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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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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1월 혁명]]으로 인한 탄생과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독일 제국]]에 [[가톨릭 중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 [[독일 민주당]] 3당이 [[11월 혁명]]을 일으켜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졌으나, 이로 인해 독일은 [[제 1차 세계대전]] 패전하였고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게 되었다. 사실 여기에 내막이 있는데 전쟁이 계속되면서 제2제국 말대 황제인 팔병신 빌헬름2세는 점차 권력을 잃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였고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와 함께 황제권이 강력한 축에 속하던 독일제국의 권력은 군부의 수장들이 맡게 되었던바. 1차대전을 종료하기 위해 군부는 강화협상도 떠맡게 되었는데 영불 연합국은 전범인 '''독일 군부 와 협상할수 없다''' 며 강짜를 부린것이다. 1918년 드디어 독일제국은 모든 전쟁수행 영량을 하얗게 불태우고 완전히 그지 깽깽이 모드로 들어가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었고 이것만은 막기 위해 정부에서 강화협상이 진행중이었다. 그걸 바보가 아닌이상 뻔히 아는데 아무짝에도 쓰잘대기 없는 출격명령을 해군장병들에게 하달한것이다. 즉 제대 말년병장인데 뜬금없이 영국왕 목따와라고 하면 누가 하고 싶겠는가? 결국 킬 군항의 수병들은 정치가 머국적이지 않다며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독일 11월 혁명이다. 이에 벙찐 황제가 하셨던 말씀이 (군인들의)명령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겠다던 깃발의 맹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러자 옆에 있던 군무대신의 말씀또한 걸작 폐하. 오늘날, 깃발의 맹세는 한낱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 막판까지 삐댓다는 남부의 바이에른 왕국의 비텔스바흐 왕조마저 쫓겨나자 다음날 퇴위했고 중립국인 네덜란드로 망명할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때 옆나라 벨기에와 달리 네덜란드는 독일이 건드리지 않았고 오히려 중립국으로 양쪽과 무역하며 꿀을 빨았기 때문에 망명도 허용하고 연합국이 전범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쳐도 즐을 외쳤다. 결국 전쟁 최고 책임자인 빌헬름 2세는 나가리 되었고 남은것은 군부였는데 연합국이 군부 니들이랑 안놀아 즐! 을 쳤기 때문에 씁 어쩔수 없지! 라면서 민간인들인 사민당과 중앙당에게 공화국을 만들고 강화협상 책임을 떠넘기고 아몰랑을 쳤다. 그런주제에 어쩔수 없다한들 권력을 군부가 민간인들에게 내주었으므로 안그래도 군국주의 성향이 강한 프러시아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제국의 군부를 고대로 또 물려받은 바이마르 군부는 정치에 간섭하며 분탕을 쳐대며 바이마르 공화국 혼란을 키우는데 큰 축을 담당했다. 근데 이 군부(독일 국방군)는 그 천하의 히틀러 마저도 나치 독일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그 탐쿠르즈 나오는 영화인 발키리 작전(암살)사건 전까진 함부로 못 건드렸다. 이 때문에 아래에도 나오듯이 돈을 마구마구 찍어내는 막장정책을 저질러 인류역사상 헌법과 히틀러의 집권에 레드 카펫을 깔아준것과 함께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영원히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혼돈 파괴 망가===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빨갱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스파르타쿠스단을 이끌고 폭동을 일으키면서 나라가 건국 초기부터 혼란스러웠다. 그나마 11월 혁명때부터 폭력혁명만은 안된다~~!! 라면서 공산당을 위시로한 극좌계와는 척을진 독일 사민당은 협상해야 되니까 나라 니꺼 하세요 라면서 던져준 독일 군부를 위시로 한 우익세력과 얼리를 맺고 극좌파 세력을 조져서 (이 와중에 로자 룩셈부르크도 우익 정치깡패들 한테 맞아죽었다) 공화국을 수립했다.<ref>[[스파르타쿠스 연맹 봉기]] 문서 참조</ref> 이로서 사민당과 공산당은 같은 좌익이지만 가뜩이나 사이가 나쁜데 넘을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고 이로서 공화국 존속기간 내내 나치와 함께 공화국 부정세력의 쌍두마차로 급 부상했다. 