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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실향민== 연백, 옹진 등 일부 지역이 대한민국 관할이었고 경기 지방과 거리도 가까웠으며, 황해도 서해 연안 일대 제해권을 유엔군과 국군이 장악하여 인근 도서들을 대거 차지하였기에 함경도 같은 지역보다도 밀항 등으로 월남해 온 케이스가 잦았다. 특히 양식을 구하러 [[강화도]], 교동도와 연백 사이를 썰물을 타서 넘나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하며, 황해도 실향민 다수가 강화도, 교동도 등 인천 근해의 섬에 대거 정착하였다. 그 밖에도 [[연평도]], [[백령도]] 등 황해도에 소속된 바 있는 도서나 인천 본토, 서울 등지에 대거 집결하였다. 선박으로 피난한 인파 중에는 군산항에 내린 인원이 많았는데, 그래서 군산에는 황해도 실향민 출신 집안이 많다.<ref>[[군산시]] 성산면 산곡리에 황해도 실향민들의 공동묘지인 황해도 망향의동산도 조성되어 있다.</ref> 군산과 가까운 [[호남평야]] 일대에서도 황해도 실향민들이 집단촌을 이루고 농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김제시 용지농원에 소속된 집단촌과 완주군 이서면 정농마을 등이 그 예이다.<ref>특히 해당 집단촌은 [[송화군]], [[은율군]] 출신들이 유난히 많다.</ref> 이러니 전북 중심도시인 전주에서도 황해도 실향민 출신 집안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드물게는 어선 등을 타고 충청도 서해안 일대에 정착해 어업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며, 멀리는 진도까지도 내려와 집단촌(군내면 안농마을)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실향민들의 최종 집결지였던 부산에서도 가끔씩 볼 수 있다. 황해도 실향민 중 [[무당]] 또한 상당히 많았으며, '황해도 만신'이라고 불린다. 이들이 가지고 내려온 황해도 지역의 무가(巫家) 전통은 오늘날 한국 무속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당장 인터넷으로 점집이나 굿할 곳을 알아보면 '황해도만신', '황해도 도령' 등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흔히 우리가 알던 봉산탈춤도 모두 황해도 실향민들이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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