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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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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군이 존나 불쌍한 새끼인 이유 == {{불쌍함}} {{재평가}} {{혐오|민비새끼|머원군}} {{혼자만 제정신}} 아들래미란 새끼가 고종이고 며느리란 새끼가 민비년으로 희대의 콩가루집안이던 불쌍한 틀딱새끼. 하지만 자기자신은 그 콩가루집안에서 유일한 정상인이었고 오히려 당시 조선에서 가장 똑똑한 선각자였다. 요즘 보지년들이 민비년 미화하느라 조선 망한 걸 전부 대원군 탓으로 몰고 가려고 온갖 역사왜곡을 덕지덕지 쳐해서 욕처먹은 불쌍한 영감탱이다. ㄴ 그것보단 걍 일제강점기 트라우마 때문 아님? 일반적으로는 대원군이 단순 유교탈레반새끼라고만 알고 있는데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는 상황 판단 제일 잘했던 너구리새끼인 게 팩트다. 쇄국? 요즘 민비 미화하느라 쇄국이 무작정 잘못한 거라 가르치는 거지 당시 기준으로는 세종대왕이나 갓카가 갔어도 무조건 쇄국했을 것다. 과연 대원군이 외국의 선진문물의 가치를 몰랐을까? 전혀 아니다. 그 증거로 흥선의 사진이 남아있다. 당장 얘가 뼛속까지 외국 문물을 반대했다면 사진을 찍었을까? 사진 찍는 양놈의 모가지를 땄겠지. 오히려 외국 선진문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만약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당시에 쇄국 왜 했냐는 질문은 지금 왜 통일 안하느냐는 질문과 동급으로 철없는 질문이다. 지금당장 통일하면 나라 망하는 게 현실이듯, 그 당시에 완전 문호개방했으면 나라 쳐망하는 게 씹팩트였다. 좆본의 개방과 비교하는 새끼들이 있는데, 당시 조선과 일본의 토종 상공업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오로지 농업 몰빵이었던 좆선과는 달리 갓본은 에도시대 때 토종 상공업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유럽에 자포네스크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은 개방해도 유럽과의 무역에서 그렇게 신문물이 쏟아져 수입돼도 일방적으로 손해는 안 보고 그나마 국부를 지켜내는 게 가능해서 안정적인 근대화가 가능했던 거다. 반면에 조선은? 개방하는 순간 그대로 일방적인 딜교로 유럽 신문물 쏟아져 나와서 나라 안의 돈이 외국으로 다 흘러들어가 바로 국가단위로 파산해서 식민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ref>실제로 이런 식으로 식민지가 된 나라가 상당하다.</ref> ㄴ참고로 태국역시 19세기초부터 차근차근 유럽과 무역을 시작해왔기때문에 일본급으로 근대화되진못할지언정 라마4세 뭉꿋과 라마5세 출랄롱꼰이라는 성군의 등장으로 지정학적위치를 이용한 중립지대를 선포하며 독립을 지켜낼수 있었다. 당시 조선의 공업을 araboja...jpg 국궁? 그래. 이건 어케어케 개고생해서 팔아먹는다 치고. 나전칠기? 일본에도 칠기 있어서 겹침. 백자?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조선도공 납치해서 백자 베껴간 거 까먹음? 이것도 겹침. 온돌? 이걸 어케 팔아먹노? 이거 팔아먹으려면 조선 토종 건축회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당시 그런 게 있었노? 놋그릇? 스틸그릇에 냉면 먹는 우리나라가 특이케이스지 외국에선 금속그릇이라면 경악한다. 장독대? 외국에 장이 있노? 지게? 장난함? 호미나 낫같은 농기구? 지금이야 개인텃밭 문화가 유행해서 이게 잘 팔리는 거지 그 당시엔 갓조국의 그레이트플레인 같은 초대형 밭에서 기계로 농사짓던 시절인데 이걸 왜 사노? 이런 식으로 지워나가다 보면 외국에서 팔아먹을 게 조선 요리랑 조선 모자밖에 없다. 뭐 갓같은 모자는 진짜 유럽에서도 인기있긴 했다. 그래서 모자랑 외국 신문물이랑 맞바꿀래? ㅋㅋㅋ 이해가 되냐? 진짜 문호개방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어야 된다. 