ㅈ 대로 행동하던 브뤼닝과 중앙당+ 나치땜에 울며겨자먹기로 지지하던 사민당은 민주주의를 구한다는 명분 마저 잃어버린다. 거기다 독일 귀족이었던 융커까지 그를 극혐 했고 버틸수 없었던 브뤼닝은 32년에 5월에 프란츠 폰파펜 한테 총리직을 넘긴다(파펜도 브뤼닝처럼 비상대권으로 임명된 총리였다) 하지만 파펜은 브뤼닝보다 심각하게 무능했고 중앙당과 동의없이 총리직을 받아서 제명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경제은 최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파펜을 지지하는 정당은 아무도 없었다. 대공황으로 노동자 임금을 깍는 법안을 통과 시키면서 나머지 우파 정당들도 표 땜에 지지를 하지 않았다. 결국 파펜은 히틀러한테 손을 내밀게 된다. 히틀러는 나치당이 파펜을 지지하는 대신 2년 임기가 남은 의회를 해산하고 재 선거 요청과 돌격대 활동 정지를 풀어 줄것을 요구 했다. 의회 해산을 그렇다 쳐도 돌격대 활동 정지는 중앙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고 사민당이 먹고 있던 프로이센 주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파펜을 이를 수락했고 때마침 프로이센 주 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이 대패하고 나치가 다수 의석을 먹는다. 당시 프로이센에서는 나치당에 돌격대 공산당 붉은전사동맹과 무력충동이 계속 일어났고, 파펜은 이를 근거로 '프로이센 주는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 며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프로이센 각료들과 사민당의원 주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자기가 주지사와 주 경찰 경찰청장 직을 겸직 한다. 히틀러와 약속했던 재선거를 치뤘지만, 1932년 7월 총선에서 나치와 공산당이 원내 절반을 넘게 먹었으며 나치가 원내1당을 차지한다. 원내1당을 먹은 히틀러는 갑자기 파펜내각 지지를 취소 해버린다. 나치당은 공산당과 합심해서 내각 불신임을 발의해서 파펜을 내쫒는다(힌덴부르크가 지켜줄려했지만 실패했다) 힌덴부르크는 슐라이허를 비상대권으로 총리직에 임명하지만, 얘도 병신이었고 결국 힌덴부르크한테 경질당하고 80순 넘긴 노인네는 히틀러를 총리로 앉히게 된다 결국 독일국민들은 그토록 미워하는 유머인 색체가 강한 공산주의 대신 히틀러를 선택하고 말았다. 아이고... 그리고 원내의 다른 정당들은 히틀러와 나치를 과소평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우선 왠 정신병자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방화했는데 이걸 공산당 짓으로 덮어씌워 공산당을 해산시켰다. 결국 히틀러는 이런저런 정치적 음모와 야합과 협상과 공갈협박 끝에 총리를 먹었고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이 시점에 사실상 바이마르 공화국은 멸망한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통령 직까지 겸직하게 되어 그 유명한 '''총'''리겸 대'''통'''령 총통이 되었다. 그리고 사민당, 중앙당, 나머지 우파 정당들 까지 모두 해산되고 나치스 1당 독재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래봤자 나치즘 특성상 지도자 원리 때매 당보단 히총통 1인 영도체제였지만. 여담으로 독일은 히틀러 사망후 다시 대통령은 되니츠제독에게, 총리는 괴벨스에게 나누어 승계되어 다시 쪼개지지만 이미 나라가 완전히 망한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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