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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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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몰랑 가브릴로 프린치프 이새끼 때문에 일어난 나비효과임! ===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도 영국과 독일 간의 1차 대전은 무조건 일어났다. 사라예보 사건은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트리거'''였을 뿐이고, 단순히 가브릴로 프린치프만 문제였다면 사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 간 전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제정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통일 이후의 독일은 프로이센 시절부터 이뤄온 산업화 역량을 통해 쉴새없이 급성장해가고 있었고 이는 영국의 입지를 항상 위협하는 요소였다. 이에 불안함을 느낀 영국은 독일을 짓밟기 위해 군비를 증강했다. 근데 독일도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로 극영(克英)을 추구한 카이저가 군비를 같이 올리고, 영국은 또 군비를 올리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며 군비경쟁이 심화됐다. 당시로써는 이렇게 군비를 올려대는 나라들끼리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게 훨씬 이상했고 결국 영국과 독일 간의 전쟁은 언젠가 반드시 터질 운명이었다. 근데 마침 사라예보 사건이 좋은 트리거로 작동했고, 독일은 민족주의를 명분으로 오스트리아 편을, 영국은 겐세이의 아이콘답게 그 반대인 세르비아 편을 들었다. 이게 바로 1차대전의 진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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