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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쟁 이전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건만, 임진왜란이 터지자 다른 사람인 것 마냥 희대의 좆병신으로 퇴화되신다. 시발.''' [[광해군|아들 새끼]]는 임진왜란 때는 괜찮았으나 그 이후 병신이 되었던 점을 상기하면 참 서로 안 맞는 부자다. 철썩같이 믿었던, 당대의 명장이라고 소문만 자자했던 [[신립]]이 탄금대에서 쳐발리자 그대로 아들 [[광해군]]을 급하게 세자 계급장만을 달아준 뒤 가서 백성들 원성 진압하라고 고기방패로 삼고 나서 자기는 계속 위로 도망쳤다. 진짜 명나라가 막고 신하들이 만류했으니 망정이지 이 새끼 가만 냅뒀으면 만주를 넘어서 '''북극이나 유럽까지 도망쳤을 새끼'''다. 진짜 선좆이 유럽까지 도망치게 내버려 뒀어야 했다. 그럼 유럽 사람들이 첨 보는 조선인들을 참 재미있게 볼 거다. 좆털리는 병림픽에서도 탁월한 정치감각을 발휘하여 어찌되었든 지는 정치적인 승리자로 살아남았다. 좆선이 망했든 말든 선좆이 승리한 병신인거 ㅇㅈ 합니까? 네 ㅇㅈ 합니다. ㄴ근데 솔직히 통치자로서는 국력파괴왕이었던 광해군 포함 선조 앞뒤로 나라 굴릴만한 왕이 누가 있는지 설명좀. 명종때 임진왜란 겪었으면 싸울 수나 있었을 거 같냐? 선좆의 졸렬찌질함은 천조국 후장빨개짓과 왕권보호와 인민숙청이라는 3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사실 이순신을 괴롭힌거 빼면 있는거라도 최대한 써먹은 전략 중의 하나다. ㄴ그 이순신 괴롭힌거가(거기에 플러스알파로 원균 밀어준거는) 까여도 할말 없을 업적이다. 대체 한창 전란중에 가장 잘싸우는 장수를 파직시키고 한양으로 압송해서 갈구는건 어느놈의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이냐? 백보 양보해서 임란이 끝난다음에라면 몰라도. 전란중에 이 병신같은 왕을 두고도 한몸바쳐 활약한 신하들과 아들 광해덕에 간신히 왜놈들의 북상을 막고 있었는데 자신이 찌질해 보일까봐 걱정하며 충신 숙청을 주도한 소인배 오브 소인배이다.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아들 광해도 존나 갈구고 정신적으로 압박하여 광해군이 훗날 타락하는데 일조했다. [[이순신]]이라는 희대의 명장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일본 멀티가 될 뻔한 당시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뻔한 일이였다. 그런데 이 선조가 의심병이 도져서 잘 싸우는 이순신을 가토 기요마사를 못죽였다고 모가지하고 지가 그렇게 좋아하던 [[원균]]은 칠천량에서 크게 트롤짓한 다음 패하고 전사한다. 게다가 칠천량에서 원균이 뒤지고 좆발리니까 다 자기 잘못이라며 앙망문을 썼다. 근데 이새끼가 바로 갓갓갓에게 엿을 먹여버린다. '''선조 : 배가 12척밖에 없네? 조선수군 해체하자! ''' '''이순신 : (° n °)!? ''' 하지만 갓순신느님께서 '''今臣戰船 尙有十二 금신전선 상유십이''' 라고 하면서 '임금, 개새끼야 남은거로 내가 어떻해든 해볼게 씨발' 이라고 하신후<ref>선조는 상유십이보다 미신불사에서 아마 혈압이 올라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배는 몇척 안되지만 내가 살아 있잖냐???"고 했으니...;;;;</ref> 울돌목으로 가시게 되는데.... 이후는 [[명량해전]] 참조. 인재풀은 좋았다. 선조는 그 많은 인재등용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고, 인맥의 화신 [[원균]]을 제외하면 당시 조선에서 뽑을 수 있는 인재는 적재적소에 배치한, '''세종 다음으로 인재 선발은 가장 잘한 왕으로 꼽힌다'''. 그런데 인재 뽑아서 잘 소모해먹고 잘 버린다. 