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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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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 {{재평가}} {{빛}} {{사이다}} === [[비변사]] 폐지 === 비변사는 중종 때 왜구가 침략한 삼포왜란 때 처음 만들어진 왜구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임시'''기구였다. 그런데 이게 을묘왜변 때 상설화 되더니 [[임진왜란]] 때는 아예 여기서 나라를 쥐락펴락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비변사가 너무 비대화되었고 세도정치 이후엔 온갖 부정부패가 판치는 사고뭉치가 된다. 결국 흥선대원군이 총대를 매고 [[비변사]]를 폐지한 후 다시 [[의정부]]와 삼군부를 두어 국방과 정치를 분리시켰다. 현대로 치면 [[하나회]]를 숙청한 급으로 대혁명이다. === [[안동김씨]] 척결 === 수십년동안 조선을 쥐락펴락하던 비선실세... 라기 보다는 왕은 그저 유교 제사장 및 바지사장이고 나라를 실제로 처먹고 운영하고 있었던 [[안동김씨]] 등 세도정치 세력들을 싹 다 조지고 왕권을 가져왔다. 세도정치 기간의 조선은 대강 무신정권의 집정자와 고려왕과 고려, 막부시기의 막부 쇼군과 제사장인 덴노(일본왕)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근데 [[민비|새로 들여온 며느리]]가 더 미친년이어서 [[여흥 민씨]]가 이후 조선을 박살내게 된다. 정확히는 흥선대원군 실각 후 민씨가 날뛰게 된 것.. === 양반들 군포 납부 === 양반들은 세금 면제 특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 후기로 다다르면 온갖 이상한 방법으로 양반들이 많아져 버려서 세금이 쪼달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 흥선대원군은 양반한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시행하였다. === 쇄국정책 === 역사 교과서에서는 쇄국정책이 조선을 후퇴시켰다고 적혀있지만 흥선대원군이 집권했을 때는 이미 조선과 서구 열강들의 문화, 문물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 수준으로 벌어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개항을 했다면 그냥 열강에게 따먹히고 식민지 혹은 온갖 이득을 내주는 호구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개항을 하면 외국 문물이 들어와서 조선이 발전했겠지?'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낭만적인 생각이다. 유럽 열강들이 당시 어떤 만행들을 저질렀는지 생각하면 개항을 적극적으로 했을 경우 더 나라가 개판이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럼 메이지 유신은 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메이지 유신은 정말로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다. 1860년대엔 미국과 유렵의 열강들이 국내 정황 때문에 일본에게 신경 쓰기 힘들 정도로 정말 바빴던 시기여서 일본이 별 간섭 없이 여태까지 유럽이 전해준 것들로 지들끼리 개화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일본은 해양세력이라 조선에 비해 서양과 접촉할 기회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개화에 대한 노하우도 많았고 개화를 하겠다 맘 먹은 세력들이 막부를 누르고 정국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멀리갈 거 없이 일본에는 존 만지로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임진왜란 때 한반도의 도공, 기술자, 돈 될 만한 것들을 싸그리 가져가고 그걸로 서양과 장사를 해 왔던 일본조차 흑선(쿠로후네)사건 때 개방을 하자 서양의 상공업력에 밀려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사회적인 혼란 동요가 있었고, 일본 본섬(혼슈)를 다 처먹고있었던 절대정권 막부가 망하게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아무리 꼬우면 썰어버리던 일본 무사 사회였다지만, 사회 전반의 경제적 충격과 상류층의 생활까지 지장을 받은 동요는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물론 너무 나대는게 서양 입장에서는 등신같기는 했지만 일본도 페리 제독이 "느그덜 문 안열면 후장 개통시킴ㅇㅇ"이라고 하기 전에는 자기들 영역에 들어오는 이양선을 격침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꽤나 강경했다. 즉 어느 정도 동아시아 정세를 따랐을 뿐이다. 거기에 흥선대원군이 아예 서양 문물을 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미 조선이 명이 다해가서 국가의 돈이 없었고 무엇보다 흥선대원군과 척을 진 지배층 양반/유생들이 개화를 극도로 배척하고 있었다. 이미 비변사도 치워버리고 양반한테 군포도 걷게한데다 서원까지 철거시킨 대원군 입장에선 개화를 적극적으로 시도 했다가는 정국이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 [[서원]] 철폐 === {{참교육}} {{인용문|백성을 괴롭히는 자라면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 서원은 옛 유교의 성현들을 모시고 양반 자제들을 가르치는 학원인데 이 서원은 면세혜택부터 시작해서 온갖 패악질을 벌이고 있었다. 즉 [[유교탈레반]]들이 합법적으로 백성들 돈 뜯어가기 위해 만든 카르텔이었던 것. 흥선대원군은 소수의 서원만 남기고 나머지 서원을 싹 다 갈아엎어버리고 유교탈레반들에게 참교육을 시켜줬다. 사실 이것만해도 흥선대원군은 ㅆㅅㅌㅊ 개혁가가 맞다. 지금으로치면 세금만 축내는 쓸모없는 공무원들 싹 다 짤라버리고 고위공직자들 연봉 박살낸 수준의 개혁이었다. === 을미사변(?) === [[을미사변]]의 실제 흑막이 흥선대원군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안중근 의사, 한인애국단과 함께 한국 역사 최고의 영웅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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