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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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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세 ==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로,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쳐발린 이후 술이나 쳐마시며 흥청망청 놀아대자 신하의 반란으로 살해당했고, 그 다음 샤한샤로 추대된 것이 아르타크세르크세스였다. 처음에는 아르타바누스가 실권을 잡아서 허수아비 짓을 했는데, 아르타바누스가 허점을 보인 틈을 타 그를 체포하고 잡아죽였다. 여하튼 패전 이후의 혼란 때문에 왕권이 상당히 추락한 상태였고 사트라프들도 반란 통수 각?만 존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훌륭한 능력 덕분에 왕권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에서 쫓겨나자 그를 받아들였으며, 지중해 세계에서 최강이 됐다고 우쭐하던 아테네를 견제하기 위해 스파르타를 부추겨서 두 폴리스 간 갈등을 조장했다. [[기원전 460년]]에 리비아에서 이나로스 2세라는 인물이 이집트를 부활시키겠다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배후에는 아테네가 있었다. 6년 간 전쟁을 이어나간 끝에 이나로스 2세를 체포하고 수사에서 처형했다.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진 시기에 아테네가 키프로스를 쳐들어갔지만 페르시아군이 막아냈고, [[기원전 448년]] 휴전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건설 사업을 재개했다. 수사와 페르세폴리스를 복구했으며, 이스라엘의 유대인 공동체가 회복되는 일도 도왔다. [[기원전 424년]] 사망한 이후 아들 [[크세르크세스 2세]]가 샤한샤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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