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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3세기=== 여튼 고조선 멸망이후 한나라는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해 통치하려고 했는데 고구려랑 백제애들이 극딜을 했다. 한국 역사상 기록으로 보자면 고국천왕이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복지를 실천했다고 한다. 고국천왕이 백성들이 봄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국상(國相) 을파소의 건의에 따라 진대법(賑貸法)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진대법은 말하자면 먹고 살기 어려웠던 고구려의 서민들에게 곡식을 저금리 대출해주는 제도라고 보면 된다. 물론 서민 백성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백성들이 자꾸 귀족의 노예가 될테고 그러면 귀족의 권한이 세지고 왕권이 위협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그러한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의도야 어떻게 되었든 그러한 제도 덕분에 고구려 서민들의 삶이 많이 나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며 부여와 손을 잡지만 태조왕과 미천왕때 한사군은 축출되었다. 다 쫓아낸 이때가 기원후 3세기다. 동천왕은 위나라와 시비 붙었다가 [[관구검]]에게 털려 충신이 가미카제해서 겨우 목숨 보존한 안습한 사건도 있었다. 참고로 이때 연맹왕국 에서 더이상 성장이 지체된 옥저와 동예까지 합병한다. 그 전까지는 이 둘은 고구려에 조공바치던 셔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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