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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 {{진실}} {{무쓸모}} {{X}} 후반에 가서는 걍 [[견훤]]의 [[빵셔틀]]로 전락하고 만다. 견훤은 신라를 그야말로 맘대로 갖고 놀았다. 포석정에서 쳐 놀고 있던 [[경애왕]]을 견훤이 몽둥이로 맘대로 패죽이고 왕비와 후궁들은 견훤과 그 똘마니들의 육변기<ref>견훤이 강간은 안했다는 설이 존재한다.</ref> 가 됐는데도 신라 문무백관들은 찍소리조차 못했다. 견훤은 경애왕을 패죽여놓고 [[경순왕]]을 지맘대로 즉위시켰는데 이 경순왕이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ㄴ근데 이때의 패악질이 오히려 견훤의 패착이었다. 이 패악질 덕분에 누가 이길까 열심히 간보던 호족들이 경악하며 대거 왕건편으로 붙어버렸기 때문에 고창전투에서 왕건이 다시 견훤을 찌바르고 주도권을 탈환했으며 최후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때는 아예 이때 왕건한테 붙은 대호족 한명이 통크게 1만 병력을 내놓을 정도였다. 견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신라는 결국 [[왕건]]에게 제발로 스스로 찾아가서 무릎꿇고 빌며 왕건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항복한다. 신라는 이렇게 멸망했다. 참 긴장감 없는 결말이다. 이건 드라마에서 뭐 어떻게 미화하냐? ㄴ고구려는 그재앙 같은 중국몽 매국노 새끼가 아예 평양성 성문을 활짝 열어줘서 멸망했는데 이건 간지나는 멸망인가 보지? ㄴ마의태자가 있자나 ㄴ경주 먹히기전에 합천군(대야성)에서 20만 대군으로 견훤군 수차례 막았다고, 저걸 지금 북괴가 서울먹고 ㄹ혜한테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주에 약탈,살해해서 《삼국사기》에 경주시민들 발에 부스터 달고 산과 벌판으로 불나게 튀나갔다고 한다, ㄴ 20만 대군 같은 소리하네. 훨씬 후대인 조선도 임진왜란 당시 총병력이 20만이 안 되었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16만도 안되는 병력(158,700명)으로 온 조선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20만 있었으면 그런 꼴 당했겠냐? 웃기는 소리지. 아니, 애초에 20만 대군 있었으면 고려고 후백제고 나발이고 다 박살내고 중국 쳐들어가도 되겠다. 후백제랑 고려가 투닥투닥 할 때 얘네들 고작 몇만이었어. 그런데 신라가 20만 대군 같은 소리하네. 대야성에 병력 고작 수천 있었다. 물론 그걸로 후백제 공격을 수십년 동안이나 잘 막아내다가 결국 뚫렸지. 근데 어차피 고려가 다른 이민족도 아니고 같은 민족인데 이기지도 못할 거 싸워서 괜한 사람 죽는 것 보다는 왕관을 바치고 항복하는 게 백성들 입장에서도 더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ㄴㄴ 고려 태조가 일리천 전투에 동원한 병력이 사료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10만인데 지방 대부분의 통제권을 잃고 경상도 일대로 축소된 신라에서 20만을 징집했다? 군사들을 무슨 흙으로 찍어냈냐? 아 그리고 신라가 997년역사를 자랑하는데 3년버텼으면 1000채움 ㄴ992년이다. 역알못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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