잘 쓰고 잘 버린다는 점에서 보면 현대적인 관점에서 유능한 왕이다. 저시대에도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제도가 있었으면 적극적으로 도입했을 양반이다. 문제는 일을 벌려놓고 제대로 안 돌아가면 자기가 주도한 일도 남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인간이였고 또 그걸 잘해내면 열폭해서 견제하는 졸렬한 인간이었다. 부처간 떠넘기기도 혈압 올라가는 판에 최고지도자라는 양반이 책임을 지지 않고 똥은 자기가 싸지르고 아랫것들에게 책임 떠넘기고 앉아 있으니 밑의 사람들만 피를 보고 누명까지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선조의 지랄에 가장 크게 욕본 사람이 다름아닌 이순신과 아들 광해군이었다. 전쟁대비는 했지만 제대로 대비를 안해서 떡되도록 쳐발린다. 부산부터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놓으면서 일본이 와서 다들 전쟁 대비 한지 모르는데 대비는 했다. 하지만 대비하고 그렇게 쳐발린게 더 쪽팔린거 아니냐. ㄴ사실 이 문제는 좀 의견이 갈린다. 선조는 유성룡을 비롯한 조정대신들과 더불어 필사적으로 왜적에 대비했고, 그 예로 경상도에선 성곽을 쌓으며 유생들까지 동원했었다. 문제는 왜변의 수준만 생각했지 실제 난, 즉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을 못해놔서 그 정도로만 대비를 했고...결국 개쳐발렸다만;;; 나름 할라고는 했다. ㄴ솔직히 지도 좀 설마했을거다. 일본이 통일하기는 했지만 100년간 전쟁해서 아직 제대로 통합도 되지 않은 놈들이 전쟁을 일으키겠어? 적당히 왜란 정도 일으키거나 내 다음 대에서나 일어나겠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 히데요시가 지들 전력을 투입해버렸다. ㄴ애초에 선조는 전쟁 일어난다 생각하고 조선남부 재정비 시도했다. 하지만 유생들이나 백성들이나 쌍으로 지랄해서 딱히 한거 없이 끝남. 존나 웃긴게 선조 준비 못했다고 존나게 까이는데 그 준비못한 이유가 백성들의 반발때문임. 정작 그 백성들은 안까임 임진왜란 7년 중 백성들 버리고 명나라로 넘어가려고 한 거(왕이 넘어갔다면 아마 조선군은 사기가 완전히 질렸을 것이다.<ref> 선조는 미친듯이 몽진했다. 개성으로, 또 평양으로, 그후론 의주까지 가서 명나라로 가고자 했다. 당시 실록(실록, 수정실록 둘 다) 기록을 보면 선조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결국 정철과 유성룡은 '쟤 넘어가고 나면 그냥 세자를 왕시키자' 라고 의논했을 정도다. 실록 기록을 토대로 위키러로서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선조는 죽기싫어서 정말 벌벌 떨었던 것 같다. 후일 그리 벌벌떨었던 것이 너무 쪽팔리니까 당시 잘한 아들에게 열폭했던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번 읽어들 보시라. 이시기 선조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ref>), 이순신 파직하고 원균 기용한 거(진게 이상한 해전에서 해군 병력을 순식간에 말아먹음), 광해군 갈궈댄 거(광해군은 당시에 백성들을 독려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고 있었다.) 3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선조의 실책이며 이중 명나라로 넘어가려고 한거랑 이순신 파직한게 워낙 커서 영구 까임권을 얻었다. 이거 세개만 보이는 실책이라고? 그 보이는 실책이 씨발이라고 이 병신아. 중요할때 병신새끼면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병신인거야 그냥. 특히 한국 최고의 위인 중 한 명인 이순신 파직한건 영구 까임권으로 하기 매우 적절하다. 