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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의 장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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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천사 == [[기원전 1472년]]에 착공되었다. 13년 간 지었고 [[기원전 1459년]] 완공되었다. 하트셉수트가 죽고 나서 [[투트모세 3세]]는 하트셉수트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이어받았으나, 느닷없이 본인 재위 20년차인 [[기원전 1438년]]부터 하트셉수트의 기록을 느그들이 [[나무위키]]에서 하듯이 [[반달]]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하트셉수트의 등쌀에 떠밀린 투트모세가 엄마를 증오해서 이렇게 반달을 벌였다는 설이 다수설이었는데 요즘은 이딴 말 하면 이집트 고고학자들한테 쌍욕 쳐먹을 수 있다. 왜냐면 엄마의 기록을 파괴할 거였으면 즉위하고 나서 바로 했어야 했는데, 굳이 20년을 뻐기다가 뒷북을 치는 것이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케나톤]] 때도 [[아톤]] 신만이 최고고 나머지는 전부 좆병신 떨거지 새끼들임!을 시전하면서 장제전의 아문 형상을 반달했다. 여하튼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집트 말기 왕조]] 시대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도 버텨냈지만 [[392년]] [[로마 제국]]이 [[기독교]]만을 유일한 종교로 선포해버리면서 다른 이집트의 신전들처럼 명맥이 끊기고 버려졌다. [[동로마 제국]]이 생기고 나서는 콥트교도들이 장제전 위에 교회를 짓는다거나, 그림을 반달하고 예수와 사도들을 그린다거나 하는 행위가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한테 잊혀지다가 [[1223년]]을 끝으로 기록조차 끊겨버린다. 근데 영국의 리처드 포콕이라는 탐험가가 [[1737년]]에 이걸 다시 발견하며 기록을 남겼고, [[19세기]]부터는 프랑스의 주도로 재발굴이 시작되다가 [[하워드 카터]]가 쌓인 모래들을 모두 쳐내고 원상복구시켰다. 지금은 [[이집트]] 정부가 관광객들에게 [[이집트 문명]] 팔이를 하면서 장사품으로 잘 써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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