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미야모토 무사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요시오카(吉岡) 가문과의 결투 == 21살 때 무사시는 교토로 가서 요시오카 가문과 세 번의 일기토를 맞붙었다. 이 싸움은 무사시의 기록엔 나오지 않지만 니텐기를 비롯해서 꽤 많은 기록이 있다. 암튼 요시오카 가문은 대대로 아시카가 쇼군(足利將軍)가문의 검술 사범을 맡아온 명문가 중의 명문가였다. 근데 예넨 얼마 안가 망한다. 애초에 그닥 명문가도 아니었다. 그냥 무사시를 치켜세워주고 싶으니 명문가라고 치자 첫 번째 싸움은 요시오카 세이쥬로(淸十郞)과의 일기토다. 장소는 교토 북쪽 렌다이노. 세이쥬로는 칼이고 무사시는 목검이었다. 무사시는 단 한 방에 세이주로를 빈사상태로 만들었고 구경왔던 제자들이 세이주로를 들것에 태워서 집까지 옮겨놨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덴시지로(傳七郞)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무사시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바로 신청한 당일. 무사시는 결투장에 늦게 나타났고 모두가 아는 시나리오대로 덴시지로의 머가리를 '''목검으로 단 한방에''' 박살냈다. 두개골이 깨졌는데 무사할리가. 즉사했다. 있는대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요시오카 가문은 세 번째로 무사시에게 도전하게 된다. 아까 털린 세이주로의 아들인 마다시 치로(叉七郞)를 선두로 한 수십명의 제자가 상대였다. 대망의 결투의 날, 결투의 시간. 요시오카 가문 측은 이번에도 지각하겠지 하면서 무사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무사시는 제시간에 나타나서 순식간에 여러명을 죽여버리곤 냅다 튀었다. 졸렬하고 치사하긴 해도 죽인 놈이 이기는거고 죽은 놈이 진 거지 뭐. 이 싸움 이후 무사시에 대해선 8년간의 기록이 빈다. 분명 쌈박질이나 하면서 돌아댕겼겠지.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