미친놈이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땅끝 남해안에서 한창 준비중이던 수군 사령관을 마음에 안든다고 서울까지 불러와서 얼차려를 시켰다. 여기에 주리 틀기 같은 고문이 가해졌다는 추측도 존재한다. 이를 적절한 견재라고 하는 새끼들도 있는데 지랄. 전쟁 끝나고 견재하는것도 아니고 전쟁 중에 정치싸움을 하는게 뭐가 적절하냐. 정치싸움은 무슨 미칭개이 지랄이다. 참고로 이순신의 노모가 이순신이 걱정되어 한양으로 올라오다가 무리해서 사망했다. 그리고 결과는 수군 좇망 ^^ 지도 조선은 수군밖에 없다면서 입 턴새끼가 잘하는 짓이다. 진짜 임란 당시 선조는 진짜 이런 병신이 따로 없다는걸 보여주는 마인드로, 다른 시기 선조는 별로 안 까는데 임란 선좆은 도저히 안 깔수가 없다. 칠천량 패전 이후 좆본군이 아주 자기네들 세상이라고 삼남을 휩쓸고 한양으로 당장이라도 쳐 들어갈 기세에 직산에서 명군이 왜군 상대로 승전을 거두었는데 왜군이 아직 사기가 등등하였다. 근데 충무공께서 하드캐리 하시어 명량에서 좆본군을 대파하자 보급과 후방 상륙 임무를 맡은 수군이 없고 왜군은 사기가 꺾여 북상을 할 수가 없었고 결국 이 패배로 일본군은 전면 퇴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뒤 다시는 북상하지 못했다.''' 명군조차 기뻐하면서 당시 명군의 사령관 중 하나였던 경리 양호가 이순신에게 은단을 주는 등 사례를 했다. 근데 이 병신이 후에 이게 배알이 꼴렸는지 얼마 후 양호를 만나면서 양호가 나라를 구했다면서 절까지 하고 지랄을 하는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솔직히 명나라 황제 만력제가 진린 말 듣고 이순신을 챙겨줘서 망정이지.. {{인용문|"흉적이 조금 물러가고 종묘 사직이 다시 돌아왔으니 이는 참으로 대인의 공덕이라 감사함을 무엇으로 말하겠습니까. 절을 하여 사례하겠습니다."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이게 무슨 말씀이오. 제가 무슨 공이 있습니까. 이러한 예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고, 상이 굳이 청해도 따르지 않았다. 상이 말하기를,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이 사소한 왜적을 잡은 것은 바로 그의 직분에 마땅한 일이며 큰 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인이 은단(銀段)으로 상주고 표창하여 가상히 여기시니 과인은 마음이 불안합니다."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이순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다 흩어진 뒤에 전선(戰船)을 수습하여 패배한 후에 큰 공을 세웠으니 매우 가상합니다. 그 때문에 약간의 은단을 베풀어서 나의 기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자, 상이 말하기를, "대인에 있어서는 그렇지만 과인에 있어서는 참으로 미안합니다." 하였다. 상이 또 말하기를, 이어 물러가기를 고하고, 서로 읍하고 나왔다.|선좆실록 30년(1597년) 10월 20일}} 아니 시발 니가 덕분에 살았다고 절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거든요? 오죽했었으면 당사자가 당황해서 사양하고 '그 사람이 큰 공을 세운거 맞아서 사례한거 뿐인데 뭐가 문제임?' 이라고 말하고 되려 이순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옹호까지 해주었는데 시발 저 사람 입장에서도 왕이라는 놈이 자국장수의 공을 깎는게 존나게 한심해 보였을게 분명하다. 시발 야밤에 조선왕조실록 검색하다가 끠꺼솟해서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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