꺼라위키에선 대원군 때가 조선의 위기이자 기회였다고 적혀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철종때쯤부터 조선의 근대화는 한참 때를 놓친 후라고 보면 된다. 약... 영, 정조때쯔음은 했어야 된다 본다. 대원군 때 문호개방은 이미 현실성 없는 개소리였다는 뜻이다. 가끔 똥양뽕 맞은 병신들이 서양이 동양을 따라잡은 건 산업화 시기라고 지껄이는데 [[제1차 산업 혁명]]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산업혁명은 동서양 격차를 존나 늘린 사건이지 따라잡은 사건이 아니다. 서양은 '''[[15세기]]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가 온 순간부터''' 동양을 따라잡은 거나 다름없다. 그때 동양은 뭐 했냐고? 다들 쇄국 정책을 펴고 있었다. 명나라는 마카오만 포르투갈에게만 개방했고 청나라 때는 대만에 있던 네덜란드 식민지를 밀어버렸다. 일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와만 제한적으로 교류했다. 그럼 조선은? 하멜이 제주도에서 기술 쪼금 가르쳐주고 간 게 다이다. 어쨌든 일본은 쇄국을 기조로 하긴 했어도 제한적으로나마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끝에 문화가 상당히 융성해졌고 이는 [[메이지 유신]] 때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하지만 조선은 서양 무역선이 1797년부터 들락날락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80년 간 나라의 문을 걸어잠궜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해봤자 한참 늦었다. 그냥 나라 문 열고 정치체제 좀 바꾼다고 근대화가 되는 건 아니거든. 그렇다고 조선이 서양의 존재를 몰랐느냐, 그것도 아니다. 유럽의 존재는 고려시대부터 알려져 있었고 포르투갈의 경우 16세기 초, 영국과 네덜란드 등은 16세기 후반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지봉유설]]과 [[조선왕조실록|광해군일기]]에는 [[16세기]] 후반에 [[프랜시스 드레이크]]로 추정되는 잉글랜드 해적이 조선에서 깽판을 부렸다는 기록도 있고. 걍 성리학이 문제였다. 차라리 하멜 때라도 최대한 조선을 어필시켜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는 명분론과 규율 때문에 옛날 이야기로 남아버렸고, 결국 수백년의 기회를 못 잡은 조선은 개혁이고 뭐고 처참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다. 단순히 흥선이 병신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란 것.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원군이 무조건 틀어막았다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대원군도 외국 문물를 점진적으로 받아들였다. 즉, '''대원군은 지금 당장 개방하면 나라 바로 망하니 조선의 상공업이 기초부터 육성하도록 일단 임시방편으로 틀어막아놓고 점차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는 뜻이다.''' 물론 무리한 경복궁 중건 시도 때문에 당백전이라는 똥을 싸면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민비|희대의 개좆걸레나팔보지창년]]이 지 시아버지 쫓아내면서 완전 물거품이 된다. 민비년이 대원군이 쌓아놓은 나랏돈으로 사치를 오질라게 부리고 대원군이 애써 틀어막아놓은 외세를 다 끌어들여서 조선을 쳐망하게 만든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즉,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대원군이 계속 섭정을 하고 제국주의 시대 때 계속 존버하면서 조선의 상공업 육성에 주력했다면 조선이 식민지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것도 장담 못했다. 조선은 그 자체가 너무 개씹노답이라 언제 망할지 모르는 국가였기 때문. 