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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사로국을 건국했다고 한다. 근데 실제로는 아무리 빨라도 기원후 2세기 후반을 사로국이 건립된 시기로 본다. 고고학 편년과도 모순되고 삼국사기 내에서도 기록의 모순점이 있기 때문.<ref>대표적 사례를 몇가지 들어서 설명하자면 파사 이사금 22년인 기원후 101년에 월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 고고학적 조사 결과 월성의 초축시점은 3세기 이전으로 못 올라가고, 석우로가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후 249년(신라본기 첨해 이사금 본기) 혹은 기원후 253년(석우로열전)에 죽었는데, 그 아들인 흘해는 61년 뒤(혹은 57년 뒤)인 기원후 310년에 왕위에 오른다. 석우로가 죽었을 때 흘해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였으니 아무리 젊어도 58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건데, 정작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흘해 즉위 전에 신하들이 흘해에 대해서 '''흘해는 나이가 어리지만 나이든 사람의 덕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50대 후반의 중년을 보고 어리다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체로 삼국사기 신라 초기기록의 연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건 신라 뿐 아니라 백제도 마찬가지다.</ref> 4대 임금인 [[탈해 이사금]] 시기부터 11대 [[조분 이사금]] 시기까지 거칠산국<ref>지금의 부산광역시.</ref> 과 우시산국<ref>지금의 울산광역시.</ref>, 골벌국<ref>지금의 영천시.</ref> 등 진한의 여러 국가들을 병합하여 영토국가로 발전했다. 박혁거세의 장남 [[천일창]]이 기원전 27년에 일본 혼슈로 건너 감. 사실 이때만해도 신라는 철기문화가 제대로 보급도 안되고 사실상 청동기시대나 다름없는 좆밥국가였다. 진한이랑 비교는 개뿔 가야한테도 상대조차 안되는 좆밥국가였다. 그 증거로 [[석탈해]]가 신라에 가기전에 먼저 가야에 상륙했었는데 [[김수로]]랑 일기토 찍다가 쳐발리고 쫒겨났는데 그 길로 만만한 신라로 가서 왕좌를 뺏었다. 현재 학계에서는 석탈해가 발달된 철기문화로 신라의 핵심 부족이 되었다는걸 인정하는데 당시 김수로의 가야 수준은 안되었다는게 정설 ㅇㅇ 이후 [[김알지]]로 대표되는 [[스키타이]]종족까지 합세하면서 신라는 그제서야 발달된 철기문화들을 흡수하고 나라같은 나라가 되어갔다. 박석김 셋이서 돌아가며 왕위를 잇다가 내물 마립간이 배신하고 박·석을 왕위에서 밀어낸다. 그래도 박씨는 왕비도 배출하고 막판가서 다시 한번 왕위를 차지하는 등, 귀족으로 남아있었다. 근데 석씨는 좆망해서 그딴 거 없다. 이차돈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신공을 보여주고 불교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불심으로 대동단결 한 후에 덕만이 선덕여왕이 된다. ㄴ여담이지만 이전까지 삼국사기서 비중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화랑세기라는 소설책에만 나오는 미실궁주였지만 [[MBC]]에서 창사48주년 기념으로 다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갓현정이 열연한 덕분에 비중이 대폭 상승.. 부여 한민족 계열인 백제, 고구려가 싫어서 당나라 군대와 매국적으로 결탁하고 대동강 이북을 당나라에게 전부 내주기로 한다고 [[국뽕]]들이 난리치지만 당시에 과연 한민족이란 개념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말이 아예 다른 쪽국이나 짱꼴국 보다는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지들끼리 으쌰으쌰하는 경우가 많았지. 물론 그때그때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만주~한반도 북부서 놀던 예맥계열과 한반도 중부 남부에서 놀던 한계열이 서로 같은 언어를 썼다는 보장도 없다. 그나마 남은 언어자료를 보면 고구려 신라랑 수사가 전혀 다른데 이새끼들이 서로 같은 족속이라 여겼을까 의문. ㄴ개소리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언어 통했다는 기록은 충분히 있고 애초에 한계열도 고구려, 백제보다 먼저 내려온 예맥계열이었음 현대 한국어 연구가 진행될수록 고구려어가 남긴 영향도 비중 커짐 백제, 고구려를 없앤 뒤 김춘추의 아들은 경주를 노리는 당나라를 줘 패서 대동강 위로 올려 보냈다. 혜공왕 이전까지는 나름 괜찮다가 혜공왕이 살해되고 막장 테크를 달렸고, 수많은 왕이 갈려나가다가 견훤과 궁예가 일어나서 신라를 갈라 먹고 궁예의 신하인 왕건이 왕이 되어 신라를 먹었다. 특히 [[환빠]]들이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애신각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자신들의 뿌리를 신라에 뒀기 때문에 신라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여느 환빠적 주장이 다 그렇듯 여기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인간이 있으면 추가하라. ㄴ 애신각라가 여진어로 '아이신기오로'다. 만주어를 한자로 번역할 때 '애신각라'라고 번역한거다. 이걸 가지고 신라를 애끼고 기억하라라고 망상한게 다다. 애초에 신라 애끼는데 조선을 두번이나 후드려패겠니? 그리고 여진성씨들 이런거 엄청많다. 이르건기오로, 수수기오로 등... 기오로가 겨레라는 뜻이다. 차라리 신라인 김함보가 여진 들어갔다는게 더 들을만하다. 애신각라좀 그만해라ㅠㅠ 또 신라는 아끼는데 왜 조선은 두드려팼는지 논리적 사고부탁 ㄴ 이게 왜 이해가 안되지? 니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는데 그 후손이 너한테 막 깝죽거리고 지랄하면 존경하는 이순신장군 생각해서 참아야되냐? 신라 아끼는거랑 조선패는걸 연관시키는 놈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게다가 니 말대로 성이 그렇게 내려오는거지 걔들이 진심으로 신라를 애꼈겠냐 김씨면 집에 금이 많으시겠죠? ㄴㄴ 청 초대시조는 《청실록》에 다 써놓았듯이 조선을 조상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칸의 연합정부마저 중국식 황제통치로 바꾼 2대 닭까끼 홍타이지가 정묘, 병자호란으로 조선 뚝배기를 곤죽이 되도록 깨부수고 조선 왕을 무릎 앞에 꿇린다^^ ㄴ 음차로 애신각라 말고 '애신각락(愛新覺落)'이라고도 표기했다. 어차피 진짜로 신라를 사랑한다고 쓴 거라고 해도 반갑지도 않다. 짱꼴라들은 그럼 신라도 자기들 역사라고 우길 듯하다. 그리고 화백회의라는 만장일치를 해야만 끝나는 회의가 있었는데, 이는 약 천 년 뒤 [[통일주체국민회의|제4 공화국]]과 [[나무위키|똥나무]]에서 부활한다. 사실 삼국 중 제일 이질적이다. 부여-고구려-백제는 지들끼리 연결 고리가 강하다. 사서나 야사 등에 부여에서 고구려 나오고 고구려에서 백제가 나오며 지들끼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라는 그딴 거 없다. 신라는 유일하게 부여가 아니라 고조선에서 나왔다고 삼국사기에 적혀 있고-정확히는 신라6촌의 주민들이 고조선 유민이라고 적혀있다-, 고고학적으로도 이 둘의 연관성이 유물로써 증명된다. 나중에는 아예 금석문에다 흉노족이 지들 조상이라고 뻥을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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