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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책때부터 봉직 == [[파일:장흠.jpg|300픽셀]] [[장흠]] 자 공혁. 손책이 원술에게 의지할 때부터 손책의 측근이 되었다. 손책이 강동으로 진출하자 병사가 주어졌고 손책이 3군과 예장을 정벌할 때 종군했다. 대부분의 기록이 도적 토벌에 대한 것으로 이로 인해 꾸준히 승진했다. 손권의 권유로 여몽과 함께 학식을 쌓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장흠은 괄목상대로 워낙 임팩트가 큰 [[여몽]]에게 묻히고 말았다(...). 2차 합비 공방전에 종군했는데 위나라의 장수 [[장료]]가 나룻가 북쪽에서 손권을 습격하자, 장흠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이 공으로 탕구장군에 임명되어 유수독이 되었다. 이후 도읍으로 소환되어 소송의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매우 검소해 장막으로 이불을 하고 처첩들은 베로 치마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서성과는 사이가 나빴는데 조조군과 싸우는 유수구 전투에서 장흠은 여몽과 함께 여러 군대를 가지고서 지휘하였다. [[서성]]은 항상 장흠을 두려워했지만 장흠은 매번 서성의 좋은 점을 칭찬하였다. 서성은 장흠에게 감사해했고 사람들도 장흠을 찬양했다. 손권은 장흠에게 그 이유를 듣고 그의 사적인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는 태도에 감탄했다. 번성 공방전에서 손권이 관우를 공격할 때 장흠은 수군을 감독하여 면수로 들어갔다. 귀환하는 길에서 병이 나서 죽었다. 손권은 소복을 입고 슬퍼했고 장흠의 처자에게 주민과 땅을 주었다. [[파일:주태.jpg|300픽셀]] [[주태]] 자 유평. 손책이 강동을 장악했을 때 동료 장수인 장흠과 같이 귀순했는데, 둘 다 매우 용맹하고 죽이 잘 맞아 자주 함께 전투에 참전했다. [[손권]]은 주태의 사람됨과 풍채를 마음에 들어하여 손책에게 주태를 자신에게 달라고 청하여 수하에 두었다. 이후 손권이 선성을 주태와 지킬 때, 아직 방어선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월의 습격을 받아 수많은 군사에 포위되는 일이 있었다. 그 때 주태는 12군데나 창을 맞으면서도 몸을 바쳐 손권의 목숨을 구하였다. 황조를 공격하는데서 공을 세우고 [[적벽대전]]에도 참가. 그후 주유, 정보와 함께 조인을 공격하는데도 참가하고 유수구 전투에 참가해서 유수를 맡게 된다. 이때 손권이 [[서성]]과 [[주연]]을 주태 휘하 장수로 배치하려는데 서성, 주연이 주태의 출신이 한미하여 배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들자 어느 날 연회석에서 여러 장수들 앞에서 주태의 갑옷을 벗어줄 것을 부탁해 몸의 흉터마다 짚으면서 그 생긴 경위를 물으니 그 성한 데가 없음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손권은 주태에게 어책(御幘), 어개, 청라산(靑羅傘 : 군주가 쓰는 푸른 비단우산)과 수많은 재물을 하사한 뒤에 자기 맘대로 궁궐에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주태는 이에 수레에 머물며 병마를 시켜 인도해 따라 나가면서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불게 하였다. 후에 관우를 습격하여 형주를 취하게 되었을 때는 한중태수 분위장군 능양후에 봉해지면서 목숨을 걸었던 보답을 충분히 받았다. [[파일:진무.jpg|300픽셀]] [[진무]] 자 자열. 손책이 수춘에 있을 시절 손책을 찾아가 스스로 그 가신이 되었는데, 당시 18세였으며 신장이 7척 7촌에 달했다. 이후 손책을 따라 장강을 건너 정벌에 공을 세워 별부사마가 되었다. 199년, 손책이 여강태수 유훈을 격파하고 여강 사람 중 정예한 자들을 묶어 진무에게 거느리게 했다. 손권의 친애를 받고, 공적이 있어 편장군으로 승진했다. 215년, 손권을 따라 2차 합비 공방전에 참전하였으나, 난전 중에 전사한다. 손권은 이를 애통히 여기며 직접 장례에 참가하고 빈객 2백여명의 부역을 면제한 다음 진무의 애첩을 [[순장]]한다. 손권은 이 일로 잔인한 짓을 했다면서 두고두고 까인다. 일러스트가 좀 괴상한데 이건 연의에서는 얼굴은 황색, 눈은 적색으로 괴이한 용모라고 서술되서이다. 연의에선 유비와 손상향이 형주로 귀환할 때 반장 등과 함께 데리고 돌아오려 하다가 손상향의 일갈에 물러났다. [[파일:동습.jpg|300픽셀]] [[동습]] 자 원대. 후한서와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키는 8척(尺)으로 무력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지조와 절개가 강개하고, 굳세고 강건하며 영열했다고 한다. 손책이 회계에 왔을 때 그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문하적조로 삼았으며, 199년에 유훈을 치러갈 때 따라가 환현을 정벌하고 심양에서 유훈을 격파하고 강하의 [[황조]] 토벌에도 따라갔다. 200년에 손권이 손책의 뒤를 잇고, 오국태가 앞일에 대해 묻자 "강동은 산천의 험함과 손견, 손책의 은덕이 있으니 장소와 같은 문관에게 안을 맡기고 저 같은 무관들이 바깥을 지키면 문제가 없을 입니다." 라는 말을 해 무관치고는 식견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파양의 팽호를 토벌할 때 능통, [[보즐]], 장흠과 함께 적을 토벌하는데 동습의 공이 가장 커 10일만에 적을 다 토벌하자 위월교위 편장군이 된다. 208년에 손권이 황조를 공격하자 황조가 몽충선 두 개를 가로로 묶어 강을 막고 화살을 날리니 진군이 불가능하고 피해만 커져갔다. 거기서 동습은 [[능통]]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해 몽충선 내부로 친입한 다음 몽충 두 개를 잇는 밧줄을 끊어 버리니 몽충이 표류하고 적은 혼란에 빠져 황조는 성문을 열고 달아나다 주살되어 강하 점령에 성공한다. 조조가 유수구를 공격하자 손권은 동습에게 다섯겹 누각이 있는 배를 맡겨 유수구를 지키게 했는데 그날 태풍이 몰아쳐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자 다른 병사들은 다 작은 배로 도망치는데 동습만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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