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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간이 지날수록 게르만 계통 부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의 프랑크 왕국(이 '프랑크'는 프랑스 식으로 알파벳을 변형해서 읽는 습관에 원조가 되듯 '프랑스'의 어원이 된다.) 이 갈리아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고,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제국에 승리, 피레네 산맥 이북으로의 이슬람 세력의 진출을 차단하면서 카롤루스 왕조가 열렸다. 카롤루스 대제<ref>풀 네임은 카를로스 마그누스. 유럽 왕족에 카를~칼~샤를~하는게 다 이 인물의 이름에서 가져온거다. 한국어 사투리처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선생님'을 호남에서'선상님' 혹은 전라남도 서남부로 갈 수록 '슨상님'으로 변형되 읽거나 '야' 혹은 '아'를 경상도에서 '마'하며 사투리로 변형되는 것과 비슷한 이지다. 카를로스 마그누스를 기니까 프랑스식으로 또 줄여읽어서 프랑스어로는 샤를마뉴.</ref> 재위기간 동안에는 서로마제국의 왕관을 받고 자기 따까리 교황이 시점에는 이슬람 레이드에 오줌지리던 상태였고 교황의 힘이 중세처럼 강하지 않았다.)의 '[[최고존엄|신의 은총을 받은 절대적인 지도자]]'후빨 속에 서로마의 후신인 신성로마제국을 열었으며 소위 '카롤루스 르네상스'라 불리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샤를마뉴는 중-서유럽사에서 매우 중요하며, 이 인물이 통일하지 않았으면 이탈리아 에스파냐 상륙하던 이슬람에 의해 각개격파 당하고 프랑스도 진작 모스크에서 알라후 악바르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프랑스 문화의 상속제도에서 같은 로망스 문화권의 이탈리아 도시국가식 문화가 아니라 게르만의 '살리카법'이 왕-귀족의 상속에서 엄격하게 적용되던 것도 이 때문이며, 이후의 유럽 왕조들은 모계건 부계건 카를대제와의 혈연을 가문의 위엄이나 통치 정통성 상 현 프랑스지역 왕조건 현 독일지역 왕조건 상관없이 엄청나게 강조해댔기 때문에 언어는 차츰 섞여가며 현대 프랑스어로 형성되지만 프랑스의 (어디나 구분은 있지만 그 정도가 어쩌면 골족이나 이탈리아 로망스 문화권이라기엔 너무 게르만문화권 스러운) 일반대중과 귀족간의 엄격한 구분과 생활양식 문화차이등의 요소의 원인으로 남게된다. 카를로스 대제의 영토는 오늘날의 프랑스, 북이탈리아, 독일 서부와 중부, 판노니아지방을 영토로 삼았다. 하지만 814년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후 '''위대한 인물의 후계자들은 열의 아홉이 병신'''이라는 역사의 법칙을 따라 프랑크 왕국은 후계자들의 실정으로 세개로 분열된다. 그리고 그 중 서프랑크 왕국이 프랑스가 됨. 중프랑크(이탈리아 지방 포함)와 동프랑크왕국은 다시 합쳐져서 신성로마제국이 됨. 987년 카페왕조가 열리면서 독자적인 '프랑스 왕국' 의 길을 가게 되지만 프랑스는 수많은 지방영주들의 힘이 강력했고 왕의 권한은 전혀 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동안 왕은 지방영주들을 하나하나 제압해가며 왕권을 확립하며 성장하였고 존엄왕 필리프 2세 재위기간 동안 영국 왕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카페왕조를 이은 발루아 왕조시기 영국과의 백년전쟁을 치루며 국가 존망의 위기까지 몰리지만 샤를 5세, 샤를 7세와 '''[[잔 다르크]]'''라는 정신이 좀 이상해보이는 기독교 신자<ref>자기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해서, 신자가 아닌 이상에야 현대인들이 보면 '??????????????'가 나오긴 하는데, 아무튼 졸라 잘싸운건 사실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이 점을 두고 잔 다르크를 존나 깠다.</ref> 의 활약으로 백년전쟁(1337-1453)을 승리로 이끌며 프랑스 안의 영국 세력을 바다 건너로 강퇴시켰다. 그리고 사실 (그 유명한)[[사자왕 리차드]]의 동생이자 프랑스의 숨겨진 국부인 '[[존 왕]]'의 헌신적인 병신짓 공헌 덕에 현 프랑스 지역(당시로는 북부만 프랑스 왕 권역이고 남부는 아키텐 왕국령)내 영토만 해도 프랑스 왕과 휘하제후들보다 컸던 영국이 병신왕 덕에 땅을 죄다 털리고 당시엔 프랑스 왕의 권역과는 상관없던 조그만 칼레지역을 빼면 그 넓은 보르도 포도밭과 노르망디 등 영토를 털리고 섬나라로 쪼그라 들었으며 그 털린 영토는 왕권이 약해빠졌던 프랑스왕의 직할령으로 편입되 이후 프랑스가 강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고 중앙행정과 사치스러운 귀족문화가 발달하며 서유럽 프랑스지역의 평지와 농업지등을 다 확보한 덕에 인구강국이 되며 각 전투에서 병신같은 전략을 펼치는 상황이 나오더라도 인구빨로 밀어붙이고 루이14세땐 '짐이 곧 국가다'라는 이전같으면 개소리같을 소리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등 중앙집권과 왕권증대와 국력신장의 큰 기틀을 마련해 주게 된다. 고로 존왕=사실상 프랑스의 아버지. 프랑스 성장의 기틀이자 시작. 그리고 영국 입장에선 둘도없는 암군 취급. 프랑스사 하면 보통 프랑스 대혁명이나,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많이 떠올리는데 사실 프랑스사는 중세가 또 꿀잼이니 참고해도 좋다. 중세사 최대의 사건이라는 십자군 전쟁은 80%가 프랑스계 제후들이 캐리했으며(십자군 국가 주요인사들 이름이 다 프랑스어로 표기되는 게 이때문이다)평지에 예전부터 농지로 개발이 잘 되었던 덕에 인구가 많았다. 반면 인구강국으로 근현대에 생각되는 독일은 중부 지방은 개발도가 높았지만 동부는 튜턴기사단이 활동했던 것 처럼 기독교 전파의 전장같은 기지였으며 영토 면적에 비해 산지나 매우 우거진 숲 등 험지가 많았고. (과거 로마제국 시절에도 이 때문에 게르만 정복에 로마가 애먹은 것) 개발도나 농업증대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건 중근세에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부터 영토확장과 험지개발 등 국력증대를 하드캐리로 이끌던 시점 이후부터다. 고딕 성당, 기사도 같은 것들도 프랑스에서 창안돼 퍼진 것들이다. 유럽사라는게 구분이 명확했던 한중일과 달리 상대적으로 섞어서 이야기를 해야 이해하기에 좋기에 언급함. 개독역사상 최강의 명대사인 (이단 토벌 당시 이단과 일반 기독교인을 어떻게 구분하냐는 질문에) '''모두 죽여라! 신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알아보신다!'''가 프랑스에서 나왔다.(알비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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