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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오스트리아학파란== 그들이 수식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 된 것은, 미제스가 통화학파를 부정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사실 케인즈도 이 통화학파를 부정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케인즈가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에 강한 주장을 한 것도 단지 화폐를 왕창 발행하거나 이자율을 낮추는것 가지고는 답이 없으니까 재정정책을 통한 유효수요 증대로 경기를 부양하자고 한거고 미제스는 그게 답도 없으니 손놓고 있으라고 한것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케인즈의 동료였던 스라파나 조앤 로빈슨 같은 경우도(이들은 포스트 케인지언이라는 비주류 경제학을 창시한 이들로 장기에도 재정정책을 통한 수요관리를 해야함을 주장하고 새고전학파의 수식적인 경제분석을 반대했다.) 케인즈가 통화량을 늘리는것의 유용성을 조금은 인정을 하는것에 반대해서 하이예크에게 케인즈의 통화론을 비평해달라고 요청을 하기까지 한것이다. 현재 경제학에 기여한거라고는 케인즈를 비난하는 것뿐인데 그들의 신봉자 답게 디시위키 내의 오스트리아학파가 하는 일이라고는 곡물 카르텔이니 중상주의니 하는 글을 퍼와서는 디시위키에 떡칠을 하는것 뿐이다. 로즈버드가 케인즈의 일반 이론을 짜집기하여 비난 조로 쓴 책인데 정작 웃긴것 로즈바드가 말한대로 연방은행제도 같은것이 사라지게 되면 프리드먼의 우려대로 은행 각각의 재량적인 통화정책이 난무하게 될것인데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고 그저 미시적인 개인이, 가격형성이 어떻게 되고 거기에 정부가 개입하면 얼마나 왜곡될까에만 관심을 쏟은 까닭이다. 아니, 애초에 케인즈가 거시경제를 끌고 왓기 때문에 경제학의 의미가 왜곡된거라고 주장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 식이면 자기들도 고전학파의 경제학을 왜곡시킨 셈인데, 자기들의 철학을 변호하는데 경제학을 끌고 온것은 발전시킨것이고 케인즈에 의해서 거시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된것은 왜곡이라는것이니 자신은 선함 혹은 옳음 을 행하고 있음을 전제로 자신들이 정의한 의미만 옳음을 주장하니 전형적인 순환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케인즈는 그래서 당시 오스트리아학파들을 비판하기를 미시적인 경제 현상의 확장으로만 전체 경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논리적인 오류라고 한 일이 있다. === 반론 === 다만 이에 대해 보론 하자면 시장경제의 본질은 항상 가격에 의한 조정이다. 은행이 멋대로 통화정책을 내놓는 것이 문제라면 우리는 계획경제에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모든 공급자는 자기 자신들만의 경제계산과 그에 따라 제시하는 서로 다른 가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치킨 가격, 생수 가격을 비롯해 아파트 가격들은 천지차이다. 그런데 왜 은행의 화폐와 이자에 대한 계산만이 특별히 우대받아야 하는 가?? 시장경제의 본질은 항상 상호성이다. 절다 혼자 허우적 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나와 함께 상호작용을 할 또다른 경제주체를 요구한다. a는 반드시 b와 어울리게 되고 b는 또다시 c와 어울리게 된다. 이렇게 경제주체들은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서로 조정하기 때문에 케인즈가 말한 부분의 합 오류는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를 근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반드시 상호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책을 내놓을 이유조차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 수 있지만 정부가 간섭해야한다는 논리는 정부와 같은 폭력이 설치지 않고서는 질서를 잡을 수 없다는 권위주의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주류경제학이라 불리는 학파들도 실상을 까보면 그리고 가장 무지한점은 오스트리아 학파는 수식을 쓰지 않는 다는 점 뿐만아니라 인간행동praxeology라는 연역적 논리와 방법론적 개인주의라는 고유의 방법론이 이미 칼 멩거 이래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서 경제학이 수리경제학 일변도로 바뀌어가자 수식을 쓰지 않는 사실이 눈에 띠인 것 뿐이다. 그들이 통계와 수식을 쓰지 않는 이유는 사회현상을 분석하는데 인간의 행동논리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현재 수 많은 경제학자들은 주관주의를 부정해버린다. 그런데 주관성은 인간이 가진 고유의 속성이고 행동하는데 선행되는 필수적이 논리다. 주류경제학에 반대한다는 비주류경제학들도 따지고보면 주류경제학의 인간관을 담습하거나 아니면 이런 인간행동 논리를 부정하고 자연과학처럼 경험론에 근거해 인간을 지멋대로 주물럭 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논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속성 몇가지를 따와서 사회현상이 이렇게 돌아간다고 썰을 푸는 수준이다. 또한 하이에크 사후로 많은 오스트리아 학파는 더 새로운 경제학적 이론을 추가적으로 발견하지 않는데 왜냐면 왠만한 건 다 밝혀놨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에서 얘기하는 독과점 이론의 허구성은 [[머레이 라스바드]]가 박살 냈고 미시경제학의 기본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또 정보격차와 같은 정보 문제는 이미 [[하이에크]]가 1930년대 말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발굴했던 내용이다. 경기순환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주류경제학이 얼마나 오스트리아 학파에 비해 뒤쳐져 있는가를 반증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미시에서 거시전체를 아우르는 기본적 경제패러다임을 다 구축해놓았기 때문에 케인즈같이 뇌에 구멍이나 송송난 이론을 까대는 것 외에 할일이 없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있다면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이론을 좀 더 다듬는 것, 그리고 상품본위제 논쟁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오스트리아 학파가 그저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의 헛점은 미시경제학적 논리로부터 파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미시경제학은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관한 논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은 기껏해야 정부를 끌어들임으로서 개인들의 선택과 행동을 전체적으로 조율해준다는 얘기가 전부다 정작 개인들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해서 거시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화폐, 이자가 거시경제를 움직인다는 것은 간파했지만 이자와 화폐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할 길이 없으니 정부가 그 둘을 통제함으로서 경제 전체를 총괄한다는 수준이다. 정작 화폐가 어찌해서 어떤 한 개인의 선택과 선호와 연결지을 수 있을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시와 거시가 단절된 사회과학이 사회과학인가? 매우 나쁜 혹은 정의롭지 않는 경제학은 아닐지라도 매우 질 나쁜 경제학, 잘못된 경제학임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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