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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진실}} {{수도}} [[파일:평양평야.jpg]] 오늘날 평양평야 수도는 초기엔 졸본이었는데 주몽이 건국 핵심세력인 졸본의 덕망을 얻기위한 임시수도였으며 이후 국내성으로 욺겼으나 기후가 척박하고 농사짓기에 알맞지않아 오늘날의 한반도의 평안도 지역 [[평양]]으로 수도를 욺겼다. 사실 평양 천도를 주도한 사람이 장수왕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장수왕은 평양 천도를 마무리를 한 것이고 평양 천도를 계획하고 시작한 사람은 광개토태왕이었다. 광개토태왕은 일찍이 평양 지역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평양을 크게 중시하였다. 393년에는 9개 절을 평양에 창건하고 399년에는 왕이 직접 평양에 행차하기도 하였다. 409년에는 나라 동쪽에 독산성 등 6개 성을 쌓고 평양의 민호를 옮겨 살게 하였으며 다시 남쪽으로 순행하였다. 또한 역대 왕릉의 정비에 힘써 수묘인(守墓人) 제도를 정비하고 실시할 것을 장수왕에게 유언하였다. 고구려가 유목과 농경을 겸한 것도 바로 평양 천도 이후일 것으로 추측된다. 평양 주변의 평양평야는 약 1,000km2 한반도 네번째 규모로 대동강이 사이에 흘러 농사짓기에도 알맞은 곳이었다. [[파일:26219 22512 2411.jpg]] 장수왕 시기 지어진 [[안학궁]]은 성벽 둘레가 2,488m에 면적이 380,000m2에 이르러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웅장하다. 마치 당나라 수도 장안의 대명궁같다. [[파일:1541173408422.jpg]] [[조선]] 왕조등이 중국왕조에 대한 모화사상과 눈치사대주의로 왕궁의 크기가 겸소해진 것과 달리 고구려의 정전인 안학궁 중궁은 조공국을 거느린 강국 답게 그 크기가 매우 웅장하다. 경복궁 근정전과 안학궁 중궁을 비교해봐도 중궁이 근정전보다 더 넓고 웅장하다. 근대 이전의 왕국들의 왕궁은 왕이 거처하는 곳으로서 규모에 따라서 그 나라의 국력이나 자주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보통 자주성이 강하거나 국력이 강할수록 왕궁의 처마길이가 길고 규모가 크며 반대로 자주성이 약한 국가들의 왕궁은 처마가 좁고 규모가 작다 안학궁은 현재 북한 수도 평양에 고대로 터가 남아있다. 위치는 대한민국 기준으로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학사리이며 [[김정일]] 위원장 집권시절에 [[장성택]]을 시켜서 고구려 건축에 대한 연구도 다 안된 상태에서 테마공원으로 예토전생을 시켰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후에 철거했다. 그래서 원래 터만 남아있던거에 옆에 또다른 황량한 터만 남아서 더 황량해졌다. 평양성의 성문이었던 보통문 칠성문 대동문등은 북한의 국보로서 원본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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