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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복지역 === ==== 군내면 ==== '''郡內面''' 면적 43.23㎢. 면소재지는 읍내리. 읍내(邑內), 점원(點元), 방목(芳木), 정자(亭子), 백련(白蓮), 송산(松山), 조산(造山)의 7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진림성현(津臨城縣), 혹은 오아홀(烏阿忽)이라 불렸는데 신라때 임진현(臨津縣)으로 개편, [[개풍군]] 개성리에 있었던 개성군(開城郡)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인 1018년 장단현에 예속되어 상서도성의 소관으로 했다가 1063년 개성부의 속현이 되었다. 1389년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고 1414년 장단현과 합쳐져 임단현(臨湍縣)이 되었다. 하지만 세종시기인 1418년 임진현으로 재분리되었다가 1458년 임진현에 다시 통폐합되었다. 1621년 도원역에 있던 장단도호부의 치소를 옮기면서 장단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1930년 진현내면과 진북면이 스까되면서 만들어졌다. 면남부에 [[임진강]]이 서부에 사천이 흐르며 북쪽에는 백학산(白鶴山, 229m) 등의 산지가 있다. 사천과 임진강때문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졌지만 38선때문에 전지역이 전선으로 변하면서 황폐화되었다. 38선이남이라서 초창기부터 전역이 대한민국에 속했는데 [[6.25 전쟁]]때 조산리 서부 끝자락 지역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지역을 수복했다. 1972년 민간인 거주 및 활동이 허가되었다. ==== 장남면 ==== '''長南面''' 면적 56.17㎢, 면소재지는 고랑포리. 고랑포(高浪浦), 원당(元堂), 반정(伴程), 판부(板浮), 자작(自作)의 5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야야(耶耶), 야아(夜牙)라고도 불리는 장천성현(長淺城縣)이 있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이후 694년 파괴된 고구려의 [[금천군#우봉면|우잠성]]의 속현으로 두었다. [[경덕왕]]때 장단현(長湍縣)으로 개명되었다. 1001년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의 고향이라고 단주(湍州)로 승격되었으나 1018년 장단현으로 격하되었고 현령이 파견되어 상서도성의 소관이 되었다가 1062년 개성부에 소속되었다. 1414년 임강현에 통폐합되어 장림현(長臨縣)이 되었다가 후에 임진현, 임강현과 함께 장단군이 되었다. 1930년 고남면, 장현내면, 장서면 관송리 + 반정리가 장남면으로 스까되었다. 임진강의 지류인 사미천이 면경계를 따라 동남류하다가 임진강으로 들어간다. 고랑포가 한반도의 남부,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고 사미천과 임진강으로 생긴 비옥한 평야때문에 잘나갔다. 하지만 38선이 그어지면서 자작리와 판부리, 고랑포리 대부분이 북괴로 넘어갔다가 6.25때 국군이 전지역을 수복하면서 황폐화되었다. 1963년 전지역에 민간인 거주 및 활동이 허가되었다. 군내중 유일하게 연천군으로 관할이 넘어갔다. 원당리에 호로고루성, 고랑포리에 경순왕릉, 그리고 임진강변의 절벽인 장단석벽등이 있다. ==== 장단면 ==== '''長湍面''' 면적 33.96㎢, 면소재지는 도라산리. 도라산(都羅山), 동장(東場), 노상(蘆上), 노하(蘆下), 서장(西場), 정동(井洞), 덕산(德山), 거곡(巨谷), 석관(石串), 강정(江井)의 10개리를 관할했다. 1930년 장단군 상도면과 하도면을 스까서 만든 면이다. 임진강의 하구지역으로 면의 동남부를 흐르다 한강과 합류, 황해로 들어간다. 38선이남이라 전지역이 대한민국에 속해 잘 나갔으나 6.25 전쟁때 안타깝게도 덕산리, 정동리, 서장리일대를 털렸다. 거주인구 없음. ==== 진동면 ==== '''津東面''' 현재 대한민국의 수복지역 면적은 43.16㎢. 면 소재지는 하포리. 하포(下浦), 동파(東波), 서곡(瑞谷), 초(哨), 용산(龍山) 1930년 당서면의 초리와 용산리를 편입했다. 남쪽에 일월봉(日月峰, 191m)등의 산지가 솟아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모든 지역이 100m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그래서 밭이 주류였다. 1930년 당시 기준으로 구릉성은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주로 묘지로 쓰고 있었다. 임진강이 면 동남부를 군내면으로 유입된다. 하천연안을 끼고 있는 항구와 38선이남에 있어 크게 문제가 없었으나 6.25때 서곡리의 극히 일부지역을 털렸다. 휴전 이후 전지역이 군사작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진동면 서쪽 끝에 있는 하포리만 유일하게 민간인 출입을 허용하지만 거주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하포리에 출입하는 주민들의 마을은 하포리 서쪽의 군내면 방목리에 있다. 묘지가 많은 지역이라 하포리에 서천부원군 정곤수의 묘가 있었다. 거주인구 없음. ==== 진서면 ==== '''津西面''' 현재 대한민국이 수복한 지역 면적은 9.16㎢. 면 소재지는 눌목리. 눌목(訥木), 분지(芬芝), 금릉(金陵), 어룡(魚龍), 경릉(景陵), 전제(田齊), 선적(仙跡), 대원(大院)의 8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지섬(之蟾)이라고도 불렸던 약지두치현(若只頭恥縣)이었다. 신라때 여웅현(如熊縣)으로 개명되어 [[개성시|송악군]]의 속현이 되었다. 1018년 상서도성에 속했다가 1063년 개성부의 속현이 되엇다가 1418년 임강현에 통폐합되었다. 1914년 등장한 송남면, 송서면이 진서면으로 통폐합되었다. 해방이후 38선이남의 눌목, 금릉, 대원, 전제, 선적, 분지, 어룡리지역이 대한민국에 속했지만 6.25때 금릉리의 극히일부와 백학산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북괴치하로 넘어갔다. 동쪽은 반룡산, 남쪽은 군내면과의 경계에 백학산, 북쪽은 화장산등의 산지가 있고 그 여맥따라 100m이하의 구릉성산지가 면을 뒤덮고 있다. 사천이 면의 서남부를 남류하다 군내면으로 유입된다. 경릉리에 경릉, 불일사지, 눌목리영릉 + 고분, 대원리에 화장사 7층석탑, 대원사지, 천화사지, 산성지, 전제리에 75기고분, 고려 문하시중 염제신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 화장사는 [[공민왕]]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었지만 [[6.25 전쟁]]때 화장사가 불타버렸다.... 거주인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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