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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정== 동서[[붕당]] 본격 진영논리 & 말꼬리잡기 정쟁의 시대. 유명한 붕당 원로가 거의다 이시대 인물이다 [[군역]]이 사실상 [[대립제]]로 유명무실화되었다. 진관제를 대체한 [[제승방략]]의 헛점 :뭔소리야 제승방략이 전력 집중시켜서 적군 때려잡자는 건데 제승방략이니까 그나마 신립이 있는 군대 없는 군대 모아서 맞다이라도 깠지 진관제였으면 진작에 각개격파당해서 선조 잡혔겠지 고당전쟁에서 고구려가 왜 망했는지 모르냐 :ㄴ니 논리대로라면 전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제1보병사단]]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키고 나머지 부대는 죄다 동원사단으로 개편하자. ㅇㅇ, 실제로 해 봐. 어떻게 되나. 게다가 니 생각과는 반대로 제승방략이니까 동래부터 한양까지 싹 빈집이 되어 [[송상현]]이 쓰러진 뒤부터 신립이 출동할 때까지 계속 [[빈집털이]]를 당했잖아. ㄴ3차 고당전쟁 제대로 모르나보네. 신성탈환 하려고 고구려가 20만 일으켜서 당군과 금산 부근에서 맞다이까다가 여기서 패퇴하고 부여성과 북부 땅 당에 넘어가고 이후부터 남은 고구려 병력 분산배치로 당군 방어해서 각개격파당했다. ㄴ그건 군사제도 문제가 아님. 애초에 당시 고구려 상태가 연개소문 아들들끼리 치고 박느라 사분오열 되어 있었고 사기도 바닥을 기고 있었는데 군사제도로 뭘 선택했든 전황을 뒤집을 순 없었음. 상대도 좆본군따위완 비교를 불허하는 당시 아시아 최강의 [[당나라 군대]]였고. 진관제였으면 진관제대로 박살이 났을걸. ㄴ 3차 고당전쟁에서 연개소문 자식새끼들이 힘을 합쳤으면 그런 꼴 안났어! 연남생 새끼가 다른 형제들과 반목해서 고구려가 멸망할 당시 수도가 2개였던 거 몰라? 국내성과 평양성. 근데 연남생은 지가 수도로 삼은 국내성을 당나라한테 줘버렸고 그게 원인이 되어 고구려가 멸망했을 뿐이다. 제승방략은 개좆병신 맞다. 왜냐 하면 어디서든 병력이 조금이라도 주둔해야 병력을 모으기 쉬운데 '''씨발 허허벌판에서 병력 모으려고 해 봐 되냐?''' 게다가 병력을 한쪽에 몰빵시키면 '''적군이 바보냐? 거기 빼고 나머지 지역을 노리지!''' [[이일|21]]이 상주에서 도망친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21 새끼가 똥별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고... 특히 조선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점은 200년동의 평화라는 식으로 기존에 조선의 군사적 활동이 아에 없었다는 식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사실은 임진왜란전에 선조는 이미 니탕개의 난이라는 여진족 3만명규모의 대규모 난을 막은적이 있으며, 조선은 툭하면 야인여진등의 여진족의 일부를 계속 정벌하는 등 일정시기마다 북방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조선의 진짜 문제는 임진왜란 이전에 정신분열증을 격고있던 선조가 기축옥사를 벌이면서 정여립과 편지를 주고받은 수천명에 달하는 조선의 관리들을 때몰살시키면서 니탕개의 난등에서 행정실무를 보던 동인이 쓸려나가면서 군사행정등에 공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제대로된 행정체제를 보여주지 못한 것과 큰 연관이 있다. 심지어 반란을 획책했다는 정여립은 지금으로서 진짜 반란을 일으켰는지 의심이 드는 것은 물론 왜선 18척에 달하는 왜구가 쳐들어 왔을때 자신이 조직한 향토예비군도 겸하던 지방조직인 대동계를 이끌고 왜구와 싸운적도 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즉 임진왜란에서 선조가 자기 자리보전하느라 스스로 팔다리를 잘랐다가 전쟁 준비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봐야한다. ㄴ 특히나 임진왜란에서 활약했던 김시민이나 이순신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군비확충을 위해 건의했지만 오히려 파직당하는 꼴을 당하고 이후의 전쟁대비는 자급자족 수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또한 패전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데에는 도가 터서 런닝맨 전문가였던 이일은 신립과 함께 조선 최고의 장수로 평가되었고 원균같은 똥별들이 임진왜란때 활약하게 된다. 동인은 전쟁가능성이 있으니 제대로 준비하자고 했지만 선조가 골몰한 것은 기축옥사에서 누구를 또 죽여버릴까였다. 