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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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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파괴 망가===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빨갱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스파르타쿠스단을 이끌고 폭동을 일으키면서 나라가 건국 초기부터 혼란스러웠다. 그나마 11월 혁명때부터 폭력혁명만은 안된다~~!! 라면서 공산당을 위시로한 극좌계와는 척을진 독일 사민당은 협상해야 되니까 나라 니꺼 하세요 라면서 던져준 독일 군부를 위시로 한 우익세력과 얼리를 맺고 극좌파 세력을 조져서 (이 와중에 로자 룩셈부르크도 우익 정치깡패들 한테 맞아죽었다) 공화국을 수립했다.<ref>[[스파르타쿠스 연맹 봉기]] 문서 참조</ref> 이로서 사민당과 공산당은 같은 좌익이지만 가뜩이나 사이가 나쁜데 넘을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고 이로서 공화국 존속기간 내내 나치와 함께 공화국 부정세력의 쌍두마차로 급 부상했다. 이 와중에 독일에 지방정부에도 공산정부가 들어섰는데 그게 바로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 이였다. 여담으로 이때 바이에른 평의회에 참가한 전역군인이 한명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돌프 히틀러 예비역 상병이었다... 그러나 위에 적었다 시피 좌익세력들은 사민당과 우익들에게 쳐맞고 버러우 하게 되었고 바이에른 은 우향우하여 공화국 최대의 수꼴지역으로 급부상한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에 이번에는 우향우 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가... 정작 당시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심장인 프로이센 주와 수도 베를린은 좌익색깔이 강했고 그바람에 헌법이 안전한 바이마르란 동네에서 기초되었다. 극좌가 베를린과 프로이센에서 쳐맞고 버러우한 이후에는 사민당 텃밭이 되었지만 나치가 집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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