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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노와의 관계 == {{미스테리}} {{비밀}} 많은 사람들이 경상도를 비하할 때 흉노놈들이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완전 근거 없는 일베드립이라고 하는데 신라 흉노설이 완전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만 충분히 근거가 있다. 1. 흉노가 한무제에게 격파당하고 와해당할 당시 동진한 부류가 지금의 신라 땅에 정착했다. 꼭 이 때가 아니더라도 흉노가 선우 자리를 두고 분열한 때가 기원전 60년 정도니까 이때부터 일부가 천천히 한반도 남부로 이주했다고 해도 충분히 시간대가 맞는다. 1-1. 이주 당시 고구려나 부여 등의 세력이 있었다고 해도 이들은 유목민족이었고 당시엔 세력도 작았기 때문에 국경이나 가도를 일일이 통제할 만한 힘이 없었다. 당장 후기 고구려나 발해의 국경선조차도 "거기에 국경수비대가 주둔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힘이 거기까지 미쳤다."는 의미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1-2. 신라 유적지에서 왕망의 신나라에서 사용한 화천이 출토된다. 이것은 바다로던 육지로던 중국과 한반도가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투후 김일제는 흉노인이고 왕망의 외척이다. 당장 삼국사기만 봐도 중국에서 국내가 혼란할 때마다 많은 인구가 한반도 남부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기록이 없을 뿐. 한무제 집권 당시 김일제가 이끄는 흉노 집단이 한반도로 이주했을 가능성은 엄청 크다. 2. 신라 문무왕 비문에 투후 김일제(흉노인)의 7대손. 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신라 지배층이 박씨로 시작하긴 했어도 김씨가 주류를 이룬 신라. 이들이 투후 김일제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김씨를 성으로 썼다기보다 김일제의 후손이기 때문에 김씨를 물려받아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1. 경주 김씨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위의 김일제 사건도 있지만 김일제뿐만 아니라 투후 김일제 후손들과 일부 왕족와 신라인들이 자신들을 흉노의 후예라고 밝힌적이 있었다. 3. 이게 핵심인데, 신라의 문화가 흉노와 엄청나게 유사하다. 신라. 그것도 경주에서만 발견되는 지배층의 돌무지덧널무덤이 남시베리아, 중국 북부, 몽골,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발견되는 적석목곽분 양식인건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3-1. 신라엔 고구려, 백제에 없는 금관이 발달했다. 이걸 교과서에선 신라엔 금 문화가 발달했다고만 하지만, 같은 문화를 공유한 고구려, 백제, 일본은 신라만큼 광적으로 금을 좋아하고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금 숭배는 초원 유목민족의 특징이기 때문. 흉노의 유물에도 금 귀걸이, 금 허리띠 장식등의 금 세공 유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금 문화가 유독 삼국중 신라만 이유 없이 발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ㄴ고구려도 금관 있고 금귀고리도 고구려 백제 신라 다 있었고 백제 금동대향로나 고구려 삼족오 문양도 금유물에서 나온건데 뭔소리임? ㄴ어차피 신라나 흉노 모두 자기 역사 기록에는 노관심이라 어쩌면 신라의 교류 과정에서 금을 세공한거 아닐까하는 생각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진실은 저 너머에 있기때문에 이것에 관한 이유는 알바 없음이다. 3-2. 흉노의 근거지인 오르도스에서 발견된 청동 솥(동복)이 김해에서 발견된 청동 솥과 동일하게 생겼다. '''진짜 비슷도 아니고 똑같이 생겼다.''' 4. 한국인과 흉노의 유전적 공통점이 없다고 하는데 앞서 말한 무덤들을 생각하면 어느정도 각이 나온다. "경주"에 살았던 "김씨"들만 적석목곽분 무덤을 가졌던 것은 일부 지배층만 흉노의 풍습과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고 지금까지 2천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유전자가 희석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5. 신라 왕족의 무덤에서 신라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인 검이 발굴되었는데 이 검이 동유럽에 있는 국가인 불가리아의 지방 유물이었다고 한다. 근데 어떻게 당시 신라와 불가리아 지방하고 교류하고 있었고 또 두 곳을 서로 왔다 갔다할수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진게 없다. 5-1 신라인의 DNA가 스키타이와 동일하게 되어있어서 신라와 스키타이가 같은 민족이라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흉노와 스키타이가 활동했던 문화권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면 대략 아예 상관이 없다고 보기엔 증거가 너무 '''명확해 보인다'''. ㄴ근데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몽골계나 튀르크계가 아닌 이란계 유목민족였다는 거 아니냐 ~ 흉노 문서에 카더라 식으로 적혀져 있길래 정리해봤다. 전형적인 경상도 우월 주의자들의 망상헛소리임 위에 죄다 개소리고 저걸로 무슨 아틸라의 후예니 경상도인은 위대한 흉노의 후에니 어쩌니 하면서 심지어 금나라 청나라도 신라 후손이라고 자위함 현실은 흉노는 중국 여러 유목민족중에서 허접함 중국 본토 제대로 먹어본적도 없고 통일후 정신 없던 유방이나 애먹었지 나중에 위청 곽거병에게 두둘겨 맞고 사라짐. 흉노 훈족 신라 금나라 청나라 이렇게 연결시켜서 자위하는게 바로 경상도 인들이고 이게 꽤나 심각한게 경상도에서는 역사 선생도 이걸 진짜인양 가르침. 대표적으로 저런거에 심취한 교수 지식인들이 수두룩함. 경상도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조갑제 기자가 대표적인 사람임 답없는 사람들 신라가 우월하려고 강조하려면 신라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다른 민족 거짓으로 끌여들여서 우리 후손들이다 우리 형제 민족이다 하면서 자위 하는 전형적인 뇌내 망상 반론: 전형적인 고고학 자료의 오독이다. 신라의 금 관련 유물의 편년은 빨라봐야 5세기 초 정도이며, 그 전엔 장신구로 구슬을 선호했다. (신라에서 처음으로 금을 선호하게 된 시기는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내물이사금 시기로 본다.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으면서 금을 선호하는 문화가 생겨났다는 것.) 그리고 김일제가 살았을 시기 신라 및 진변한 시대의 유물은 흉노의 영향은 전무하고, 고조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청동기나 목관묘에서. 적석목곽묘의 경우, 그냥 삼한시대의 목관묘가 시대가 바뀌면서 목곽묘-적석목곽묘 순으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즉, 외부의 영향으로 발생한 묘제가 아니라 삼한시대의 묘제가 자체발전한 묘제란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목민 계열의 유물들은 그냥 교류의 흔적으로 본다. 왜냐면 무덤에서 신라지역 토착유물도 같이 나오거든. 애초에 흉노는 기껏해야 몽골계나 튀르크계로 추정되는 정도인데, 그 추정되는 민족들과 비교해봐도 한민족이 몽골족이나 튀르크인하고 유전적으로 가깝지도 않다. ㄴ 경상도에 무쌍커풀 + 통뼈 유명인들 많은걸 보면 신라가야는 몽골족인건 확실함. (강호동, 이만기, 김민경, 김제동, 전두환, 노무현, 김영희 등) ㄴㄴ 한국인, 일본인은 원래 모두 몽골계와 유사하다. 흉노는 기본적으로 튀르크계다. 하지만 한국인 및 일본인에게서 튀르크계와 유사한 특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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