기축옥사가 종료된 때는 1591년으로 바로 다음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사실상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기축옥사가 중지되었지 임진왜란 일어나지 않았다면 선조는 계속해서 자신의 신하들이나 처형 학살하는 기축옥사를 계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행정실무를 담당하던 동인이 이 기축옥사로 쓸려나가던 상황이었던만큼 사실상 제대로된 행정체계를 통한 임진왜란 준비는 안되었다고 봐야한다. ㄴ조선도 좆본의 침략가능성에 대해선 충분히 인지했었고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던 상태였다.(수상하다 수상하다 해서 통신사 보내봤는데 이색기들 뭔가 심상치는 않은듯 ㅇㅇ수준) 실록에 보면 영내의 대규모 축성과 성곽보수, 군비증강, 병력 확보등에 의한 과중한 요역과 군역으로 인한 대규모 민심이반에 대해 보고하는 경상감사의 장계가 수시로 한양으로 날아들었고 비변사에서도 수시로 공론화 되었다.(다만 조선이 침략의 수준을 오판한건 사실인게 수천단위에서 기껏해야 1만 단위였던 기존의 왜변보다야 대규모 도발일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게 20만 단위의 대규모 침략이 떨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한것뿐) 조선은 당시 주요 전장으로 고려되던 경상도 지역에 경상감사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6~7만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병력들이 수사 박홍이나 원균, 좌병사 이각이나 우병사 조대곤같이 도망쳐버리나 한양에서 파견한 경장인 순변사 이일이 도착하기 전에 대구에 모였다가 흩어져버린 2만의 병력등 제승방략 자체의 허점으로 인해 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했을 뿐 물론 이후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경상도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된 방어사 성응길과 조경, 조방장 유극량, 변기같은 경장들이 지휘해야할 병력을 인수받지 못해 한줌의 병력만을 보유한채로 일본군에 속수무책으로 조령까지 밀려나게되는 원인이 된다. === 오판 === 조선은 오래전부터 일본이 섬나라이므로, 전통적으로 수군은 강력하고 육군은 약할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조선은 일본이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막강한 육군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용문2|섬오랑캐는 수전에 능숙한 반면 육전에 서툴고, 우리나라는 육전에 장점이 있어도 수전에는 단점이 있다. 적들이 비록 수전을 잘하지만 우리가 전함으로 맞싸우지 않고 지는 체하며 그들을 육지에 끌어들인 다음 기병으로 공격하면 거의 물리칠 수 있다. <세조실록>}} ㄴ 이걸 원균같은 새끼가 철썩같이 믿고 배와 병장기를 수장시켜버렸다는 점에서 헬조선의 스타트를 끊은 세조의 선구적 병신성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의 적 전력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임진왜란 발발 하루 후인 4월 14일에 선조가 내린 수군해산명령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결국 이러한 오판은 조선군이 전쟁 초기에 순식간에 박살나는 데에 한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여담으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위와같은 선조의 수군해산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덕분에 조선 수군은 호남에서나마 온전히 그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ref>물론 경상우수사 원균이나 경상좌수사 박홍같은 장수들은 소속 수영의 전투함들을 모두 자침시키고 도망갔다...그런데 이러한 원균과 박홍의 행동은 단순히 도망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조의 명령에 따라 육군과 합세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존재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임금이 내리는 명령을 무시하고 본인의 소신을 끝까지 관철해 나가는 무장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점을 보면 역시 이충무공같은 영웅은 역시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f>. 왜냐면 이전에 있던 삼포왜란 을묘왜변에서 조선수군은 개 참피같이 패했기때문이다. 물론 이 점때문에 판옥선이 만들어졌긴했는데 당시에는 판옥선의 위력을 잘 몰랐다. 반면 조선육군은 왜군들을 철저하게박살냈기때문에 조정에서는 일본군은 육군보다 수군이 더강하다고 생각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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