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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원소의 통치는 일장일단이 있었다. 조조가 원상을 격파하고 기주를 평정한 뒤 기주민들에게 내린 포고령에 따르면 원소의 정치는 방만해서 호족들의 발호가 심했다고 하며, 왕수전에서도 원소의 비호 아래 권세가들이 재물을 많이 축적해 심배의 재산이 억대에 달했다는 얘기가 있다. 공손찬과 싸울때 원소는 아예 날을 정해 번갈아가며 군현을 노략질했으며 상납을 거부하는 호족들은 명망이 높든 전에 고관을 지냈든 상관없이 감금, 고문하며 돈을 뜯어냈다. 한편으로는 원소가 어느정도 기반을 잡고 나선 그의 통치가 미치는 하북 4주의 지체 높은 사대부로부터 비천한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 원소를 흠모해 불평하는 목소리가 없었으며, 원소가 죽었을 때는 온 도시의 저자가 통곡과 비탄으로 마비되었으며 심지어 그의 죽음을 두고 부모상을 치르는 백성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당대의 통치자들 가운데선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원소는 독단적이고 제왕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사실 관도대전의 패배 역시도, 전투에서의 전략, 전술적 능력의 부재라기보다는 그의 제왕적, 유아독존적 태도, 부하들에 대한 잦은 숙청으로 인해 유발되던 불합리와 휘하 인물들의 충성심 저하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오소 사건을 기점으로 선을 넘으면서 한번에 터져나온 정치적인 문제가 크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원소는 충분히 이길만한 군사적 능력은 높았지만 성급하고 독단적인 성격으로 저수가 진언하는 상식선의 조치들을 무시했으며 이런 태도가 결국 패배를 불렀다. 사실 계교 전투에서도 본대와 떨어져서 앞서나가다가 다 이긴 판을 공손찬군의 역습으로 죽을 뻔한 전력이 있다. 원소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하북을 지배했지만 역으로 지나치게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자신의 사후 자신이 없어지면 세력이 쉽게 와해 될 여지가 크게도 만들었다. 당장 원소가 죽고난 뒤 후계자가 이런 카리스마를 대체하기는 어려웠고, 여기에 원소가 급사했다는 것, 원상의 나이가 어렸다는 것, 폐출된 원담이 후계에 도전하도록 아예 판을 짜 놔버렸다는 점, 원상의 후견인으로 권력을 잡은 인물이 하필이면 전략적 식견도 포용력도 전무한 심배였다는 점을 후계구도를 굳히는데 있어선 문제가 많았다. 일본사에서도 원소와 비슷한 인물이 하나있는데 바로 [[다케다 신겐]]이다. 결국은 존나 고평가 받는 동시에 존나 저평가 받는 삼국지에서도 특이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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