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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평소에는 밥만 먹다가 일이 생기면 나가 싸운다는 전문 무사 집단인 좌식자가 있었다. 국뽕들의 동아시아 최강국이니 로마와 비교니 이런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고구려의 군사 수준은 삼국 중에서 군사력이 가장 강했거나, 중국 왕조들과 단독으로 1:1 맞다이 깔 수 있는 정도이다.(이긴다는 소리 아님) 그리고 좆구려 군대가 국뽕들 말처럼 존나 강했으면 그 시절에 무조건 영토 확장해서 중국 대륙 정복하고 이웃 민족들에게 각종 재화와 음식, 미녀 등을 내놓으라며 설치고 다녔겠지. 까놓고 이웃의 진귀한 재화와 음식, 미녀들을 따먹으려는 개인적 야심을 가진 제왕들이 판을 치던 시대 아니냐? ㄴ영토를 확장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영토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크다면 영토를 굳이 확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장수왕때 요서 점령하고도 사람들하고 물자만 빼앗은채 철군함 ㄴ 요서는 당시에 습지, 황무지여서 가지고 있으면 관리하기 힘들었음. ㄴ근데 과거에는 그런 개념 자체를 사람들이 거의 다 선호하지 않거나 믿지 않았음.(양적 이론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질적 분석처럼 질을 강조하는 풍조도 의외로 생긴지 얼마 안 됨. 근본의 탄생은 의외로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까놓고 과거 강대국들이 스노볼 못 굴리고 죄다 망하는 게 현대 이론으로 보면 당연함.) 제국주의 시대 유럽도 현대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는 짓거리하고 있는데 고구려 사람들도 그런 개념들을 알고 있거나 확신하고 있었던 사람들 거의 없었을 걸. 고구려도 사실 위나라 관구검에게 두들겨 맞거나 말갈족까지 동원하고 일개 영주총관 위충 따위에게 막히기도 하는 등 능력이 후달린 면도 분명 있었다. ㄴ 당시 위나라는 화북 지역을 다스리는 나라였고 고구려는 아직 완전히 척박한 산골짜기 나라였는데 당연히 후달릴 만도;; ㄴ 고구려 국력이 크게 신장된 것은 요동 영유권을 확보한 광개토왕 이후이다. ㄴ 위충에게 간건 애초에 일개 말갈군 1만이지. 고구려 정예군이 간 것도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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