이 와중에 독일에 지방정부에도 공산정부가 들어섰는데 그게 바로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 이였다. 여담으로 이때 바이에른 평의회에 참가한 전역군인이 한명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돌프 히틀러 예비역 상병이었다... 그러나 위에 적었다 시피 좌익세력들은 사민당과 우익들에게 쳐맞고 버러우 하게 되었고 바이에른 은 우향우하여 공화국 최대의 수꼴지역으로 급부상한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에 이번에는 우향우 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가... 정작 당시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심장인 프로이센 주와 수도 베를린은 좌익색깔이 강했고 그바람에 헌법이 안전한 바이마르란 동네에서 기초되었다. 극좌가 베를린과 프로이센에서 쳐맞고 버러우한 이후에는 사민당 텃밭이 되었지만 나치가 집권하면서... ===돈내놔! 드리겠습니다! ?! 필요없어!=== 어쨌건 우여곡절 끝에 나라는 세워졌으나 진짜 시련은 이제부터였다. 파리 강화회담 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조지기로 합의 하였다. 특히 청년인구 3분의 1이 갈려나가고 서부전선 대부분이 걸쳐있었던 나라인 프랑스는(벨기에는 전 국토가 전선이었지만 이 나란 작으니까 넘어가고, 여담으로 1차대전때는 독일 본토는 전쟁터도 아니었다.) 다시는 독일이 감히 프랑스에게 대들 꿈도 못꾸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다. 일단 석탄과 철광이 풍부한 보불전쟁때 뺏들어간 알자스 로렌을 도로 프랑스로 되찾아 왔고 라인란트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였다. (+모젤란트) 그리고 1350억 마르크의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떠안겼다. 이로서 독일은 국토의 10퍼센트 인구의 15퍼센트를 상실하고 모든 해외식민지를 상실하였다. 근데 전쟁 끝나고 전선에서 돌아온 제대 군인들은 고대로 실업자가 되었고 마지막 1미리 까지 전쟁에 다 쥐어짜서 써버린 덕에 나라가 경제는 ㅄ이 었으므로 빚을 갚아주고 싶어도 못갚아 주었다. 그래서 정부는 짱구를 굴려서 돈이 없으면 돈을 찍어내면 대지! 라는 발상을 하여 돈을 마구마구 찍어내었고 이덕에 독일 국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어 돈을 땔감으로 쓰고 똥딱는데 쓰고 돈다발로 애들 장난감 블록으로 쓰며 도배 벽지로도 썼다. 그리고 독일 경제는 좇망했다. 한편 돈을 안갚자 참을수가 없게된 프랑스와 독일제국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벨기에가 군머를 보내 석탄과 공업지대를 점령하자 공화국 정부는 총파업으로 맞써서 이들을 물러나게 하였고 독일 국민들의 반불 반연합국 감정에 불을 지폈다. 이 와중에 당시 영국 재무성에서 근무하던 케인즈는 전쟁배상금 부과 의 부당성을 비판하였고 그와 동시에 사표를 냈다. 이에 따라 배상금이 많이 탕감되거나 유예되었다. 이때 케인즈는 자기 저서에서 프랑스의 클레망소에게 당신은 한세대동안 독일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나라 수상인 영국의 로이드조지는 당신은 (유권자들 에 의해) 장님에 귀머거리 입니다 라고 비판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히틀러와 나치스가 집권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니 아이러니... 사실 베르사유 체제에도 불구하고 오헝과 터키가 걸레짝이 되고 제국 자체가 공중분해당해버린것과 달리 독일은 90퍼와 85퍼의 영토와 인구를 보존하고 있었다. 베르사유조약에 따르면 독일이 이 전쟁의 원흉이고 그래서 모든 책임을 진다고 명시되어있는데 이건 프랑스 입김이 들어간것이고 독일을 3분할 시키려는 프랑스의 시도는 1민족 1국가라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운 미국과 즈언통의 세력균형외교에 입각하여 영국에 의해 거부된다. 이유는 중부유럽에서 러시아-소련의 서진을 견제할 거대세력을 하나라도 남겨 두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영국은 전쟁전에 독일에 제일 많은 물건을 팔아먹고 있었으므로 단일시장 하나가 날아가는것도 탐탁치는 않았을 것이며 사실 1차대전 이전까지 영불은 고양이와 개사이로 독일이라는 개깡패때매 손을 잡은것에 불과했으므로 머륙에서 프랑스혼자 설치는꼴 못보겠다는 심뽀와 소련과 프랑스도 동시에 독일이 견제좀 해줬으면 하는 소망의 발로였다. 즉 바이마르 공화국을 못살게구는 프랑스도 아니꼬왔고 소련막아줄 탱커가 약화되면 자기들도 손해이므로 미영의 주도하에 독일에대한 전후배상이 너무 가혹하다는 동정적 여론이 일었으며 전쟁으로 국력이 오링난 프랑스가 물주인 미국과 독일이 설칠때 제일먼저 달려와야할 동맹인 영국이 그렇다면 까라면 까는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미국의 도슨안을 따라 전쟁배상금을 줄여주고 차관이 뿌려지는 등 혼란했던 바이마르 공화국도 한시름 놓게 되었고 히틀러도 맥주홀 폭동에 실패해서 잡혀가서 당원들은 뿔뿔이 흩어지는등 공화국에 짧은 봄날이 도래했다. 