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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혼모盧}} {{나치}} {{파시즘}} [[파일:4f0e288266adf61f3f3c5d0e13f4b24c.jpg|200픽셀|섬네일|삼족오 유겐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남한에 들어서면서 평양을 수도로하는 북한과 반대되어 수도인 서울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좋든싫든 역사적으로 [[조선]] 왕조와 신라 왕조를 많이 강조하였고 이와 관련된 미디어 매체가 많이 나왔다. 덕분에 고구려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임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한동안 그렇게 조명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이들 국가들의 외교가 솔직히 너무 굴욕적이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진정한 역사 취급을 받지 못하였고 자주국방 자주독립 좋아하는 [[노무현|노란그분]] 정부들어 때마침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서 고구려 역사를 국민들에게 재조명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왕조와 일대일로 맞짱뜨고, 맨날 [[신라|조공바치고]] [[조선|책봉받던 나라]]의 역사만 배우다가 남에게 조공,책봉시키는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니 국민들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망, 카타르시스가 매우 높아졌다. 덕분에 한반도판 넷우익 극우단체라고 할수있는 [[환빠]]들이 엄청나게 생겨나는 부작용도 일어났다. 물론 국민들에게 도전적이고 강인한 정신을 고취시키는 선영향도 있었다. 실제로 정치판에서도 이게 일부 영향을 끼쳐 미국 안보에 무조건 기대자는 의식이 강했던 예전과 달리 자주국방 자주독립등을 외치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래서 역사가 중요하다. 특히 [[노무현|노란그분]]정부들어 고구려 관련 드라마와 미디어물이 쏟아져나왔다. <MBC>주몽,<KBS>대조영,<SBS>연개소문 3개 모두 그분 정부 시절 나온 작품들이다. 동북공정에 맞서 고구려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홍보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창립 역시 그분의 임기시절이던 2006년 9월에 이뤄졌다. 삼국 중에서 가장 강력했고,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는 점 때문에 삼국 중에서 고구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보인다. 다만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과대포장하거나 심지어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무리 고구려가 좋다고 하더라도 왜곡은 나쁜 짓이다. 그리고 짱깨들의 [[동북공정]] 때문에 더더욱 이런 현상이 강해지기도 했다. 딱봐도 살기 좆같은 곳만 입지선정한 반 유목민족 국가인데 왜이렇게 빨아대는지 모르겠다. 만주벌판 하면 듣기는 좋지만 ㅅㅂ 존나 동토잖아. ㄴ 그래서 장수왕이 한강일대 눈여겨보고 남진하였다. ㄴ 고고학 연구로 보면 [[부여]]는 말기에 반 유목민족 나라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고구려는 반 유목민족 국가는 아니었음. ㄴ 반 유목민족 맞는데 병신아 근대까지 만주에 농경국가가 들어선 적이 한번도 없다. ㄴ 병신은 너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같은 기록을 봐라. [[부여]]도 초기에 엄연히 농경 국가였다. 물론 요즘에는 말기에 반 유목화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지만. 고구려는 엄연히 농경 국가였고 경제의 대부분을 농업이 차지했다. 반 유목은 반 정도가 유목화되어야 하는데 고구려 휘하에 유목 집단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ㄴ 유목이 메인인 나라에서 진대법이 나왔을리가 ㅋㅋ ㄴ 고구려는 농경국가 맞다. 농경국가 베이스에 유목민족 문화가 곁다리로 들어있는 느낌이라 보면됨 아마 지금 헬조선의 땅이 좆같이 좁아서 그런지도. 겨울에는 -20도 찍고, 여름은 또 대륙이라서 덥고 더워도 봄가을이 금방 추워져서 농사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닌 땅을 넓이만 보고 뽕에 취한다. 더구나 당시 농사기술로는 ㄹㅇ 헬. 모내기도 없고 소마저도 제대로 못 쓰고 쌀농사도 힘들어서 조, 보리가 주식이었으며 감자, 옥수수는 없었다. 그러니 말 타고 전쟁이나 했지. ㄴ 그런데 당대에는 기후가 더 따뜻했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물론 남부에 비해 생산성이 더 떨어진다는 것은 인정이지만. 그리고 고구려 영역을 보면 일단 산이 많아서 방어하기 좋고 산이 많아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평야 자체도 나름 꽤 많았고. 게다가 서쪽으로는 요하가 천연 방패 역할을 해주기도 했고.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기 때문에 고구려가 엄청나게 넓은 대제국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까진 아니었다. 그냥 보통 흔한 제국정도였다. ㄴ 이마저도 어디냐 세계지도 펴놓고 고구려 땅 측정해보면 느낌상 고구려 라는 글씨가 영토내에 완전히 들어가는 수준 그정도였다. 요즘은 잘 안 그러지만,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드립 치며 전쟁 좋아하던 고구려를 민족 역사에서 제외시키던 시절도 있었다. ㄴ 물론 그렇다고 철통방어도 못했다.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광진구가 서로 고구려의 도시라며 싸웠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아차산을 끼고 있다는 것인데 이 아차산에 고구려의 보루 유적들이 있고 고구려의 장수 [[온달]] 싸웠다는 아차산성이 있다. 구리시는 토평동에 광개토 대왕비를 축소 제작, 광개토 대왕상을 제작하는 등 "고구려의 기상, 구리시"를 밀다가 현재는 "태극기의 도시"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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