잊지 말자. 조선은 (그게 옳은가 그른가는 둘째로 넘기고) 단발령 하나 때문에 전국 8도에서 들고 일어났던 국가였다. 그런 나라에서 국가의 구조에도 영향을 주는 개혁이 단기간에 뚝딱 될까? 세계정세도 혼란한 판국에? 한마디로, 대원군은 사실 그 당시로서는 그 시대의 국제정세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했고 나라를 구하려고 가장 최선을 다했던 인물이었다. '''그 나라가 하필 조선이고 시대가 구한말이었을 뿐.''' 즉, 후술할 당백전 건을 제외하면 사실 까일 게 없는 인물이다. 근데 왜 이렇게까지 저평가받은 걸까? 이유가 뭐겠냐? 위에서도 말했듯 페미인지 뭔지하는 새끼들이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부르며 미화하느라 대원군을 병신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국 민비빠들은 흥선대원군부터 깎아내리기 시작했고 마침 당백전이라는 진짜 똥이 있길래 당백전 타령+병인박해 관련 과장 선동으로 존나 역적 새끼를 만들어놓았다. 정작 럭키 서태후인 민비는 '좆본과 맞서 장렬히 전사한 여걸'이 되어버렸고. 개인적으로 문종, 이승만과 함께 가장 저평가받은 조선 왕족 중 한명이라 본다. 왕족 외에도 저평가받은 인물로는 김홍집이 있다. 유교 씹선비 사회를 고착시킨 [[조광조]], 결과적으로 세금 수단만 바뀌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대동법]], 견제 수단을 무력화시키고 세도정치의 밑밥이나 깔았던 [[탕평책]], 골수 친일파 새끼인 [[박영효]]는 존나 빨아주면서 흥선대원군과 김홍집에게는 존나 박하다. 그리고 통상수교 거부네 뭐네 식으로 가르치면서 의도를 꼰대틀딱새끼마냥 비춰지게 하는 역사교육도 문제다 씨발 정작 민비가 뒤진 사건은 '[[을미사변]]'이라는 비극적 이름을 붙여 은근슬쩍 미화한다. 앞에서도 얘기 나왔듯이 무리한 경제 개방을 하기 전에 나라 안 경제부터 제대로 돌려야 하는 건 당연하다. 미래의 일이지만 김영삼 때 나라의 경제 문제를 완전히 정상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한국의 시장을 외국에 쩍벌을 해버리니까 IMF가 터졌던 것처럼 내수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무리하게 문을 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위에 말처럼 나도 흥선대원군은 잘한게 있고 못한게 있다는건 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 조선시절을 보면... 망하는건 시간문제 였으니 흥선대원군을 까는것보단 그전에 있던놈들을 까는게 맞다.. ㄴ 개소리다 쇄국은 잘못된게 맞다 외국이랑 국력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그걸 더 차이나게 만든셈이다 물론 좆본에게는 쇄국했어야하는데 거꾸로함 :ㄴ[[강화도 조약|일본한테 문호개방]]한건 흥선대원군 실각이후이고 당시 조선 꼬라지보면 쇄국하는게 차라리 낫다. 일본도 [[쿠로후네 사건]] 이후 문호개방했다가 인플레이션 존나 쳐맞았는데 그나마 일본은 에도시절에도 원래 포르투갈이랑 교류하면서 부를 축적해놓은거라도 있었지 조선은 수도 한복판에 있는 궁궐 하나도 300년동안 복구못시키고 폐허상태로 놔두던 국가 경제력 파탄이었는데 그 상태로 문호개방했다간 국가 경제 자체가 해외 자본에 먹히게된다. 당장 FTA도 왜 아무하고나 안하는지 생각해봐라 ㄴ 대원군이 집원했을 때 순조,철종이 시원하게 다 말아먹은지라 세도정치를 타파하는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참고로 애비인 남연군이 은신군의 양자다. 영조가 김씨혈통이라는 설이 있어서 경종이 마지막 이씨 혈통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족보를 보면 [[능양군]]-[[인평대군]]-복녕군-의원군-안흥군-진익-병원-남연군(병원의 2남)-흥선대원군-[[고종(대한제국)|고종]]-[[순종(대한제국)|순종]] 순으로 순종이 마지막 이씨 혈통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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