여담으로 이 독일의 채무는 2010년에 모두 완납했다. ===몰락===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려는 도중에 1929년 미국 월가 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을 직격으로 쳐맞고 독일경제는 완전 좆망하였고, 이는 결국 [[나치]]가 부상하게 되는 구실이 된다. 이유는 위에 나와있듯 도슨안에 따라 미국의 차관과 채무를 경제재건에 많이 얻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별로 경제적 연결고리가 없던 소련은 같은기간 별 피해를 안입었다고. 물론 대기근(홀로도모르)으로 우크라이나 농민 2천만명이 갈려나갔는데 머공황 탓이라기 보다는 스탈린놈의 자영농 숙청과 중공업 정책탓이다. 소련은 당시 왕따라서 독일처럼 서방사회로 부터 차관을 대량으로 도입하거나 폴란드와 무역전쟁(갑질)을 벌여대던 독일과 달리 수출 실적도 거지였다. 그리고 농업생산 공황은 이미 머공황이전에 미국에서 터지고 있었다. 농산물을 가증스런 빨갱이 소련에 수출하지 않고 땅에 파뭍고 바다에 집어던지거나 썩혀버리거나 불에 태워버렸다. 한편 사실 [[나치당]] 본진인 바이에른 사법부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은 나치에 호의적이었다. 이 덕에 맥주홀 폭동을 일으키고도 빵에서 1년도 안되서 나오게 되었다. 이 바람에 무쏠리니의 로마로의 진군을 흉내냈다 어맛 뜨거라! 하면서 크게 데인 히틀러는 폭력혁명을 포기하고 합법적인 선거전을 통해 집권한다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때 [[괴벨스]]를 얻게되었고 괴벨스의 천부적인 선전 선동능력에 힘입어, 씹망중인 독일경제탓에 넘쳐나는 실업자와 사회 불만세력들, 좌파의 득세에 겁먹은 기득권과 중산층들의 지지와 결집아래 갑툭튀 듣보잡인 히틀러와 나치는 순식간에 원내 제2정당 수준으로 부상하고 정치깡패 돌격대도 회원이 40만에 달할정도로 성장하였다. 반면 좌파들과 진퉁을 자처하는 정통 우파모두 히틀러라는 좇뉴비를 과소평가했다. *[[공산당]]은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기먹던 공산주의자들이 사민당과 우파들의 연합공격속에 극적으로 살아남아 두눈 벌겋게 뜨고 살아있었기에 나치보다 사민당을 더욱 미워했고 적의 적은 친구라고 둘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사민당 정권 까기에서는 한마음 한뜻이었으며 초창기엔 '''돌격대와 공산당이 협력하여 파업을 돕기도 했다.''' 물론 이거때문에 극우파들이 나치에 밥맛이 떨어지자 히총통께서... *한편 집권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우리 잘난 독일 국민들이 나치따위를 찍어줄리가 없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이러고 있었다. *[[가톨릭 중앙당|중앙당]]과 [[군부]]를 비롯한 비나치 우익들은 히틀러 저 ㅄ은 우리손안에 입습죠 깔깔깔 거리는 오판까지 저지르게 된다. 즉 히틀러와 나치를 자신들이 통제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정 파트너로서 집권에 이용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참고로 한웹 한정으로 후겐베르크가 히틀러의 급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건 오해다. 결정적으로 기여한건 없다. 이 소릴 들었다면 지옥에서 괴벨스가 서운해 할것이다. 후겐베르크와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극우 수꼴로 겹치는면은 많지만 서로 이용해 먹으려고 했던 경쟁자 관계였다. 문제는 히총통의 야심은 연정? 그런거 없다로 한줄 요약이 가능했고(실재로 좌파인 [[독일 공산당 (1918년)|공산당]],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물론이고 중도우파인 [[독일 중앙당|중앙당]]도 나치랑 연정은 불가능 했다) 실재로 연정문제를 놓고 몰래 협상하던 슈트라서는 나치당에서 쫓겨났다 나중에 나치한테 맞아죽었다. 이덕택에 1930년대 내내 바이마르 총선과 머선은 공화국 부정세력인 [[나치당]]과 [[독일 공산당 (1918년)|공산당]]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치달았고, 독일국민들은 은근슬쩍 재수없는 매국노들인 바이마르 공화국과 외세의 강요로 도입한 민주주의를 누가 됐던 끝장내 주기를 바랬으며 나치당도 자금과 조직력 소모에 허덕여서 더이상 선거는 안된다는의식이 팽배했고 이는 독일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저 당시 독일은 의원 내각제+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혼란이 극심한 편인데 계속되는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과 군소정당 난립으로 총선이 잦아짐+내각 구성이 파행된 것이 원인 이었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은 1930년 총선으로 이미 뇌사 상태였다. 이때 총리는 브뤼닝 이었지만 이 사람은 정상적인 의원내각제 형식으로 정치를 한게 아니다 이건 뒤에서 설명하겠다. 당시 브뤼닝은 가톨릭 중앙당이었지만, 가톨릭 중앙당은 총원 577석 중 68석 뿐이었다. 거기다 브뤼닝 본인도 전임 총리였던 사민당 출신 헤르만 뮐러[* 사실 뮐러는 해임직전 힌덴부르크한테 대통령 비상대권 시행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뮐러는 나치에 부상을 막기위해 사민당 의원들에게 브뤼닝 내각을 지지할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실각이후 1년후인 1931년 병사한다]가 대공황으로 실각하면서 힌덴부르크 권한으로 취임을 한것이었다. 뮐러가 나치를 막기위해 브뤼닝 내각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중앙당 사민당 의석으로는 과반을 넘지못했고 브뤼닝은 1932년까지 사실상 모든 법안을 대통령 비상대권으로 처리한다. 이 시점에서 의회 기능이 마비가 되었고, 독일 국민들은 의회를 무시하고 지 ㅈ 대로 행동하던 브뤼닝과 중앙당+ 나치땜에 울며겨자먹기로 지지하던 사민당은 민주주의를 구한다는 명분 마저 잃어버린다. 거기다 독일 귀족이었던 융커까지 그를 극혐 했고 버틸수 없었던 브뤼닝은 32년에 5월에 프란츠 폰파펜 한테 총리직을 넘긴다(파펜도 브뤼닝처럼 비상대권으로 임명된 총리였다) 하지만 파펜은 브뤼닝보다 심각하게 무능했고 중앙당과 동의없이 총리직을 받아서 제명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경제은 최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파펜을 지지하는 정당은 아무도 없었다. 대공황으로 노동자 임금을 깍는 법안을 통과 시키면서 나머지 우파 정당들도 표 땜에 지지를 하지 않았다. 결국 파펜은 히틀러한테 손을 내밀게 된다. 히틀러는 나치당이 파펜을 지지하는 대신 2년 임기가 남은 의회를 해산하고 재 선거 요청과 돌격대 활동 정지를 풀어 줄것을 요구 했다. 의회 해산을 그렇다 쳐도 돌격대 활동 정지는 중앙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고 사민당이 먹고 있던 프로이센 주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파펜을 이를 수락했고 때마침 프로이센 주 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이 대패하고 나치가 다수 의석을 먹는다. 당시 프로이센에서는 나치당에 돌격대 공산당 붉은전사동맹과 무력충동이 계속 일어났고, 파펜은 이를 근거로 '프로이센 주는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 며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프로이센 각료들과 사민당의원 주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자기가 주지사와 주 경찰 경찰청장 직을 겸직 한다. 히틀러와 약속했던 재선거를 치뤘지만, 1932년 7월 총선에서 나치와 공산당이 원내 절반을 넘게 먹었으며 나치가 원내1당을 차지한다. 원내1당을 먹은 히틀러는 갑자기 파펜내각 지지를 취소 해버린다. 나치당은 공산당과 합심해서 내각 불신임을 발의해서 파펜을 내쫒는다(힌덴부르크가 지켜줄려했지만 실패했다) 힌덴부르크는 슐라이허를 비상대권으로 총리직에 임명하지만, 얘도 병신이었고 결국 힌덴부르크한테 경질당하고 80순 넘긴 노인네는 히틀러를 총리로 앉히게 된다 결국 독일국민들은 그토록 미워하는 유머인 색체가 강한 공산주의 대신 히틀러를 선택하고 말았다. 아이고... 그리고 원내의 다른 정당들은 히틀러와 나치를 과소평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우선 왠 정신병자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방화했는데 이걸 공산당 짓으로 덮어씌워 공산당을 해산시켰다. 결국 히틀러는 이런저런 정치적 음모와 야합과 협상과 공갈협박 끝에 총리를 먹었고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이 시점에 사실상 바이마르 공화국은 멸망한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통령 직까지 겸직하게 되어 그 유명한 '''총'''리겸 대'''통'''령 총통이 되었다. 그리고 사민당, 중앙당, 나머지 우파 정당들 까지 모두 해산되고 나치스 1당 독재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래봤자 나치즘 특성상 지도자 원리 때매 당보단 히총통 1인 영도체제였지만. 여담으로 독일은 히틀러 사망후 다시 대통령은 되니츠제독에게, 총리는 괴벨스에게 나누어 승계되어 다시 쪼개지지만 이미 나라가 완전히 망한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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